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세 개의 문

마리오의 문


과야킬Guayaquil 공항 입국장 문이 열렸다. 이제 에콰도르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사내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비행기가 두 시간이나 연착해 오래 기다렸을 텐데도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그의 이름은 마리오. 멜버른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는데 커피가 너무 좋아 박봉에도 불구하고 커피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처음 커피에 영혼을 사로잡힌 사람들 대개가 그러하듯 그는 본사 사무실로 향하는 차 안에서 쉴 새 없이 커피 얘기를, 사실은 자신의 희망을 이야기했다.


본사에 도착하자마자 마리오는 자신이 일하는 곳을 보여주겠다며 나를 이끌었다. 오래된 단층 건물 한쪽의 하얀색 문을 열자 자그마한 랩Lab이 나왔다. 설비라곤 한국에서는 이제 찾아보기도 힘든 낡은 에스프레소 기계와 오래되어 제조사조차 알 수 없는 그라인더, 삼십 년이나 되었다는 작은 샘플 로스터가 전부였다. 커핑을 위한 동그란 테이블과 커피 샘플들로 가득한 책장도 있었다. 문밖의 세상보다 더딘 시간이 흐르고 있는 랩이었다.


마리오는 다음주 바리스타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한다며 시연 대본을 보여줬다. 처음에는 약간 쑥스러워하더니 곧 신이 나서 대본에 관해 얘기했다. 대회용 에스프레소도 먹어봐달라며 커피를 뽑아주는데 긴장한 눈빛이 역력하다. 가끔 내가 도저히 커피가 맛없다고 말할 수 없게 만드는 눈빛이 있다. 단순한 기대를 넘어 열정과 절실함이 순수함과 함께 배어 있는 드문 경우다. 대회용 원두 로스팅은 어떻게 준비하느냐고 물으니 100그램 샘플 로스터로 서른 번 볶은 후 섞어 쓴다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지만, 그 말문 너머에서 그가 말한 희망이 반짝이는 것을 느꼈다. 나는 곧 커피 산지가 있는 내륙 지방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에 그의 대회 시연을 보지 못했다. 열흘 뒤 본사로 돌아오니 마리오는 대회에서 실수해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래도 그는 마냥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작별 인사를 건넸다. 문이 닫히는 소리, 그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하는 소리.

 


세르비오의 문


과야킬에서 에콰도르의 주요 커피 산지인 로하까지는 차로 여덟 시간이 걸렸다. 오후 느지막이 도착한 어느 산허리. 작고 마른 체구를 가진 세르비오가 우리를 맞았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가득했고 악수를 하는 그의 손은 오랜 농사일로 손가락 마디가 모두 굵고 굽어 있었다. 그는 나무 막대 몇 개와 철조망을 엮어 만든 엉성한 울타리 문을 땅에서 뽑더니 우리에게 들어오라 손짓했다. 농장까지 그를 따라 가파른 산길을 한참이나 올라가는데 도저히 그의 빠른 발걸음을 쫓을 수 없어 연거푸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그의 커피밭은 처참할 정도로 커피 잎병 피해가 심각했다. 커피나무들은 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 마치 땅에 나무 막대기들을 아무렇게나 꽂아놓은 듯했다. 커피 잎병이 창궐하기 전에는 8헥타르 규모의 농장에서 약 스물다섯 백(bag, 한 백은 60킬로그램) 정도 커피를 생산해 가족이 근근이 생활했는데 작년에는 일곱 백, 올해는 다섯 백을 수확했다고 한다. 커피 잎병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느냐고 세르비오에게 물었더니 농약이나 비료 살 돈은 없고 동네 소문에 커피나무 밑동에 염소똥을 좀 뿌려주면 좋다고 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동글동글한 똥이 이파리 하나 남아 있지 않은 커피나무 아래마다 한 움큼씩 놓여 있었다. 절망적이었다.


