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회



양복점이 있는 골목은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둡고 컴컴했다. 만약 이곳이 정말로 유리 안드로포프의 단골 양복점이라면, 그 인간도 꽤 독특한 취향을 가진 셈이다. 비록 소비에트연방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고 물자가 부족하긴 했지만, 그래도 국가보안위원회 의장 정도 된다면 훨씬 더 고급스러운 양복점에서 옷을 맞춰 입을 수 있을 것이다. 루뱐카광장 인근에도 꽤 화려한 샹들리에를 밝혀둔 옷가게가 몇 군데 있었는데, 평소엔 그 앞을 대충 돌아다니기만 해도 소련공산당 최고위 간부들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도대체 안드로포프는 뭐가 아쉬워서 이런 우중충한 가게에서 옷을 해 입는단 말인가. 

어쨌든 가게 앞을 어슬렁거리며 시계를 보았다. 아직 열두시가 되려면 삼 분 정도 남아 있었다. 바닥을 보며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데, 갑자기 양복점 문이 휙 열렸다. 불이 꺼져서 캄캄한 안쪽에서 낮고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주위에 다른 사람은 없는지 살펴보고, 안으로 들어오시오.” 

좌우로 둘러봤지만, 지나다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반쯤 열린 문으로 잽싸게 들어서는 순간, 누군가가 내 팔을 잡았다. 

“이거 놔, 당신 대체 누구야? 누군데 날 그렇게 잘 알고 있지? 그리고 왜 이런 양복점으로 부른 거지?”

그러나 상대방은 질문에 대답하기는커녕, 도리어 내 입을 틀어막더니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조용히 하시오. 잠시 후 모든 걸 알게 될 거요.”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의문의 남자에게 입까지 틀어막힌 채 질질 끌려가며, 나는 사력을 다해 발버둥쳤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기운이 없어졌고, 어딘지 모를 긴 복도를 지나갈 때쯤엔 완전히 진이 빠져버렸다. 막다른 끝에 이르자, 의문의 남자는 한쪽 구석에 놓인 진열장을 더듬었다. 그러자 벽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반 바퀴 회전하며 비밀 통로가 나타났다. 그 안쪽으론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는데, 누군가가 전등을 밝혀둔 듯 환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발밑을 조심하시오. 나무 계단이 오래되어 언제 무너질지 몰라서 하는 충고요.”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거기엔 최첨단 위성 장치와 하이테크 무기 등이 전시된 비밀의 방 같은 건 없었다. 다만 페치카엔 모닥불이 따뜻하게 타오르고 있고, 둥근 알전구가 매달린 천장 아래 나무 탁자와 두어 개의 의자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자, 앉으시오.”

의문의 남자가 권하는 대로 의자에 앉아 고개를 든 순간, 엑스가 내 앞에 환영처럼 서 있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등장이라, 이게 실제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 나는 손을 내저어보았다. 그러나 엑스는 내 손끝이 코트 자락에 닿기 직전 재빨리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잠깐이었지만, 그의 다리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였다. 

“여기 온 걸 환영합니다, 앤드루 군. 아니, 이젠 앤드루 김 기자님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요?”

오래전 들었던 엑스의 목소리를 다시 듣자 반가움과 동시에 원망이 밀려왔다. 내게 풀리지 않을 질문만 남겨둔 채, 그는 그날 호텔에서 사라져버렸으니까.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연기처럼 증발한 엑스를 찾아 한동안 얼마나 헤매어 다녔던가. 그와의 만남이 나에게 끼친 영향을 하나씩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이 긴 목록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기존의 물리학에 대한 불신에 사로잡힌데다, 세계의 배후에서 움직이는 어두운 그림자를 파헤치겠다는 일념으로, 나는 뒤늦게 언론 쪽으로 진로를 틀어버렸다. 그러나 모든 것이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언젠가는 세상의 진실을 만천하에 폭로하는 훌륭한 기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버티고는 있었지만, 그 길은 요원하기만 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엑스는 전도유망한 물리학도였던 나를 늪 같은 세계로 이끌어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미스터 엑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지냈어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얘기를 시작했으면 끝을 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런 식으로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요!”

내가 외치자, 엑스가 빙긋이 웃었다. 문득 의자에 앉지도 않고 꼿꼿이 선 채 나를 내려다보는 저 남자가 엑스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엑스와 모든 게 똑같지만, 미소 지을 때의 저 기묘한 분위기는…… 확실히 뭔가 다르지 않은가.

