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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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엔 태양이 작열하고, 멀리 커다란 가마우지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게 보이더군요. 배는 이리저리 출렁이며 태평양을 가로질러 몇 날 며칠째 달리고 있었고요. 아니, 바다 위를 천천히 둥둥 떠갔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군요. 김씨는 점점 말이 없어져갔습니다. 이씨나 박씨도 마찬가지였지요. 아마 배 안에서 나름 즐거웠던 사람은 나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대양은 한없이 넓었고, 난 오래전 읽었던 『백경』을 떠올리며 어디선가 흰 고래가 나타나지는 않을까 싶어 온종일 수평선을 바라보았지요.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말입니다. “나를 이슈미얼이라 불러다오. 아니지, 참. 나를 엑스라 불러다오.” 어떻습니까, 정말 멋진 광경 아닙니까? 

잠깐. 그러고 보니 내가 얘기했던가요? 우리가 천신만고 끝에 냉동 참치를 실어나르는 배에 몰래 탈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휴, 말도 마십시오. 배편을 구하며 겪은 온갖 수모와 고생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터이니, 굳이 여기에 쓰진 않겠습니다. 여하간, 그 배는 코스타리카 국적의 대형 어선이었고, 우리를 실었던 북미 서안의 항구도시에 잠시 정박한 뒤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요, 적어도 처음 배에 오를 때만 해도 그렇게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기이한 시점에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법입니다. 그 얼마 후 우리가 겪게 되는 사건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 사연을 말하기 전에, 먼저 내 동생과 다시 만났던 이야기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그건, 세상에 온통 어둠과 물결 소리만이 가득했던 어느 깊은 밤의 일입니다. 잠이 오지 않아 홀로 갑판에 나와 서 있었는데, 대양 한가운데라서 그런지 하늘엔 무수한 별빛과 간간이 떨어지는 별똥별 이외엔 어떠한 방해전파도 떠다니지 않았습니다. 육지에서는 그렇게도 많은 각종 전자기파장들이 나의 초능력을 방해했는데, 그곳의 허공은 그야말로 텅 비어 있었지요. 아마도 그랬기에 동생을 다시 만나는 게 가능했던 걸 테고요. 여하튼, 그날 밤 뱃전에 서서 검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나에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그건 뭐랄까, 멀리 수평선 너머에서 커다란 공기 덩어리 하나가 밀려오는 듯한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어요. 나는 깜짝 놀라 멍하니 선 채로 그 덩어리의 움직임을 감지할 뿐이었지요. 단단하게 뭉쳐진 공기 덩어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곧 엄청난 파동이 되어 내 몸을 울리고 내 뇌를 진동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난 그것이 누군가의 목소리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요, 그건 정말로 반갑고 그리운 목소리였어요! 머나먼 모스크바의 어느 석조건물 칠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바로 내 사랑하는 동생이 보내는 텔레파시였던 거지요! 

―형? 

동생은 조그맣게 속삭이더군요. 나 역시 작은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동생아, 난 지금 바다 한가운데를 떠가고 있어.

―알아, 형.

―그래? 알고 있다니 다행이구나. 우린 한국으로 가는 중이야. 너와 나의 고향으로. 거기서 앞으로 일어날 어떤 끔찍한 일을 막고 싶거든. 

그러나 내 말에 동생은 침묵했습니다. 나는 뱃전에 철썩이며 부딪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동생의 대답을 기다렸지요. 하지만 멀리 모스크바에 있을 내 동생, 소련 정보국 최고의 초능력자인 와이의 침묵은 무척이나 길었습니다. 한참 후 드디어 와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어요. 

―형, 우리가 거기 꼭 가야만 할까? 

그렇게 묻는 동생의 목소리가 너무나 어두워서, 나는 그만 손에 들고 있던 스니커즈를(아, 제가 얘기했던가요? 정보기관을 탈출한 뒤 주유소에서 사 먹었던 스니커즈에 완전히 매혹되고 말았다고 말입니다. 난 배에 타기 전 스니커즈를 한 박스 샀어요. 그러고는 가방에 소중히 넣고 승선했지요) 바다로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다행히 재빨리 손으로 움켜쥔 탓에 놓치지 않을 수 있었지만요. 나는 와이에게 물었습니다. 

