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우린 아마 잘 안 될 거야

“하느님은 왜 제게 레슬링에 대한 열정과 거지 같은 재능을 함께 주셨나요?”

 

잭 블랙이 주연을 맡은 영화 <나초 리브레>에 나오는 대사다. 나는 이 대사에서 마음의 큰 위안을 얻었다. 커피를 공부하고 커피 일을 하면 할수록 느끼는 어려움과 초라함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문장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새로 시작하는 회사 이름을 흔쾌히커피 리브레Coffee Libre’라고 지었다. 더군다나 리브레Libre는 스페인어로자유로운이라는 뜻이니 평생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온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이름이라 생각했다.

 

<나초 리브레>는 유쾌하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코미디 영화지만, 찰리 채플린의 영화처럼 한바탕 웃고 나면 생각할 거리가 하나둘 떠오르는 매력이 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영화의 실제 배경은 멕시코 지방도시의 가톨릭 보육원이다. 이곳의 담당 신부 구티에레스는 젊은 시절 마약중독자에 갱단의 일원이었지만 개과천선한 후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사제 교육을 이수하고 신부가 되었다.


멕시코로 돌아와 보육원에 부임한 그는 보육원 운영 자금이 부족해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음식조차 제공하기 힘들어지자 큰 결심을 한다. 밤에 프로레슬링 경기에 선수로 출전해 번 수입으로 보육원 아이들을 보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레슬러로 점차 인기를 얻게 되면서 그가 실제 신부라는 소문이 퍼지자 주교는 어느 날 그를 불러 야단치며 당장 그만두라고 호통쳤다.

 

구티에레스 신부는 이렇게 반문했다.

“그럼 보육원 운영 비용 주실 건가요?”

그러자 주교는 이렇게 답했다.

“알았다. 계속해라.”

 

그가 선수로 출전한 멕시코의 레슬링 경기는 루차 리브레Lucha Libre라고 한다. 루차 리브레 경기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가 마스크를 쓰고 시합을 한다. 선수들은 경기중 상대에 의해 마스크가 벗겨지는 것을 최악의 수치로 여겼다. 마스크는 자신의 정체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착용하는 새로운 정체성이다. 마스크는 자유와 용기, 새로움을 뜻한다.


살다보면 마스크가 절실해지는 순간이 있다. 억울하고 부끄러울 때, 작아지고 후회할 때, 벗어날 도리가 없고 왜 사나 싶을 때, 마스크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 되기도 한다. 나는 커피 리브레가 커피 거래 과정에서 잊힌 얼굴들을 복원하며 누군가의 희망이 되기를 원했다. 우리가 기꺼이 마스크를 쓰고 조금 더 용기를 낸다면 <나초 리브레>의 주인공처럼 링 위에서 매번 두들겨 맞아도 언젠가 승리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루차 리브레는 지금도 국민 스포츠로 인기를 얻고 있다. 사실 루차 리브레를 엄밀한 의미에서 스포츠라고 말하기는 좀 어렵다. 왜냐하면 이 경기는 선수들이 선한 역할과 악한 역할을 맡아 각본에 따라 경기를 치르기 때문이다. 각본이 있다는 점에서 루차 리브레는 오히려 연극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연극은 오로지 단 한 번만 상연된다. 우리 인생처럼.


링에는 전업 선수도 오르지만 많은 선수가 구티에레스 신부처럼 목수, 상인, 노동자, 의사 등 다양한 실제 직업을 갖고 있다. 지리멸렬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링에 올라 자신의 삶을 위태롭게 하던 악의 상징과 싸워 마침내 이긴다. 루차 리브레는 모두가 원하는 영웅이 탄생하는 시간이고 링은 인생 역전의 공간이다.

 

나에게도 루차 리브레라는 기적의 링이 절실했다. 내가 하려는 일은 분명 커피 비즈니스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시작부터 가망이 없어 보였다. 나는 가진 것이 없었고 스페셜티 커피는 국내 시장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었다.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커피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다. 심지어 창업 당시 회사 모토는우린 아마 잘 안 될 거야였다. 한국의 커피 시장에서 스페셜티 커피 비즈니스를 한다는 게 정말 안 될 일처럼 여겨졌다. 모든 것이 불투명하므로 가장 확실한 것을 목표로 세우고 달성해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면 아등바등하다 실패해도 늘 목표를 달성하는 셈이었다.

 

링 위에서 구티에레스의 별명은폭풍 사제Fray Tormenta’였다. 그는 삼십여 년간 레슬러로 활동했고 팬도 많았다. 레슬러로 번 수익금으로 평생 2000여 명의 고아를 돌보다 은퇴했고 지금은 연로해 투병중이다. 얼마 전 「이제는 우리가 그를 도울 때입니다」라는 기사를 본 것이 그에 대한 마지막 소식이다.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의 책 『성과 속』은 서로 대척점에 있다고 우리가 오랫동안 믿어왔던 성스러움과 속됨이 일상에 구분없이 혼재되어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나는 구티에레스 신부의 삶이 이 책의 주제를 잘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가장 성스러운 직업인 사제와 가장 세속적인,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로 호흡하는 엔터테이너로서의 삶을 동시에 살았기 때문이다.


낮에는 말씀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밤에는 폭풍 같은 이단옆차기로 사람들의 시름을 덜어주었다. 낮과 밤, 성과 속, 선과 악, 승리와 패배도저히 공존할 수 없다고 믿어져온 것들이 구티에레스 안에서 소통하고 화해했다. 창업계획서 한 장 없었지만 내 꿈만큼은 창대했다. 구티에레스 신부처럼 커피 리브레가 의미와 재미, 이윤과 윤리, 자유와 연대가 어우러진 주체가 되는 것.

 

커피 리브레의 로고는 현재 프랑스에서 인쇄노동자로 일하는 대학 친구가 만들어줬다. 승리에 도취된 멋진 모습 말고 1라운드에서 흠씬 두들겨 맞았고 앞으로도 가망 없지만 2라운드에 다시 올라야 하는 레슬러의 복잡한 표정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나는 그게 <나초 리브레>에서 연전연패하는 주인공의 마스크 속 진짜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로고가 창업 이후 계속된 매출 부진과 경영 미숙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진 내 표정이 될 줄은 차마 몰랐다. 커피 리브레라는 이름과 로고는 그렇게 내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