그때 엑스가, 아니 이젠 엑스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은 그 남자가 낮게 말했다.

“이제야 깨닫다니, 형이 좀 섭섭해하겠군요. 그래요, 난 엑스가 아닙니다. 당신 생각이 맞아요. 나는 와이입니다. 그런데 엑스는 어디서나 본인을 형이라고 칭하지만, 솔직히 우리 둘 중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는 아무도 몰라요. 왜냐하면, 우린 한날한시에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쌍둥이이니 말입니다. 게다가 우리 둘의 몸은 붙어 있기까지 했어요. 그러니 우리 사이에 형이니 동생이니 하는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다만 내가 엑스를 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그걸 원하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다시 한번 환영합니다. 이 멋진 지하세계에 오신 것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난 더듬대며 물었다.

“당신이 정말 와이라면…… 그렇다면, 엑스가 했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었단 건가요?”

내 질문에, 자칭 와이라는 남자는 미소를 짓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구나. 역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 안드로포프의 취임식에서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걷고 있던 한 남자.

문득 마지막으로 봤던 엑스의 구부정한 어깨가 떠올랐다. 

연구실 앞 어두컴컴한 복도로 사라지며 뒤돌아보던 그의 슬픈 눈초리. 호텔로 꼭 찾아와달라며 건네던 쿠바산 시가 상자. 그리고 카페 소원의 집에서 맡았던 원두커피의 향기. 갑자기 내가 있는 장소가 과연 어디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혹시 그날 밤부터 난 줄곧 엎드린 채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내가 두 개의 시간, 두 개의 장소에 동시에 존재한다고 여기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당신 생각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요. 특히나 우리 같은 초능력자들, 프사이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말입니다.”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와이가 중얼거렸다.

“물리학을 공부했으니 소립자의 특성에 대해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의 입자가 동시에 여러 개의 공간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당신들이 아직 모르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양자는 동시에 여러 개의 공간에 존재할 수도 있지만, 하나의 공간에서 여러 시간대에 분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지요. 우린 시간이 흐른다는 표현을 너무 자주 쓴 나머지, 사실은 시간이 흐르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시간 속을 헤엄쳐 지나가고 있다는 진실을 잊곤 하니까요. 그러니까 제 말은 이겁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시간도 공간처럼 그저 펼쳐져 있을 뿐이지요. 그렇게 펼쳐진 시간과 공간 내부를, 우리가 지나가는 것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우리의 의식이 그곳을 통과한다고 보면 되겠군요. 지금처럼 말입니다.”

“지금처럼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거죠?”

“내 말은, 지금의 당신도 두 개의 시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글쎄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우리 인간은 물리적 실체로 존재하는 세계에만 너무 익숙해져 있거든요. 의식과 정신의 영역에 속하는 세상이 실재한다는 걸 까맣게 잊은 채 말입니다. 당신이 지금 여기 모스크바의 어느 양복점 지하에 앉아 있으면서 과거의 어느 한때를 회상한다면―제 생각엔, 언젠가 들렀던 카페를 떠올리고 있는 것 같은데―이미 당신은 두 개의 시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렇다면 와이―당신을 이젠 이렇게 불러도 되겠지요?―, 현재 내가 여기 있으면서 동시에 그곳에도 있다, 이 말인가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만약 내가 정말 두 개의 시공간에 모두 분포해 있다면, 어느 쪽에 있는 게 진짜 나인가요?”

그가 무어라고 대답을 하려는 순간, 누군가 지하실의 문을 똑똑 두드렸다. 와이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들어오십시오.”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수염이 텁수룩하고 팔뚝이 굵은 남자가 작은 쟁반에 차 두 잔을 받쳐서 들어왔다. 

“인사하십시오. 이 사람은 류드밀라 양복점 주인인 페도로프 씨입니다. 프사이를 가진 이들에겐 은인 같은 분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는 우리에게 이 공간을 빌려주고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을 도모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예를 들자면, 오늘 당신과의 만남 같은 것?”

뭐라고 대답도 하기 전에 양복점 주인이 손을 내밀었다. 굳은살이 박인 두툼한 손을 잡자, 그가 겸연쩍게 웃었다. 