―왜? 가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 거야? 아니, 그보다도, 방금 ‘우리’라고 하지 않았니? 그렇다면 너도 한국으로 가는 거야? 

그러나 또다시 동생에게선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그의 목소릴 기다렸지요. 하지만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흘러 별자리가 위치를 바꾸었음에도, 와이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들리는 것이라곤 오직 밤바다가 내는 거대하고 신비로운 침묵뿐이었지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난 그 큰 스니커즈 하나를 다 먹어치웠더군요. 손가락에 묻은 누가 크림까지 깨끗이 핥아먹은 뒤, 난 아쉬운 심정으로 뱃전에서 돌아섰습니다. 어쩌면 와이는 더이상 내게 알려줄 게 없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혹은, 그저 안부인사 대신 이렇게 물었던 건지도 모르지요.

“형, 우리가 거기 꼭 가야만 할까?”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애는 분명 ‘우리가’라고 했거든요. 아무리 되새겨봐도 결코 잘못 들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동생 역시 한국으로 가고 있을까? 궁리해봤자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기에, 난 침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비좁은 창고 한구석이었지만)로 돌아왔습니다. 아침이 올 때까지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볼 요량이었지요.   


20.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실현될, 아니 어쩌면 이미 실현된 이야기


갑판 아래로 나 있는 창고 문을 열자 비린내가 훅 끼쳤습니다. 나는 잠시 숨을 멈춘 채 그 역겨운 냄새 때문에 울렁거리는 속이 가라앉길 기다렸습니다. 어둠에 서서히 눈이 익자, 창고 한구석 그물과 밧줄 같은 것이 뒤엉켜 있는 사이에 김씨가 꼿꼿이 앉아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역시나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김씨 본인의 말에 의하면 그랬습니다. 자신이 고위직 요원이라며 무궁화가 그려진 수첩을 보여주기도 했지요) 정보 요원답게 잠자는 자세조차 엄격하기 그지없었던 겁니다. 나는 속으로 감탄하며 반대편 구석, 그러니까 빈 생선 상자가 나란히 쌓여 있는 모퉁이로 더듬더듬 걸어갔지요. 비린내는 사실 그 상자에서 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널빤지로 만든 그 조악한 생선 상자는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배의 선원들은 무척이나 부지런하고 검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참치잡이가 주업이었지만, 또한 다른 물고기들도 많이 잡아올리곤 했어요. 잠시도 쉬지 않고 거의 하루 온종일 일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그렇게 잡은 잡어들은 따로 소금을 뿌려 나무로 만든 상자에 보관했다가 중간에 들르는 항구에서 싼값에 팔아치웠죠. 그런 다음 그들은 항구 한쪽에 있는 공용 수도로 가서 그 나무 상자들을 대충 헹궜습니다. 때론 내가 그 일을 하기도 했는데요, 빨간 호스에서 콸콸 쏟아져나오는 맑은 물로 생선 상자를 씻는 건 사실 그리 힘든 작업은 아니었어요. 물을 상자에 뿌리면 거기 붙어 있던 내장이나 비늘 조각 같은 것들이 금방 씻겨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비린내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었고, 결국 그 덜 마른 나무 상자들을 쌓아둔 창고에선 언제나 역한 생선 냄새가 가시지 않았던 거지요. 물론 소금에 절여둔 생선 중 일부는 선원들의 식량으로도 쓰였습니다. 우리는 짠 생선구이에 말라비틀어진 옥수수빵을 곁들여 먹곤 했지요. 선원들은 자기들끼리 갑판 한쪽에 모여 앉아 그걸 먹었고, 우리는 다른 편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그 맛없는 음식을 우적우적 씹어야 했던 겁니다.

아, 그러고 보니 어느 오후의 점심시간이 기억나는군요. (내가 그 점심식사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날 엄청나게 큰일이 우리에게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김씨는 극도로 의기소침해졌고 거의 말도 없어졌으며, 따라서 난 거의 혼자가 된 기분―하긴 진짜로 혼자가 되기도 했지만요―으로 그 길고 지루한 항해를 계속해야 했어요.) 곧 폭풍우가 몰아치려는지 하늘은 잔뜩 흐렸고 배는 출렁이며 흔들리는데, 우리는 왠지 이상한 절망감에 젖어 생선을 얹은 빵을 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박씨가 먹던 생선을 퉤 뱉으며 짜증을 내지 뭡니까.

