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내가 여기에 왜 왔더라-왕품질 버스와 호텔 사하라

이곳은 엘살바도르의 찰라테낭고에 있는 커피 농장. 차로 이십 분만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온두라스 국경이다. 엘살바도르에 열 번 넘게 왔지만 이렇게 쌀쌀한 날씨는 처음이다. 어젯밤은 농장에서 묵었는데 이불이 없어서 얇은 침대 커버 덮고 자야 했다. 새벽까지 덜덜 떨다가 간신히 잠이 들었다. 오늘은 여러 커피 농장을 방문하고 커피밭을 오르내리느라 피곤해서 저녁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엘살바도르에 처음 온 것이 언제더라.


중미 여섯 나라 중에서 내가 처음 관심을 가졌던 커피 산지가 엘살바도르였다. 13년 전, 당시 최고 전성기였던 스텀프타운커피에서 마셨던 엘살바도르 킬리만자로 농장 커피가 정말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CoE(Cup of Excellence) 국제심사위원을 맡기 위해 지원한 나라도 엘살바도르였다. 엘살바도르는 1740년, 중미에서 가장 먼저 커피 재배를 시작했다. 그후 커피 재배는 엘살바도르의 주요 산업이 되었고 1980년 내전이 발생하기 전까지 GDP의 50퍼센트를 담당할 정도였다. 하지만 12년간 이어진 내전으로 인한 정치·경제적 혼란과 해외로의 피난 행렬, 국제 커피 가격 폭락, 최근의 커피 녹병과 이상기후로 지금은 GDP 5퍼센트까지 하락한 상태다.


커피 리브레를 오픈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았을 때, 일본 스페셜티 커피업계 리더였던 유코 선생님의 초대로 니카라과 산지에 처음 방문했다. 이왕 어렵게 중미까지 갔는데 니카라과만 달랑 다녀오기는 좀 아쉬워서 나는 평소에 꼭 가보고 싶었던 엘살바도르 킬리만자로 농장의 농장주 아이다에게 무작정 메일을 보냈다. 당시 그녀는 이미 전 세계 스페셜티 커피업계의 대스타였고 가장 유명한 스페셜티 커피 회사인 스텀프타운과 카운터컬처, 스퀘어마일 등에만 생두를 독점 공급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나름대로 정성 들여 쓴 장문의 메일이 통했던지 생각지도 않게 방문해도 좋다는 답장이 왔다.


니카라과 일정이 끝나고 일행과 헤어지자마자 나는 신이 나서 엘살바도르 가는 장거리 버스를 예매하고 정류장 표지판도 없는 도롯가의 주유소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다섯 시간을 넘게 해질녘까지 기다렸는데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일단 근처 허름한 호텔에서 자고, 전날 버스표를 끊었던 매표소에 택시 타고 찾아가 따졌다. 어제 표를 팔았던 아저씨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오늘은 꼭 올 거라고 했다. 예매한 버스가 다음날 온다는 말이 이해가 안 갔지만 일단 다시 주유소 앞으로 갔다. 반신반의하며 서너 시간을 더 길가에 앉아 기다렸더니 정말 버스가 왔다. 버스 승무원이 탑승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고 태워줬다. 무슨 버스가 다음날 오냐며 불평이라도 한마디해주려 했지만, 버스가 와준 것이 정말 고마워 “그라시아스(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 버스의 이름은 잔혹하게도 ‘킹 퀄리티King Quality’였다.


왕품질 버스는 니카라과와 온두라스 국경을 거쳐 열 시간 정도를 달렸고 한밤중에야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에 도착했다. 산살바도르는 그 당시나 지금이나 높은 범죄율과 잦은 총기 사고로 유명한 곳이다. 엘살바도르는 2015년 세계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 기록되었고 지금까지도 갱단 규모가 경찰과 군대를 합친 것보다 큰 걸로 악명 높다. 승객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중나온 친지와 함께 사라졌다. 어둡고 낯선 곳에 인적까지 드물어지자 불안함과 초조함이 엄습해왔다. 택시 찾느냐는 몇몇 호객꾼의 제안은 있었지만, 엘살바도르에서 택시 잘못 타면 바로 납치 강도당한다는 경고가 떠올라 탈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호객꾼마저도 빠르게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고 원체 겁이 없는 나도 슬슬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때 마침 택시 하나가 앞에 섰는데 사람이 괜찮아 보이기도 하고 더는 길에서 헤매면 위험할 것 같아 일단 그냥 올라탔다. 숙소를 예약한 산타아나까지는 산살바도르에서 그 밤중에도 차로 사십 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돈이 없어 싼 호텔을 예약했더니 택시 기사도 위치를 몰라 그 야심한 밤에 좀비처럼 걸어 다니는 술 취한 사람 몇몇을 붙잡고 길을 되물어야 했다. 간신히 나를 호텔 앞에 내려준 택시는 쫓기기라도 한 듯 황급히 떠났고 어두운 밤거리에는 사람 한 명, 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서부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황량함 그 자체였다.