“아까는 실례가 많았소. 양복점 입구에서부터 다짜고짜 지하실로 끌고 온 것 말이오. 하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오. 비밀경찰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선,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참, 당신이 우리를 위해 한 일은 참으로 위대한 것이었소. 그에 대해 동지들 모두가 고마워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소.”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양복점 주인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윙크를 보내기까지 하였다.

“도대체 뭘 감사한다는 건지…… 저로선 도무지 알 수가 없군요.”

그러자 와이가 찻잔을 내 쪽으로 밀며 말했다.

“음, 그에 관해선 차차 설명하겠습니다. 아침이 오기 전까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그러니 일단 차부터 한잔 드시지요.”

와이가 손짓을 하자, 양복점 주인은 머리를 한번 긁적이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는 조용히 문을 닫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제 지하실엔 와이와 나, 단둘만이 다시 남았다.

양복점 주인이 내온 차는 따뜻하고 향긋했다. 한 모금 마시자 긴장이 풀리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이상야릇한 평온함이 솟아났다. 탁자 위를 보니, 접시에 둥글둥글한 감자 모양의 떡 같은 게 담겨 있었다. 

“어떻습니까? 차가 마음에 드시는지요? 시베리아에서만 나는 희귀 버섯을 발효시켜 만든 건데, 특히 정신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뛰어나지요. 참, 그리고 이 과자도 좀 맛보십시오. 러시아 전통 과자인데, 아주 맛있습니다.”

나는 차를 몇 모금 더 마신 뒤, 둥근 떡처럼 생긴 과자를 베어 물었다. 강렬하고 진한 초콜릿 향이 입속에 가득 맴돌았다. 

“맛있군요! 소련에 와서 먹어본 과자 중 최고입니다!”

나도 모르게 외치며 과자를 두어 개 더 먹고 차를 한잔 더 따라 마셨다. 배가 부르자 서서히 졸음이 몰려왔다. 긴장이 풀렸기 때문일까. 앉아 있던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어디선가 메아리처럼 와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잊지 마십시오…… 당신은, 아니 우리 모두는…… 이곳에도 존재하고 동시에 저곳에도 존재합니다…… 또 그때에도 존재하고 저때에도 존재하는 거지요……”


*


그날, 소원의 집이라는 기묘한 이름의 카페에서 나온 것은 열두시도 넘은 깊은 밤이었다. 부엉이와 판을 반반씩 닮은 주인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문 닫을 시간이오. 그만 가보는 게 좋을 듯한데.”

결국, 그 괴이한 초능력자가 묵고 있는 숙소로 향한 것은 새벽 한시가 다 되어갈 즈음이었다. 나는 그가 쪽지에 적어준 대로, 엘름가街 345번지를 찾아 걸었다. 어둡고 후미진 골목을 걷다보니 멀리 길모퉁이에 네온사인이 떨어진 간판이 하나 붙어 있는 낡은 건물이 나타났다. 엑스가 말한 바로 그 호텔이었다. 가까이 가보니 이름만 호텔일 뿐, 다 쓰러져가는 모양새가 여인숙이라고 해도 믿어질 지경이었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는 회전문을 밀고 들어가자, 어두컴컴한 구석에 조그만 카운터가 보였다.

“저어, 실례합니다만.”

내가 말하자, 돌아앉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던 종업원이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여든 살은 되어 보이는 늙고 뚱뚱한 남자였다.

“아 이런, 미안하네. 가는귀가 먹어서 누가 들어오는 줄도 몰랐어.”

그러면서 그는 조끼 앞주머니에 꽂아뒀던 안경을 꺼내 황급히 코에 걸치고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래, 어디 보자, 숙박하려는 거 맞지? 장기투숙인가? 어쨌든 여긴 무조건 선불이야, 알지? 며칠 묵다가 돈 안 내고 튀는 놈들이 하도 많아서 말이지.”

그러면서 늙은 종업원은 주섬주섬 숙박부를 꺼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실은 숙박객을 만나러 왔습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카운터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엑스는 연구실을 나가면서 비밀 엄수를 신신당부했으니까.