“제기랄, 대체 언제까지 이런 맛없는 식사를 해야 하는 거지?” 

사실 처음에 그의 말에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 밥을 먹은 게 하루 이틀의 일도 아니고, 한국 땅에 도착하려면 앞으로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바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나는 소금에 절인 짠 생선과 곰팡이 핀 옥수수빵을 먹는 일이 별로 싫진 않았습니다. 물론 맛은 없었지만,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라 불만 같은 걸 가질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게다가 조국은, 나를 기다리고 있기까지 했습니다. 그곳은 나라를 뒤엎으려는 사악한 세력이 우글대는 땅이었고, 거기서 난 위험 분자들을 색출하여(당연히 나의 초능력을 이용하여 말입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기에서 구해낼, 그야말로 위대한 임무를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박씨의 말엔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히 빵을 뜯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박씨가 다시 한번 화를 내더라고요.

“이봐, 너. 엑스라고 했나?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되지도 않을 초능력 하나 가졌다는 너 같은 놈을 데리러 이역만리까지 왔다가 우리 모두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라고! 그런데 네놈은 목구멍으로 빵이 넘어가냐, 응?”

나는 씹던 걸 멈추고 박씨를 바라봤습니다. 그의 얼굴은 강렬한 햇볕 탓에 시커멓게 타 있었고, 입고 있는 검정 양복은 다 해져 너덜너덜했습니다. 선글라스는 이미 알이 하나 부서져나간 지 오래였고요. 그런 그의 몰골을 보자 새삼 미안한 마음이 북받쳐 고개를 숙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여러분. 괜히 나 한 사람 때문에……”

그와 동시에,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는 고향 땅을 찾아 망망대해를 헤매는 내 신세가 처량하여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였어요. 김씨가 생선 조각과 빵을 휙 집어던지며 벌떡 일어선 것은 말입니다. 

“박, 지금 뭐라고 했나?”

김씨는 낮고 단호하면서도 엄격한 어조로 이렇게 묻더군요. 해를 등지고 선 채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엔 뭔지 모를 아우라가 넘쳐흘렀고, 그 앞에서 우리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이씨가 얼른 일어서서 김씨를 제지했습니다.

“대장님, 진정하십시오. 박이 요즘 멀미 때문에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이씨를 확 밀쳐내며, 김씨는 박의 멱살을 움켜잡았습니다. 

“넌 국가와 민족에 대한 우리의 맹세를 벌써 잊은 거냐? 지금 나라가 어떤 꼴에 처해 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네놈이, 어떻게 그런 불평을 할 수가 있지?” 

사실 평소 같으면 박씨는 얼른 저자세로 돌변하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웃어넘겼을 겁니다. 그런 다음 선원들에게 가서 독한 술 한 병을 얻어와서는 김씨의 마음을 풀어주려 애썼겠지요. 이런 말을 늘어놓으며 말이에요.

“에이, 대장님. 화 푸십시오. 제가 실수했습니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어떻게 단 한시라도 잊겠습니까?”

그러면 김씨는 못 이기는 척 웃고, 잠시 후엔 다들 모여 남은 생선을 먹으며 술 한 방울로 목을 축였을 거다, 이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박씨가 정색을 하며 말대꾸를 했기 때문입니다.

“제길, 그놈의 조국, 민족. 그따위 말도 안 되는 얘긴 이제 집어치워요! 지금 우리 꼬라지를 봐요. 이게 뭐냐고요! 거지가 따로 없지 않아요? 대장님은 정말 모르겠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박씨가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 흐느끼지 뭡니까. 한국 정보기관의 최정예 요원이라는 사람이 다 떨어진 양복 차림으로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당황스러워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김씨나 이씨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꺼이꺼이 소리 높여 우는 박씨를 아무도 말리지 않은 걸 보면 말입니다. 결국 이씨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오늘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며칠만 더 참으면 조국 땅을 밟을 수 있다고. 초능력자인 엑스를 잘 데리고 왔으니 포상도 푸짐할 테고. 그런데 뭐가 걱정이기에 그렇게 슬피 우는 거야?” 