그가 새로운 희망이라며 나를 데려간 곳은 일종의 묘목장이었는데 너무 초라하고 작아서 나무 그늘 한 무더기 묘목을 모아놓은 것이 전부였다. 이 묘목들이 더 자라면 커피밭의 죽은 나무를 베어내고 옮겨 심을 예정이라고 한다. 품종은 뭐냐고 물었더니, 정부 관계자가 튼튼한 품종이라고 해서 심었는데 이름은 파카스Pacas란다. 나는 아연실색했는데 파카스는 커피 잎병에 매우 취약한 품종으로 업계에는 이미 이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차마 이 얘기를 그의 새로운 희망들 앞에서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농장을 둘러봐도 커피 열매 껍질 벗기는 펄퍼가 보이지 않아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작년까지는 펄퍼를 가진 이웃 농장에서 빌려 썼는데 올해는 외국 커피 회사가 새로 대여해줬다며 밝게 웃었다. 100달러면 살 수 있는 펄퍼도 없이 수십 년 동안 커피 농장을 운영해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펄퍼를 보여주겠다며 낡은 창고 문을 열었다. 낮인데도 문 안쪽은 매우 어두웠다.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그제야 살림살이를 드러냈다. 거긴 그의 집이었다. 방 한쪽 매트리스 위에는 그의 아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우리가 얘기하는 동안에도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그곳은 문밖의 세상과 단절된 시간이 웅크리고 있었다.


내가 마리오를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이 년 후 서울에서 열린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 대회에 그가 에콰도르 국가대표로 참석했을 때다. 그는 전 세계 국가대표가 모인 대회에서 조금도 떨거나 주저하지 않으며 흥겹고 인상적인 시연을 펼쳤다. 내가 일하는 회사 사무실에서 그의 연습을 도우며 보낸 며칠은 이 년이라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과야킬에 있던 그의 랩과 바로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결국 본선 진출에 실패했지만 그를 포함한 누구도 그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남은 서울 일정 모두를 본선에 진출한 케냐 국가대표의 대회 준비를 돕는 데 썼다. 나는 몇 년 전 세르비오의 소식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최고의 에콰도르 스페셜티 커피를 가리는 대회 타사 도라다Taza Dorada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내 우려와 짐작이 빗나가서 통쾌하고 기뻤다.

 


나의 문


나에게는 어려서부터 지워지지 않는 환영이 하나 있다. 이제 막 불이 꺼진 어두운 극장 안. 영화가 곧 시작하려는 찰나에 출입문이 살짝 덜 닫혔는지 빛이 새어들어 문의 실루엣을 그리고 있다. 아주 희미한 빛이어서 눈이 부시거나 영화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이윽고 영화가 시작됐지만 나는 영화가 보여주는 새로운 세상에 집중하지 못했다. 실루엣으로 빛나는 문은 영화 밖 다른 세계가 있다는 강력한 증거였고 그것은 더없이 매혹적이어서 영화가 주는 설렘을 압도했다.


나는 그후로 교실에 앉아서도, 내 방 침대에 누워서도 어둠 속에서 빛나는 문밖의 세계를 상상하며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어른들의 시간을 견뎌나갔다. 이 세상이 만들어내는 모든 기쁨과 슬픔, 의미와 무의미, 감각의 다발들이 극장 영화처럼 언젠가 끝날 것이고 그때는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일 것이라 믿으며 눈앞의 현실에 깊이 몰입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문을 열어도 열어도 끝없이 또다른 문으로 이어지는 어른으로서의 세상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문밖에 펼쳐질 매혹에 한 번 사로잡힌 손은 지금도 여전히 문고리만을 좇고 있다.


어쩌다 커피 일을 하게 되었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늘 커피를 좋아해서요라고 답한다. 그러고 나서 상대방의 눈을 들여다보면 한심하다는 듯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은 서커스 좋아한다고 서커스 단원이 되지 않고 야식 좋아한다고 야식을 팔지는 않아요. “. 맞아요.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지요.” 다만 축복이라고, 살며 일하며 아무 문도 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문 너머에는 막다른 길이나 낭떠러지도 있었고 열었던 문을 닫고 뒤돌아 가는 길은 늘 길고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문밖이 궁금하다. 그곳에는 늘 미지의 사람과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한 세상이 닫히고, 나아가고 헤어지고, 보여주고 가리고, 그러면서 마음의 문들을 여닫고. 그러고 보니 어떤 문은 한 번 닫힌 후 영원히 다시 열리지 않았다. 아니, 차마 다시 열지 못했다. 하지만 위로가 되는 성경 속 어느 구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문밖으로


호텔 방문이 스르륵 열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Pil, vamos(, 가자!)” 문을 열고 서 있는 현지 파트너의 그림자가 아침 햇살에 침대맡까지 길게 걸려 있었다. 다음 농장은 어디였더라, 눈을 비볐다. 이곳은 위도 0도선, 적도가 지나는 곳, 에콰도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