문득, 저쪽 거대한 고무나무 화분 옆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신문을 읽는 남자에게 새삼 신경이 쓰였다. 아무리 봐도 뭔가 수상하지 않은가. 불빛조차 제대로 비치지 않는 컴컴한 구석에서 신문을 정독하는 남자라니. 그러고 보니, 그는 다리를 꼰 채 얼굴 전체를 신문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아주 잠깐씩 카운터 쪽을 힐끗대는 것 같기도 했다. 난 신문 보는 남자에게 들리지 않도록 종업원에게 거의 얼굴을 붙이다시피 하고 속삭였다. 

“시민 케인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귀가 들리지 않는지 큰 소리로 되물었다.

“뭐라고? 안 들려.”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좀더 가까이 몸을 붙이고 다시 말했다.

“저기요, 시민 케인을 찾아왔다고요.”

“시민 케인? 어디 보자.” 

그는 손가락에 침을 바르며 숙박부를 한 장씩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한참 만에 나를 쓱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이봐, 젊은이, 우리 호텔엔 그런 사람이 없어. 잘못 알고 온 거 아니야?”

나는 얼른 주머니에서 엑스가 적어준 종이를 꺼냈다.

“이거 보세요. 분명 여기 묵고 있다고, 이리로 찾아오라며 적어준 거란 말이에요.”

그때 뒤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휙 돌아보니, 아까의 그 남자가 허겁지겁 신문 뒤로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이럴 수가. 혹시 그는 처음부터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게 아닐까. 문득 그 남자가 미스터 엑스, 아니 시민 케인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단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없어,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니까. 케인이란 사람은 여기 안 왔어. 확실해.” 

혼잣말처럼 중얼대는 노인을 뒤로하고, 그리 넓지도 않은 로비를 성큼성큼 가로질러 신문 보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내가 그의 앞에 앉자, 남자는 여전히 신문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만 까딱했다. 

“혹시, 시민 케인을 아십니까?” 

그러자 갑자기 남자가 숨을 훅 들이마시는 것이, 신문지 너머로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당신, 시민 케인을 알고 있군요?” 

내가 따지듯이 묻자, 남자는 대답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얼굴은 여전히 신문으로 가린 채였는데, 그가 보고 있는 것은 기이하게도 몇 년도 더 전에 발행된 시카고 데일리였다. 1면 타이틀은 ‘차르 봄바, 인류의 종말을 가져오나?’였고, 그 아래엔 인류 역사상 최대의 수소폭탄인 ‘차르 봄바Царь-бомба’가 피워올린 버섯구름이 흑백사진으로 실려 있었다.

“잠깐만, 당신 아무래도 수상해! 대체 왜 철지난 신문을 읽는 거며, 아까부터 나를 힐끗거리며 감시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꿍꿍이냐고!”

그제야 남자는 천천히 신문을 내렸다. 둥근 챙이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보랏빛이 감도는 얇은 입술만은 확실히 보였다. 그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런 말이 쏟아져나왔다.

“뭐가 문제지? 누가 정하기라도 했나? 항상 그날 발행된 신문만을 봐야 한다고 말이야. 어느 날짜 신문을 읽든, 그건 각자의 자유라고! 방금 나에게 ‘시민 케인’을 아느냐고 물었지? 그래, 솔직히 말하겠네. 난 시민 케인을 알아. 그것도 아주 잘 알지. 1941년에 오슨 웰스가 만든 명작 영화 아니던가? 내가 모른다고 한 이유는, 아직 그걸 보지 못했기 때문이야. 자, 이제 됐나? 자네의 그 얕고 어리석은 호기심이 충족되었는가, 이 말이야.”

머쓱해진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시민 케인을 아느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지금 저 신문 보는 남자와 비슷한 대답을 하리라. 온종일 연구실에 앉아 자칭 초능력자란 자의 기기묘묘한 이야기를 들은 끝에, 나의 판단력은 흐려지고 이성은 마비되었으며, 급기야는 아무나 의심하는 편집증 증세까지 생긴 것이다. 결국, 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사람을 찾다가 큰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시 신문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만 꺼지라는 듯 손짓을 할 뿐이었다. 주춤대며 돌아서는데, 저쪽에서 노인이 다급하게 불렀다. 

“이봐, 젊은이, 한번 와보겠나? 여기 시민 케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있거든!”

카운터로 가보니, 늙은 종업원이 숙박부를 펼친 채 기다리고 있었다.

“내 생각엔 302호에 묵고 있는 이자가 바로 그 사람 같은데. 난 케인Kane이란 이름만 찾았지 이렇게 적었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 보라고, ‘Citizen Cane’. 어떤가, 맞지?”