그러면서 이씨가 울고 있는 박씨를 일으켜세우려던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박씨가 더 큰 목소리로 이렇게 외친 것은 말입니다.

“국가? 민족? 개나 주라고 해. 이젠 못해먹겠어. 난 돌아갈 거야. 당장 다음 항구에서 내려달라고. 거기서 뭐라도 얻어 타고, 그냥 집으로 가버릴 생각이야. 그래, 너랑 대장이랑 저 사기꾼인지 진짜 초능력자인지 알 수 없는 엑스인가 뭔가 하는 놈, 셋이서 잘해보라고!”

그때 난 보았습니다. 김씨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지는 것을. 그는 짐승처럼 포효하며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어요. 사실 김씨는 ‘대장’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체구가 월등히 컸거든요. 팔엔 근육이 울퉁불퉁했고 얼굴은 검게 그을어 있었는데, 자주 이런 말을 중얼거리곤 했지요.

“이 주먹으로 베트콩을 몇 마리나 때려잡았는지 알아?” 

어쨌든 그렇게 험악한 인상의 김씨가 갑작스레 펄쩍 뛰어올라 박씨의 멱살을 잡자, 나와 이씨는 아무 말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어야만 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 둘이 힘을 합쳤다면 아무리 김씨가 강했던들 어떻게든 제압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난 왠지 그럴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씨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불평불만이나 늘어놓는 박씨쯤은 그대로 사라져주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여하튼, 그렇게 뛰어오른 김씨가(아마 그때 그는 이런 말을 외쳤던 것 같아요. 확실한 건 아니지만 말이에요. “네가 감히 그런 소릴 지껄이다니! 이건 우리 조직에 대한 모욕이야. 배신이라고!”) 박씨를 번쩍 들어올리더니 그대로 뱃전 너머로 던져버린 것은 그야말로 눈 깜빡할 새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휴…… 아직도 바다로 날려가며 두 팔을 마구 휘젓던 박씨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는 마치 거대한 앨버트로스처럼 멀리멀리 날아갔어요. 그러면서 끝까지 외치더군요. 

“대장, 대장도 이제 정신 차리고 살길을 도모하라고요. 이씨, 너도 마찬가지야. 국가나 민족 따윈 잊고 새 출발 하라니까. 엑스, 당신도 그 망할 땅으로 돌아가지 말아요! 거기 가봤자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 헛되이 삶을 희생하지 말라고!”

그렇게 고래고래 악을 쓰며 날아간 박씨는 드디어 수면 위로 떨어졌고 동시에 엄청나게 큰 “첨벙!”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황급히 뱃전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박씨는 보이지 않았고 그가 떨어진 자리엔 부글부글 거품만 끓어오를 뿐이었습니다. 그 주위를 상어인지 돌고래인지 알 수 없는 유선형의 동물 몇 마리가 빙빙 돌고 있었지요. 하지만 더욱 놀라운 일이 곧이어 일어났습니다. 이씨마저 뭔가에 홀린 듯 바다로 뛰어들었으니 말입니다. 아니, 그전에 먼저, 어디선가 들려온 울음소리에 대하여 말씀드려야겠군요. 그래요, 박씨가 빠진 부근에서 부글부글 올라오던 거품도 다 사라지고 고래인지 상어인지도 어딘가로 떠난 뒤에도, 우린 뱃전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김씨의 동공은 텅 비어 있었는데, 그 안에선 광기 어린 불꽃 같은 게 활활 타올랐지요. 그의 눈치를 보며 머뭇대고 있는데, 저쪽에서 누군가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습니다. 돌아보니 이씨가 뱃전에 매달린 채 아래를 보며 울먹이고 있더군요. 처음에 난 그가 동료를 잃은 슬픔으로 흐느끼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다가가 어깨를 토닥였지요.

“울지 말아요, 이씨.” 

하지만 이씨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큰 소리로 울어대기 시작했지요. 

“이씨, 어차피 정보기관 일이란 게 다 그렇잖아요. 작전을 펼치다보면 동료를 잃기도 하고 그런 거 아닌가요? 나도 잘은 모르지만, 영화를 봐서 잘 알고 있다고요.” 

그러자 이씨가 문득 울음을 멈추더니 나를 돌아봤습니다. 

