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유배일기1-누구에게나 공평한 하루

한 달째 유배중이다. 이곳은 과테말라 아티틀란 호수 옆의 작은 도시 파나하첼. 올해 2월 한국에 코로나19가 유행할 무렵 호기를 부려 중미 출장을 감행했다. 하지만 중미 국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차례로 한국인 입국을 막기 시작했다. 결국 과테말라에서 농장 방문 일정을 소화하던 중 급작스러운 공항 및 국경 폐쇄 조치가 취해져서 이곳에 발이 묶였다. 남은 산지 여정을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귀국이 언제 가능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과테말라 정부의 봉쇄 조치는 이후 연이어 강화되었다. 모든 도시 출입 자체가 통제되었고 오후 네시부터 새벽 네시까지 통행금지가 시행되었다. 나는 이렇게 과테말라에 유폐되었고 새로운 일상이 시작됐다. 하루에 25달러짜리 에어비앤비를 간신히 구했다. 과테말라 대통령의 격앙된 봉쇄령 담화에 숙박업소들이 겁을 먹고 투숙객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머무는 숙소는 방이 여러 개인데 지난 한 달 동안 손님이 거의 없었다. 관광객으로 붐비던 파나하첼 시내는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드물어 기이한 적막만이 흐르고 있다.

 

바쁜 사람에게도, 백수에게도 하루는 공평하게 빨리 지나간다. 하루를 보내며 대단한 의미나 보람을 좇지 않는다. 미래를 준비한답시고 오늘의 고통을 감내하거나 지금의 즐거움을 유예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오늘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일기를 왜 쓸까 싶을 정도로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요기를 한다. 주로 채소를 볶아 계란프라이와 먹는다. 커피를 한잔 뽑아 스페인어 수업 가기 전에 방문 앞 테라스에 앉아 숙제를 한다. 이때 공작새 호르헤가 주변에 얼쩡거리면 언제 갑자기 꽥 소리를 질러 놀랄지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수업을 마치면 학원 바로 옆 블록에 있는 크로스로드 카페에서 커피와 케이크 한 조각을 먹고 파나하첼 성당에 가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방에 돌아온다. 일주일에 두세 번 장바구니를 옆에 매고 시장에 가서 채소와 과일을 사 온다. 저녁은 심혈을 기울여 최대한 맛있게 해 먹으려고 한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지나가는 날들이지만 그래도 하루를 살아냈으니 작은 위로를 받아 마땅하다.

 

이곳에 온 다음날, 근처 스페인어 학원에 등록했다. 하나 마나 한 레벨 테스트를 거쳐 초급반이 되었다. 선생님은 플로린다라는 이름을 가진 마야족 대학생이다. 플로린다는 아홉 남매다.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 터라 자식들 모두를 교육할 여건은 안 돼서 플로린다를 빼고 나머지 형제들은 초등학교만 나왔다. 다들 집에서 부모님을 도와 농사짓거나 과테말라 이곳저곳에 흩어져서 일하고 있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던 플로린다는 백방으로 장학금을 알아보러 다녔다. 플로린다를 기특하게 여긴 교장 선생님이 장학 프로그램을 소개해줬고 시험과 인터뷰에 합격해 기적적으로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 서필훈


스페인어로 말해서 드문드문 알아들었지만 나는 플로린다 얘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나의 경우를 돌이켜보면 어릴 때는 부모님과 선생님이 시키니까 대학 가려고 공부했고 그후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큰 어려움 없이 그냥 공부했던 경험이 전부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서 발을 동동거리고 어린 나이에 장학금을 알아보러 혼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절실한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나이는 이제 스무 살. 스페인어뿐만 아니라 배울 점이 많은 선생님이다.

 

수업이 끝나면 근처 크로스로드 카페에 간다. 파나하첼에서 20년째 로스터리 카페를 운영하는 미국인 마이클이 반갑게 맞아준다. 셧다운 이후로 대부분의 상점이 아예 문을 닫았지만, 마이클은 나 같은 커피 중독자를 위해 가게 문을 살짝 열어놓았다. 마이클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자신은미소라는 한국어 단어를 정말 좋아한다며 주문한 치즈케이크에 딸기잼으로 ‘Miso’라고 써줬다. 마이클은 내게 스페인어 공부는 잘돼가는지, 심심하진 않은지 안부를 묻는다. 커피값을 바에 올려놓고 나가려는데 마이클이 뭐 잊은 것 없느냐고 물어봤다. “?” 물었더니 한국말로미소!”라고 소리치며 하이파이브. 매일 반복하는 이 걸음걸음을 오래 기억하고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 서필훈 


방으로 돌아온다. 초저녁이 되면 하루의 마지막 커피를 모카포트로 내려 먹는다. 이게 뭐라고 지난 16년을 미쳐서 보냈나, 그러다 여기 갇혔는데 또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나, 생각한다. 알 수 없는 것은 알고 싶지 않다. 커피가 다 되면 근처 어디선가 일하고 있는 알마를 불러 같이 마신다.


내가 머무는 숙소의 주인인 알마. 내가 스페인어를 잘 알아듣는 것도 아닌데 마주치면 한참이나 말을 건넨다. 마치 내가 그녀의 말을 다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는 단어 약간과 상황으로 넘겨짚으며 하는 대화란 어찌나 위태로운지. 차고에 먼지를 뒤집어쓴 비엠더블유가 있던데 누구 차냐고 물었더니 동생 차인데 그는 작년에 암에 걸려 병원에 있다고 한다. 이럴 때 스페인어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나는 아직 배우지 못했다. 한국어였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온종일 쉬지도 않고 일하는 부지런한 알마가 세차를 하지 못하는 이유다.