그는 내가 숙박부의 서명을 들여다보는 동안 신나게 떠들었다.

“여하튼 이자가 맞다면, 내가 아주 잘 알지. 이 사람 정말 괜찮은 친구라네. 파티를 한다며 방을 더럽히지도 않고 체크인하던 첫날 군소리 없이 숙박비도 완불했으니까. 오늘은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모닝커피 한 잔을 마시더니, 어디론가 외출했어. 그러더니 저녁에 조용히 들어와 룸서비스로 삶은 달걀 두 개를 시켜 먹고는 방에 틀어박혀 뭔가를 하는 것 같더라고. 그야말로 이 호텔에선 보기 드문 올바른 숙박객이라고 할까.”

그러면서 노인은 손수 전화기를 들고 시민 케인, 아니 엑스가 묵고 있다는 객실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벨이 여러 번 울리도록 객실에선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상하네? 아까 들어간 뒤엔 내려오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결국 늙고 뚱뚱한 종업원은 카운터 뒤쪽 벽에서 302라는 번호가 붙은 키를 집었다. 

“같이 가보자고. 투숙객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프라이버시고 뭐고 간에 일단 확인부터 하는 게 이쪽 업계의 관행이야. 자네도 짐작하겠지만, 이런 후미진 뒷골목 모텔들에선 워낙 기분 나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법이거든. 여기서 일한 지 어언 삼십 년인데, 그동안 목매달아 죽은 사람만 몇을 봤는지 모른다니까.” 

중얼거리는 노인을 따라 나는 마치 수백 년 전에 만들어졌을 법한 낡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삼층까지 가는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지려던 순간,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작아 보였던 호텔의 외관과 달리 복도는 무척이나 길었고 거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으며 오래된 카펫에서 풍기는 곰팡내로 가득차 있었다. 어둠 때문에 보이진 않았지만,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나고 있을 게 확실했다. 문득 코가 간질거리며 눈이 따갑기 시작했다. 참지 못하고 재채기를 하는데, 노인이 말했다.

“여기야. 내가 문을 열 테니, 잠깐 기다리게.” 

문이 열리자 늙은 종업원은 상반신만 앞으로 내밀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보시오, 케인 씨. 안에 계시오?” 

그러나 객실은 조용했고, 오직 거리로 난 창에 걸린 낡은 커튼만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을 뿐이었다. 노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방금 정돈한 듯 깨끗한 시트가 눈에 띄었다. 욕실엔 수건 두 장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고, 어디에도 엑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허,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분명 그는 삶은 달걀을 시켜서 먹은 뒤론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어. 무엇보다도 이 호텔엔 출구가 하나뿐이라고. 하늘로 증발했나, 땅으로 꺼졌나. 대체 어떻게 된 거지?”

혼자서 계속 중얼대며, 노인은 작은 객실 여기저기를 뒤졌다. 엑스가 옷장이나 서랍 속에 꾸겨진 채 들어 있으라고 믿는 건지 서랍을 하나하나 열어보더니, 마침내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희한하군. 이 양반, 아무도 모르게 떠나버렸나보군. 보라고, 짐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잖아. 아니, 그런데 잠깐, 저건 뭐지?” 

그러면서 노인은 침대 옆 조그만 탁자 위를 가리켰다.

“저기 뭔가 있는 것 같아, 그렇지 않은가?” 

다가가보니 탁자 위엔 공책이 한 권 놓여 있었다. 

“어디 보자, 이거…… 눈이 잘 안 보여서 말이지. 그래, 자네가 한번 보겠나?” 

노인은 나에게 그 노트를 내밀었다. 

“그리고 여기 이런 쪽지도 붙어 있군. 좀 읽어줄 텐가?”

그것은 미스터 엑스가 나에게 남기고 간 마지막 노트였다. 표지엔 딱지 모양으로 정성껏 접힌 쪽지가 하나 붙어 있었는데, 메모의 수신인은 그 늙은 종업원이었다. 나는 눈이 어두운 그를 위해 쪽지에 적힌 내용을 소리 내어 읽어줬다. 