“엑스, 내가 죽은 박 때문에 울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난 단지,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어서 우는 거라고요. 국가와 민족을 최전선에서 지켜야 할 우리가 이런 식으로 분열되었으니, 이제 누가 조국을 이끌어가지요? 쪽팔려서 어떻게 하늘에 얼굴을 들 수 있겠느냐고요.”

그러더니 그는 그때까지도 아무 말 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던 김씨를 향해 외쳤습니다. 

“대장, 대장은 내 마음을 알지요? 우린…… 산전수전을 다 겪은 동료였잖아요!”

그제야 김씨는 이쪽을 돌아봤습니다. 그 눈빛에 너무 많은 것이 담겨 있어 뭐라고 해석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씨가 배의 난간으로 기어올랐습니다. 그러더니 마치 자신이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듯 팔을 벌린 채 눈을 감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기묘한 자세로 서서, 그는 나를 돌아봤습니다.

“엑스, 뒷일을 부탁해요. 당신만이라도 살아남아, 국가와 민족을 위해 그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달란 말입니다.”

그런 뒤 그는 김씨에게 뭐라 설명할 수 없이 오묘한 미소를 보냈어요.

“미안해요, 대장. 난 먼저 떠날게요. 언젠가 우린 다시 만날 수 있겠지요! 그럼 안녕! 그동안 고마웠어요, 대장!”

그렇습니다. 그게 이씨의 최후였습니다. 그는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었고, 그 순간 엄청나게 높은 물기둥이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안 돼! 돌아와요, 이씨!”

나는 애타게 외치며 난간에서 몸부림쳤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어색해하며 몸 둘 바를 몰라 머뭇대던 나에게, 이씨는 조용히 스니커즈를 쥐여줬지요. 그 당시를 회상하자 눈물이 한도 끝도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사실, 검은 양복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 채 알 수 없는 얘길 자주 늘어놔서 그렇지, 알고 보면 그도 따뜻한 사람이었을지 모르잖아요. 

하긴, 그러고 보면 그와 나는 대화를 자주 나누는 편이기도 했습니다. 깊은 밤, 별이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갑판에 앉아 있을 때, 이씨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준 얘기들은 주로 우리가 향하고 있는 조국이 얼마나 큰 혼란과 위기에 빠져 있는가에 대해서였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고향 땅엔 지금 너무나 많은 적들이 신분을 감춘 채 곳곳에 숨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었지요. 

“도대체 그들이 어디 숨어 있다는 건가요?”

그러자 이씨는 조용히 사방을 둘러본 뒤 엿듣는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다음에야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그들은 주로 땅굴을 통해 내려옵니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라디오를 통해 비밀스러운 전파를 흘려서 순박한 사람들을 세뇌하는 거지요.” 

땅굴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뭔가 짚이는 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며 외쳤죠.

“알고 있어요. 그건 원래 새우젓을 만들기 위해 땅 밑으로 파놓은 긴 굴이 아니던가요? 혹은 어떤 이들은 겨우내 무와 배추를 저장하기도 한다면서요? 여하튼 내 덕분에 그게 발견됐다고 하더군요. 사실 실제로 찾아낸 건 땅 밑에 켜켜이 쌓인 시체들인데, 대체 중간에 어떻게 와전된 건지 모르겠다니까요.”

여기서 일단 말을 멈추고, 난 갑판 뒤쪽 어두운 그늘을 자세히 살폈습니다. 비록 선원들이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다 해도, 어쨌든 내가 하는 얘기들은 모두 국가의 일급비밀에 속하는 것들이었으니까요. 다행히 갑판엔 나와 이씨 외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낮의 고된 참치잡이 노동에 지친 선원들은 그때쯤엔 다들 선실에서 곯아떨어져 있을 게 확실했지요. 하여튼,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난 다시 말을 이어갔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일단 잘못 전달된 정보부터 바로잡을 생각이에요. 그래야만……”