호텔로 들어가는 건물 앞에 섰더니 호텔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호텔 사하라Hotel Sahara’. 아주 적절하면서도 뭔가 기이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호텔 건물은 꽤 큰 편이었는데 경비나 직원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호텔이 맞긴 맞나, 폐업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계신가요?” 몇 번이나 사람을 부르고 나서 한참을 더 기다린 후에야 직원이 졸린 눈을 비비며 나타났다. 이번에도 불평 한마디해주려고 했지만, 그가 나타난 것 자체가 정말 고마웠다. 속으로 ‘그라시아스’라고 말하고 말았다. 체크인하고 방에 들어와 지친 몸을 낡은 침대에 누였더니 이 길고 파란만장했던 하루가 믿기지 않았다. 피곤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고 낯설고 허름한 호텔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의식만 더 또렷해졌다. 내가 여기에 왜 왔더라…


그로부터 만 이틀 넘게 만나기로 한 아이다가 연락이 안 됐다. 출국 일정은 다가오는데 괜한 헛수고만 한 것 같고 별생각이 다 들었다. ‘역시 돈 없고 보잘것없는 사람과의 약속이니 까먹었겠지’ 생각했다. 낮에는 산타아나 구시가와 성당 주변을 하릴없이 돌아다녔고 계속 이메일만 확인하며 초조하게 저녁을 보냈다. 그런데 출국을 하루 앞두고 아이다에게 만나러 오겠다는 답장이 왔다. 호텔 앞에서 기다렸더니 검은색 험비 차량에 중무장한 경호원을 대동하고 아이다가 나타났다. 급작스레 할머니 상을 당해 경황이 없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상심이 깊었다. 괜한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우리는 아이다의 커피 가공소를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고 아이다가 판매하는 인근 농장 커피 샘플을 함께 커핑했다. 커피 맛이 어떻냐고 물어서 정말 맛있다고 했다. 아이다는 내게 샘플을 주며 관심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며 샘플을 받아 가방에 담았다. 호텔로 돌아와 다음날 아침 떠나기 위해 짐을 쌌다. 내가 아이다를 만나서 같이 커핑을 하다니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말로만 듣고 동경하던 스페셜티 커피 세계에 나도 한 걸음 내디딘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먹어본 샘플은 역시나 훌륭했다. 하지만 거의 천만 원가량 하는 그 생두를 살 돈은 없었다. 당시 매장도 없고 원두 납품도 거의 없어서 생두를 산다 해도 쓸 데가 없었다. 더군다나 나는 생두 무역을 위해 외국에 돈을 송금하는 방법도, 구매한 생두를 한국까지 운송하는 방법도 몰랐다. 이 일을 겪은 후 나는 다이렉트 트레이드로 생두를 살 수 있게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 하지만 그후로도 3년 동안 회사는 엄청난 순손실에 적자를 불려나갔다.


다이렉트 트레이드를 위한 첫 여정이었다. 하지만 엘살바도르 가는 장거리 버스도, 호텔을 찾는 것도, 아이다와 연락이 닿지 않은 것도 내 예상과는 달랐다. 그렇다고 꼭 나쁘지는 않았다. 한두 번쯤은. 하지만 그후로도 수많은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자 나도 별수 없이 실망하고 주눅들기 시작했다. 남 탓도 해보고 내 탓도 해봤다. 그러면서 실패의 연속 가운데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살면서 자신을 다독이며 한 번 더 용기를 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남은 인생 내내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무언가 배울 수 있고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고 믿자 그게 또 어슴푸레한 희망이 되었다. 희망을 좇기로 했다. 어쨌거나 장사는 계속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