4회

고통에 대하여

그날

올해 5월 말일 즈음 전주에 갈 일이 생겼다. 일을 제안한 쪽에서 숙소를 1박 제공해주었고 가는 김에 친구들과 전주 여행을 하려고 다른 숙소에 1박을 더 예약했다. 2 3일간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특히 마지막날이었던 일요일에는 골목 곳곳을 천천히 걸어다니며 맛있는 것을 먹고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오랜만에 참 한가하고 재미있게 보냈다. 지나가다 우연히 본 수제맥줏집에서 낮술도 한잔했고 맛있다는 커피집을 찾으러 일부러 멀리까지 걸어갔다. 어느 한옥 게스트하우스 주인 아주머니는 길냥이들을 보고 탄성을 내뱉는 우리에게 마당으로 들어오라고 하더니 자기네 고양이들과 잘 가꾼 식물들을 보여주었다. 서울에서의 나날과는 판이하게 다른, 느긋하고 꿈같은 하루였다. 전주에서의 시간이 워낙 즐거웠기에 예정보다 서울로 출발하는 시간이 좀 늦어졌지만 괜찮았다. 운전해서 서울에 도착하니 배가 출출해서, 일요일에 문 연 떡볶이집을 찾아 간단한 뒤풀이도 하고 나서야 헤어졌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진 이후 오랫동안 아무데도 가지 못했었는데, 바람도 쐬고 즐거운 경험도 많이 한 멋진 여행이었다고 말하며 동거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우리 둘째 고양이가 죽어 있었다.

평온하게 이 글을 읽던 여러분에게도 이 갑작스러운 전개가 충격적일 텐데, 우리에게는 어땠겠는가. 우리집에는 고양이가 넷 있었다. 죽음을 맞은 고로는 열두 살이었으며 기골이 장대하고 멋진 고양이였다. 고로는 오래전 두 번 비뇨기 관련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상태가 좋지 않을 때면 화장실 사용이나 여러 기색을 통해 알 수 있었기에 우리가 늘 관찰하던 아이였다. 여행을 떠나던 날 아침까지 그런 기색은 없었고, 하던 대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에게 고양이 밥과 화장실 관리를 부탁해둔 터라 전날까지는 살아 있는 사진을 전달받았었다. 그랬던 고로가, 부엌 구석에 아주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엎드린 채 죽어 있었다. 뒷다리 쪽이 아파서 많이 핥았는지 그쪽 털이 엉겨 있었다. 나는 3 6개월을 그와 함께 살았고, 동거인은 11 3개월을 함께했다. 뻣뻣해진 고로를 감싸 안고 동물병원에 갔지만 죽은 동물에 대해선 부검이나 어떤 사후 조치도 취해주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고, 우리는 다시 김포에 있는 화장장으로 갔다. 새벽에 돌아와 집안 곳곳을 살펴보았다. 고로가 갑작스레 떠난 이유를 알 수 있을까 해서였다. 자세히 보니 집안 이곳저곳에 고로가 고통스러워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회색털과 침과 오줌이 범벅이 되어 구석쪽으로 바닥을 기어다닌 흔적들. 그로부터 며칠간 그런 흔적들을 찾아낼 때마다 주의깊게 살펴보고 닦아내면서 나는 많이도 울었다. 우리가 서울로 돌아올 시간을 미뤄가며 전주에서 보낸 즐거운 시간들과, 커다란 고양이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기어다녔을 시간이 대비되어 후회로 가슴이 찢기는 것 같았다. 바닥에 엉겨붙은 털로부터 홀로그램처럼 고로의 모습이 피어올랐고 그 몸부림을 얼른 지워버리기보다는 엉엉 울면서도 세세히 마주보려고 했다.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지, 우리가 못 본 마지막 순간과 그가 겪은 고통을 나누어 갖고 싶었다. 정말이지 할 수만 있다면.

 

suffer

그러나 누군가의 신체적 고통을 나누어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죽은 누군가가 겪었던 고통은 어쨌든 이미 끝난 것인데, 그 고통을 되살려 상상해보려는 것은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고통스러운 장면이나 뉴스를 보면 타격이 심해서 절대 보지 못하는 나는, 이 사건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불안감과 수면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고통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죽음 전에 어떤 존재가 느낀 고통은 실재했으며, 사망했다 해서 그가 겪은 고통이 없었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사랑하는 존재의 고통은 모른 척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외국 영화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오곤 한다. “Did he suffer? 그가 고통스러워했나요?” 주로 사랑하는 존재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달려온 사람이 그의 죽음을 마주한 후 의사에게 묻는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suffer’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말로 옮기면고통을 겪다’ ‘고통스러워하다라는 뜻인데, 우리말로는 뭔가 딱딱하고 문어체적인 이 말이 suffer라는 짧고 발음하기 쉬운 자동사로 존재한다는 게 그 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 우리나라에서는 누군가가 죽으면 그 전의 고통에 주의를 기울이기보다는 죽음이라는 결과로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반면 suffer라는 단어가 있는 곳에서는 비록 죽었다 하더라도 생전에 그가 너무 심한 고통을 겪지 않았기를 바라며 그 여부를 궁금해하고, 안타까워한다

신이시여, 어째서 세상에 고통이 가득하나이까?’라고 할 때의 고통은 영어로 서퍼링suffering’이다. suffer라는 자동사에 –ing를 붙여 명사화한 것이다. 동사가 먼저 있고 명사화가 뒤이어 일어난다. 그런데 우리말은 반대다. ‘고통이란 추상명사가 있고 그것을 개개의 존재가 겪거나 받는 것으로 합성하여 동사적 표현을 이룬다. 그래서 영어로 서퍼링 인 더 월드suffering in the world’라고 할 때는 세상 곳곳에서 suffer를 하는 주체인 무수한 존재들의 몸부림과 표정이 떠오른다. 하지만 우리말로 세상의 고통이라고 하면 실체를 떠올리기 힘든, 그야말로 형이상학적인 개념처럼 느껴진다.