하지만 나는 이야기를 끝맺지 못했습니다. 이씨가 말을 자르며 불쑥 끼어들었기 때문이죠. 그는 긴 한숨을 내쉬더니 낮고 음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엑스, 당신의 말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도무지 알 수 없군요. 하긴, 상부로부터 당신을 데려오라는 지령을 받았을 때부터 난 회의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말이에요. 세상에, 초능력이라니. 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말입니까? 어쨌든 엑스, 당신이 땅속에서 뭘 찾아냈는지, 그 실체가 뭔지,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진짜로 중요한 건 놈들이 시시때때로 우릴 노리고 있으며, 이 땅에 침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뿐이니까요. 그러니 앞으로 그런 헛소리는 삼가는 게 좋겠군요.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그의 목소리가 어찌나 엄숙하고 무겁던지, 내 마음마저 낮게 가라앉았습니다. 이상하게 속까지 울렁거리며 없던 멀미까지 도지는 바람에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치고 있는데, 이씨가 다시 본래의 따뜻한 말투로 말을 걸었지요. 그는 언제 가져왔는지 양철 컵에 따뜻한 물 한 그릇을 떠온 참이었습니다.

“자, 이거라도 마셔요. 너무 긴장하지 말고요.”

물을 마시며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자, 이씨가 뭔가를 쑥 내밀었습니다.

“아, 이건? 이렇게 귀한 걸 나에게?”

난 미안하고도 고마운 마음에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습니다. 그건 이씨가 목숨처럼 아끼던 ‘한산도’라는 이름의 담배 한 개비였지요. 내가 머뭇대는 걸 보더니, 이씨가 껄껄 웃었습니다.

“괜찮아요. 자 한 대 태우세요. 이제 돌아가면 할일이 엄청나게 많은데, 여기 배 위에서라도 편히 쉬어야지요.”


그날 이씨가 건넸던 따뜻한 물 한 컵과 한산도 한 개비를 떠올리자,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그렇게 허망하게 가다니. 아아, 인생이란 물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다시 가는 거란 말인가. 뱃전에 매달려 수면을 노려봤지만, 이씨를 찾을 순 없었어요. 어쩌면 그때 우린 마리아나해구 바로 위를 지나가고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그의 몸은 일만 미터가 넘는 컴컴한 심해 어딘가로 가라앉았을 테고요. 잠시 후, 김씨가 나를 쳐다봤습니다. 

“엑스, 울고 있습니까?” 

그가 묻더군요. 나는 얼른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는 긴 한숨을 내쉬더니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어요. 

“잊어버리세요. 어차피 우리의 일이란 게 이렇습니다. 어느 한순간 동료를 잃는 건 일상다반사고, 자기 자신의 목숨 또한 보장받을 수 없지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이씨가 저렇게 떠나준 것이, 우리에겐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몰라요. 사실 이제야 털어놓는 일이지만, 엊그제 선장이 나를 불렀거든요. 선장실의 문을 두드리자, 그가 뒤를 돌아보며 커다란 파이프에서 연기를 내뿜었습니다. 그러고는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선장의 턱수염에는 생선 가시가 붙어 있고 팔뚝엔 문신이 잔뜩 새겨져 있었는데, 그런 사람이 바로 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위협적으로 말을 하니……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나였지만 좀 겁이 났던 게 사실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아무래도 항해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다고, 식량이 부족해질 테니 우리 일행 중 일부는 좀 사라져줬으면 좋겠다고 말이에요.” 

나는 처음에 김씨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습니다.

“일행 중 일부가 사라진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요?” 

그러자 김씨는 아무 대답도 없이 턱으로 깊은 바닷물을 가리켰습니다. 그곳은 아까 이씨가 뛰어든 자리로, 거기에선 아직도 미약하게나마 거품이 올라오고 있었죠. 그걸 바라보다가 문득 선장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달은 나는 공포에 질려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내가 겨우 입을 열자, 김씨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요. 어차피 우리가 모두 다 살아 돌아갈 순 없었어요. 그리고 이런 식으로 중간에 인원을 줄이는 건, 밀항을 하다보면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결국 선장의 말은 입을 줄이라는 건데,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 배에 남아야 할까요? 일단 나는 남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현재 우리 일행의 보스이고 지도자니까요. 그리고 당신 역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을 조국으로 무사히 데려가는 게 우리의 임무였으니까요. 그러니 결국 사라져줘야 할 사람은 이씨와 박씨밖에 없었던 겁니다, 알겠습니까?”