“사정이 있어서 인사도 못하고 떠납니다. 혹시 더 정산해야 할 경비가 있다면 동봉한 돈에서 제하시고, 나머지는 팁으로 받아주시면 됩니다. 청컨대, 이 노트를 얼마 후 나를 찾아올 ‘앤드루 김’이란 사람에게 전해주세요. 그 남자는 아시아인이고 키도 거의 저와 같습니다. 얼굴도…… 비슷하게 생겼다고 보면 될 겁니다. 또한 그는 나처럼 베이지색 윗도리를 즐겨 입지요. 그러니 만약 그런 외양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 나를 찾는다면, 그땐 이 노트를 건네주세요. 그럼, 항상 건강하시고, 안녕히 계세요.” 

쪽지에 적힌 내용을 다 듣고 나서, 노인은 서글프게 미소 지었다. 

“좋은 사람이었는데…… 인사도 없이 떠나다니 정말 아쉽군. 여하튼, 이 공책은 가지고 가게. 얼굴도 그와 비슷하고 베이지색 윗도리까지 입은 것으로 보아, 자네가 바로 그 앤드루 김인가 뭔가 하는 자인가보군.”

난 노인에게 “내가 정말 엑스와 닮았단 말입니까?”라고 따지려다 말았다. 어차피 늙은 사람들의 시력은 정확지 않은 법이니까. 공책을 받아서 어깨에 메고 있던 갈색 가죽 가방에 넣자, 노인이 말했다. 

“먼저 내려가게나. 난 방을 정돈하고 갈 테니까. 하긴 뭐 워낙에 꼼꼼히 마무릴 해두고 떠나서 별로 손댈 곳도 없긴 하지만.”

늙은 종업원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엔 피로에 지친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어깨는 축 처지고 눈엔 다크서클이 낀데다 입고 있는 베이지색 셔츠는 다 구겨진 남자.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덜컹 열리더니, 눈앞에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불쑥 나타났다. 

“뭐야!”

비명을 지르는 순간, 그림자는 다짜고짜 달려들더니 어깨에 멘 가방을 낚아챘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가방끈을 잡고 버텼다. 

“안 돼, 거기엔 어차피 돈도 얼마 들어 있지 않아. 놔, 놓으라고!”

그러나 남자의 완력은 대단했다. 그 역시 끈의 한쪽 끝을 놓지 않고 사력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퍼뜩 뭔가 떠올랐다.

“당신은 혹시? 좀 아까 로비 구석에서 신문 보던 그 남자? 맞지, 네놈이지? 그럴 줄 알았어. 대체 뭐야, 무슨 속셈으로 남의 가방을 뺏으려는 거냐고!”

잠깐이지만, 그의 얇은 보라색 입술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그러면서 가방끈을 쥐고 있던 남자의 손에서 힘이 살짝 풀리는 듯싶었다. 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가방을 잡아당겼다. 

‘됐어!’ 

그러나 속으로 이렇게 외치는 순간, 툭, 소리를 내며 가방끈은 허망하게 끊어졌고, 남자는 재빨리 돌아서더니 호텔 회전문을 밀고 사라져버렸다. 나는 망연자실하게 선 채 텅 빈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발밑엔 끊어진 가방끈만이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뒤늦게 달려온 종업원 노인이 위로를 건넸다.

“너무 슬퍼하지 말구려, 젊은이. 이 골목엔 워낙 저런 놈이 흔하거든. 그래도 다치지 않은 게 어딘가.”

노인은 나를 로비에 마련된 소파로 데려가 앉혔다. 내가 좀 진정하는 기미가 보이자 그는 카운터에서 럼주 한 잔을 따라 왔다.

“자, 이거라도 좀 마시고 기운을 차리게나. 그깟 가방이야 또 사면 되지, 안 그런가?”

나는 노인이 내미는 럼주를 받아 마셨다. 뱃속이 뜨듯해지며 약간은 희망적인 생각도 떠올랐다. 어쩌면 엑스는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래, 지금은 무슨 변덕에서인지 잠시 모습을 감췄지만, 어쨌든 내일 존 휠러의 연구실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지 않은가. 아마도 그는 예의 그 베이지색 코트를 입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나타나 뒷이야기를 마저 들려줄 것이다. 그래, 당연하지. 엑스 본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자기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냉장고에서 맥주 캔을 꺼내어 소파에 앉았다. 소파라고 해봤자, 스프링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가운데가 푹 꺼져 있는 고물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맥주를 마시며 소파에 기대 있다가 잠이 든 나는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떴을 즈음에야 눈을 떴다.