고통은 죽음으로 정리되는 추상적 현상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개의 존재들이 느끼는 실재다. ‘2014 4 16일 커다란 배가 침몰했고 승객 304명이 사망 실종되었다로 정리되는 일이 아니다. 그 한 문장이 선언되기까지, 그 배 안에 실재했던 긴 시간의 서퍼링이 지금까지도 끔찍하게 메아리치는 것을 듣지 못한다면 그는 인간이라 할 수 없다. 구할 수 있었음에도 구하지 못한, 그래서 생겨나버린 그 수많은 고통의 실재를 헤아리지 못한다면.

지금은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책에서 읽었던 대목이다. 미국이었던가, 광활한 평원을 가로지르는 힘겨운 여정에서 일행은 어떤 커다란 동물이 쓰러져 고통에 울부짖는 것을 마주친다. 그 동물은 무리에서 낙오되었고 크게 다쳐 회복될 기미는 없었다. 그러나 그대로 둔다면 몇 날 며칠 동안 고통에 시달릴 것이었다. 갈 길은 멀고 어쩔 수 없다며 지나쳐간 일행은 아무래도 그 동물의 울음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모래 먼지 날리는 길을 얼마간 되돌아가 동물의 뒤통수에 총을 한 방 쏘아준다. 고통을 줄여준 것이다. 울음은 그쳤고 비로소 평온해진 머리는 바닥에 누인다. 그들의 여로와 겹치지 않은 광대한 자연 속에서 그런 고통이 얼마나 다반사겠는가. 그러나 고통받는 얼굴을 보고 울음소리를 들은 이상 그것을 모른 척할 수 없는 마음이 인간 속에 있는 것이다.

 

모른 척할 수 없는 마음

나는 신을 믿지 않으므로 어째서 세상에 고통이 가득한지에 대해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지지는 않는다. 다만 실재하는 고통의 소리들을 좀더 잘 들으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일종의 종교적인 마음을 갖는다. 잔인한 뉴스를 여전히 보지 못하더라도, 세상의 약자들이 내는 고통의 소리에 더 귀기울이는 것은 가능하다. 그 약자에는 동물도 들어간다. 지금도 녹슨 철사로 된 케이지 안에서 부르튼 발로 서서 음식물쓰레기를 먹으며 평생을 사는 개들이 있다. 도축장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극도의 공포를 느끼며 안 가겠다고 버티다가 전기충격기로 지져지는 소와 돼지가 있다. 좁디좁은 계사 안에서 서로를 쪼아 상품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부리가 잘린 채 밟고 밟히며, 밟힌 채로 죽어가는 닭들이 있다. 유튜브 조회수를 위해 이리저리 내던져지고 쓰인 뒤 버려지거나 그저 재미를 위해 끔찍하게 학대당하는 고양이들이 있다. 옛날에는 동물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들 말했다. 옛날에는 흑인 노예들에게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게 전혀 사실이 아님을 우리는 이제 잘 알게 되었다. 울음소리들을 들어야 한다.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도 있다. 문어는 무척추동물의 세계에서 천재다. 강아지 정도의 지능을 가졌다고 한다. 학습 능력을 지녀 병뚜껑을 돌려서 열거나 미로를 빠져나갈 수 있으며 장난도 친다. 문어의 다리를 자르면 조각조각마다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낙지는 small octopus, 작은 문어다. 나는 연포탕을 처음 먹은 날을 기억하고 있다. 2004년 겨울 삼청동에서였다. 그때 밥을 사준 선배는 식당 종업원이 들어와 국물이 보글보글 끓는 냄비의 유리로 된 뚜껑을 열자 갑자기 합장을 했다. 나는 영문을 모르고 있다가 종업원이 집어넣은 산낙지가 펄펄 끓는 국물 속에서 온몸을 뒤트는 장면을 얼마간 보고 말았다. 낙지가 얼마나 싱싱한지를 보라고 유리로 된 뚜껑을 쓰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낙지의 고통을 즐기라는 뜻이었으며 나는 무엇보다도 그 유리 뚜껑의 잔인함에 이중으로 놀라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타자의 고통을 우리는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한다는 수전 손택의 말이 그토록 적나라하게 구현된 식탁이었다. 이후로 나는 연포탕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순간을 떠올리고는 움찔하게 된다.

우리말에 서퍼링의 뉘앙스를 가진 짧고 쉬운 단어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말은 없으므로 나는 고통이라는 단어에 ‘suffering’이라는 각주를 달아 내 안에 새긴다. 거대하고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고유한 개별 존재들 속에서 일어나는 아픔과 슬픔, 그 울음소리를 좀더 잘 듣기 위해서. 인간에게는 모른 척할 수 없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들이 합쳐지고 또 합쳐져 눈덩이처럼 커진다면, 어떤 약한 존재에게는 신처럼 기능할 수도 있다. ‘저를 고통에서 구하소서라는 울음소리가, 도처에서 들리는가?

새벽까지 글을 쓰고 있으니 고양이 세 마리가 교대로 방을 들락거린다. 떠난 고양이의 고통을 새기는 지난 몇 달의 과정은 내게 더없이 고통스러웠지만, 그로 인해 그의 생에 더 진실되게 가닿았다고 느낀다. 대부분 행복하고 고마웠던 기억에 고통에 대한 기억도 뒤섞여, 고로라는 고유한 한 마리 고양이의 생이 남은 우리에게 가지는 존재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래서 이제야 처음으로 말한다. 잘 가라, 고로야. 그곳에서는 평안하기를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