 

오늘은 웬일인지 두 방이나 손님들이 들어왔다. 그동안 관광객이나 외국인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일 때문에 잠깐씩 오가는 사람들이 통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룻밤 머물고 새벽 일찍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숙소는 단층 건물인데 일렬로 방 여섯 칸이 있다. 어떤 방 앞에 차가 있으면 손님이 들어온 것이고 차가 없으면 떠난 거다.

 

손님이 나가면 알마가 열심히 방 청소를 한다. 그제야 나는 정말 그 손님이 떠났다고 생각한다. 1년 내내 아니 훨씬 더 오랫동안 매일같이 손님을 기다리고, 반기고, 살피고, 떠나보내는 일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본다. 가끔 알마는 여기 묵었던 손님들 얘기를 해준다.

 

“네가 오기 하루 전에 매년 방문하는 프랑스 노신사가 부랴부랴 짐을 싸서 공항으로 갔어. 자전거 선수라던 이탈리아 청년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방이 모두 비고 셧다운이 시작되던 날 네가 왔지.” “가끔 한국 사람도 와서 묵곤 해. 몇 달 전에는 잡지사 기자라던 사람이 와서 며칠 있었고, 그전에는 배낭여행객도 몇몇 있었어. 하지만 너처럼 오래 머물지는 않았지 다들.

 

그 얘기를 듣고 있으니, 알마가 앞으로 올 손님들에게 내 이야기를 이렇게 조곤조곤하게 해주는 장면이 그려졌다. 나도, 그들도 마침내 또 떠나면 알마는 다시 방을 청소할 테지. 그리고 그다음에 올 또 누군가에게 그런 손님이 있었노라 기억을 더듬어 조용히 얘기하겠지.

 

알마는 다정하고 세심한 사람이다. 내가 밤에 식당에 물 마시러 가는 것을 본 다음날엔 내 방에 물병과 컵을 갖다주고, 내 방을 청소하다가 더운데 왜 얘기 안 했느냐며 선풍기를 놓아준다. 내가 식당에서 눌어붙은 프라이팬 박박 긁으며 설거지하는 걸 보고는 자기가 집에서 쓰는 프라이팬을 가져다놓는다. 늘 고마운 마음인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식당을 깨끗하게 쓰는 것과 하루에 한 번 커피 내려주는 것이 고작이다. 알마는 크로스로드 카페에서 사 온 원두로 만든 커피를 좋아한다. 저녁에 커피 내렸는데 알마가 없으면 잔에다 커피를 부어놓고 나온다. 다음날 아침에 만나면 알마는 커피 정말 맛있었다며 고맙다고 잊지 않고 말해준다. 별것 아닌 커피 한잔에 말로 다하지 못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담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식당에 있던 오래된 법랑 머그잔은 여기서 쓰는 내 전용 컵이다. 매일 이 컵에 커피를 마신다. 잘 보면 여기저기 에나멜이 벗겨지고 깨진 곳이 많다. 이 컵은 여기서 얼마나 오랫동안 많은 사람의 손에 쥐어져 그들의 목마름과 즐거움을 헤아렸을까. 예전에 회사에서 판매하는 법랑 머그잔 홍보용 카피에흠집 나고 해져도 늘 당신 곁에라고 쓴 적이 있다. 법랑 머그잔 팔아보겠다고 쓴 문구인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좀 먹먹하다.

 

저녁을 해 먹으려고 느지막이 부엌에 갔다가 적잖이 놀랐다. 옆방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 프라이팬에다가 쌀밥을 해놓은 것이다. 냄비도 많은데 왜 하필 프라이팬에다가? 밥 상태를 보니 타지도 않고 잘된 것 같다. 왠지 요리 고수의 향기가 풍겼다. 이곳에서 지낸 후로 쌀밥을 한 번도 안 먹었는데 눈에 보이니까 먹고 싶어졌다. ‘내가 끓인 채소잡탕국과 나눠 먹자고 말할까?’ 갈등하고 있는데 그가 들어온다. 얇은 티셔츠를 입었는데 체격이 다부지고 근육이 많다. 인사를 주고받는다. 테이블에 앉더니 식빵과 콘플레이크를 꺼내 우유와 먹는다. 너 왜 밥 해놓고 안 먹니? 물어보고 싶지만 역시 잘 참았다. 모든 것이 셧다운되어 여기 일이 있어 온 사람들도 다들 집으로 돌아갔는데 여행객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그는 왜 이곳에 계속 머무는 걸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친구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의 정체보다 프라이팬 밥의 비밀이 더 궁금하다. 저녁은 소바 삶아서 간장 뿌려 먹었다. 아보카도랑 토마토도 먹었다. 채소잡탕국은 다음날 먹으면 간이 잘 배어 더 맛있으므로 먹지 않고 참기로 했다.

 

밤에는 비가 오고 천둥 번개가 쳤다. 이곳에서 처음 보는 장대비다. 내 방은 천장 벽 두께가 얇아 늘 덥다. 내심 불만이었는데 오늘 천장을 통해 울리는 빗소리가 너무 황홀해서 더는 불평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자야지. 이렇게 유배지에서의 하루가 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