나는 여전히 덜덜 떨며 알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나는 이씨와 박씨가 바다로 뛰어든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게 된 거나 마찬가지였지요. 그리고 그제야, 아까부터 이쪽을 보고 있던 선원들의 행동 역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 누구도 우리가 서로 싸우다가 바다로 뛰어드는 걸 말리지 않았는데, 거기엔 모두 이유가 있었던 거지요. 우리 둘만 남은 걸 본 선장은(그의 턱수염엔 여전히 생선 가시가 들러붙어 있더군요) 흡족한 듯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고는, 파이프를 꺼내 입에 물고 선장실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김씨는 뱃전에 서서 한참 동안 바다만 바라봤습니다. 멀리서 향유고래 한 마리가 수면 위로 뛰어오르더니 곧이어 수많은 고래들이 햇살에 몸통을 반짝이며 떼 지어 지나갔습니다. 마지막 고래가 깊은 물속으로 사라지자, 김씨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자, 이제 창고로 돌아갑시다.” 

그는 이렇게 말하더니 성큼성큼 앞서 걷기 시작했어요. 


그뒤로도 우리들의 길고 지루한 항해는 계속됐습니다. 김씨는 점점 말이 없어졌어요. 그는 틈날 때마다 입고 있던 검은 양복을 벗어 먼지를 탁탁 털었고, 그런 다음 침을 뿌려가며 깃을 똑바로 세우려고 애썼죠. 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양복은 점점 해지더니 나중엔 거의 너덜너덜해졌습니다. 처음에 도대체 어떻게 생긴 옷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지경이었죠. 그가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던 검은 선글라스는 이미 선장에게 빼앗긴 지 오래였습니다. 어느 날 오후 참치 그물을 걷어올리던 선원들에게 욕을 퍼붓던 선장이 그 선글라스를 끼고 있더군요. 때로 김씨는 혼자 갑판 한구석, 그물과 밧줄 같은 걸 잔뜩 쌓아놓은 곳에 쭈그리고 앉아 주머니에 있던 무전기를 꺼내 만지작거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검고 커다란 기계에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긴 그럴 만도 한 게, 우리가 떠돌고 있던 바다는 그야말로 망망대해였으니까요. 동생에게선 여전히 아무 소식도 없었습니다. 그래요, 사방이 수평선뿐인 배 위에서 도대체 며칠이나 지났는지도 알지 못한 채 너무나 긴 시간을 지내다보니, 어쩌면 내 의식도 혼미해졌던 걸지도 모릅니다. 나는 점차 낮과 밤을 구분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어요. 아침에도 언제나 세상은 어두컴컴했고, 밤에 퍼뜩 잠을 깨면 이상하게도 바깥이 한낮처럼 환해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곤 했지요. 그러고는 멍한 머리를 한 번 흔들고 관자놀이를 꽉 누른 뒤 다시 잠을 청했던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탄 어선이 참치떼를 따라 극지방까지 거슬러올라갔기 때문에 그런 현상을 겪은 걸지도 몰라요. 그곳은 추웠고 하늘은 언제나 뿌옇게 흐렸으니까요. 내가 본 건 아마도 백야였겠지요. 

여하튼, 그렇게 흐릿해진 눈으로 차가운 바다를 내려다보며, 난 동생 와이를 생각했습니다. 나의 하나뿐인 혈육. 나의 반쪽. 나와 몸을 나누어 가진 자.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와이와 함께 고비사막에서 바라봤던 해돋이는 어쩌면 꿈이었던 걸까? 알고 보면 나에겐 동생 따윈 없는 건지도 몰라, 너무나 외로웠던 나의 영혼이 와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내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는 실재야. 살아 숨쉬는 존재라고. 하지만 다시 또 이런 의문이 떠올랐어요, 그런데 왜 이제 와이에게선 아무 소식이 없는 거지? 대체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냐고. 아니야, 그는 분명 나에게 마지막으로 물었어. 거기로 우리가 꼭 돌아가야만 하느냐고. 그렇게 묻던 그의 목소리가 너무 슬퍼서 내 눈엔 절로 눈물이 고였었지. 그 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내려 입술로 스며들었고, 난 혀끝으로 그 짠맛을 느꼈단 말이야. 그러니 와이는 꿈이 아니야. 내 동생은 정말로 살아 있다고. 

바로 그때였습니다.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