“이런! 큰일났다. 존 휠러 교수는 시간 약속 안 지키는 사람을 가장 싫어한다던데!”

하지만, 대충 칫솔질만 한 뒤 학교로 달려간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고 쓰리지만, 이젠 그에 관하여 이야기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연구실에 도착했을 땐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헉헉대고 있었다. 잔뜩 기가 죽어 노크를 했지만, 안에선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교수님, 저 앤드루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문에다 대고 외쳤지만, 역시 누구 하나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이상하군. 휠러 교수도 엑스도, 모두 안에 없는 건가?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밀어보았다. 그러나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암만 세게 밀어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교내에 있는 조그만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교무행정실 번호를 누르자, 한참 동안 벨이 울린 후에 어떤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내 신분을 밝히고 존 휠러 교수가 어디에 있는지 묻자, 그녀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런, 한발 늦었군요. 교수님은 이제 여기 계시지 않아요. 어젯밤 갑자기 본교에서 온 연락을 받고 새벽에 짐을 챙겨 떠나셨습니다. 어디 보자, 앤드루 학생이라고 했나요? 마침 여기 교수님이 남겨놓은 메모가 있는데, 제가 읽어드릴까요, 아니면 직접 와서 읽어볼래요?”

나는 그냥 읽어달라고 했다. 여자는 “그럼, 들어보세요”라고 하더니, 존 휠러 교수가 남겼다는 메모를 또렷한 발음으로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앤드루 학생, 이렇게 인사도 없이 떠나게 되어 정말 미안하네. 비록 하루지만, 자네는 내게 정말 큰 도움을 줬어. 만약 앞으로 물리학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면, 언제든 나를 찾아오게나. 난 자네의 열정을 이미 높이 샀으니 말일세. 그리고 엑스에 대해서 말인데, 그자를 더는 테스트할 필요가 없다는 상부의 긴급 지시가 있었어. 사실 그 공문은 원래 엑스가 오기 전에 우리에게 도착했어야 했다네. 그런데 발송 담당 공무원의 착오로 인해 다른 주소로 전달됐고, 다시 반송된 그 우편물은 어젯밤에야 내게 도착한 거지. 난 동료 물리학자들과 술자리를 가지던 중 그 편지를 받았고, 서둘러 연구실로 돌아와 서류를 정리해야 했지. 쉽게 말해서, 만약 발송 담당 공무원이 일 처리를 제대로 했다면, 우린 엑스라는 사기꾼의 지루한 헛소릴 듣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었던 셈이야. 정말 짜증나는 일 아닌가? 참말로 공무원들이란 왜 다들 그 모양인지 모르겠네. 여하튼 그 공문에 의하면, 초능력 부대 프로젝트는 이미 종결하기로 결정됐고, 책임자였던 레오니드 몰로디노프란 사람은 사기죄로 기소된 상태라는 거야. 소문엔 그가 소련 출신도 아니고 그저 쿠바에서 술집을 경영하던 사기꾼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정확히 일이 어떤 식으로 전개된 건지는 나도 잘 모르네. 게다가 더 놀라운 게 뭔지 아나? 엑스 역시 상습사기와 불법 다단계 판매업 등으로 인해 그동안 FBI가 비밀리에 추적해오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야. 그러니 자네도 이제 엑스에 대한 것은 모두 잊고, 정통 물리학 연구에 정진하도록 하게나. 조만간 다시 만나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실 날을 기다리겠네. 존 아치볼트 휠러.

추신: 하루 치 아르바이트 급여는 사나흘 뒤 우편환으로 부쳐주겠네. 근로기준법에 의거하여 산출한 금액에 약간의 돈을 더 얹었으니, 성의로 알고 받아주게나.”

여자는 메모를 다 읽더니, 더 알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대답하자 전화는 바로 끊겼다. 공중전화 부스 안에 한동안 서 있던 나는 밖으로 나왔다. 머리 위로 늦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문득, 연구실에서 존 휠러 교수를 처음 만나던 순간이 떠올랐다. 이 실험은 반드시 비밀리에 수행되어야 하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미스터 엑스는 정보기관의 요직에 있는 사람이야. 국가에서 추진하고 있는 마인드컨트롤 무기의 총책임자나 마찬가지이니 말일세. 그때 교수의 목소리는 얼마나 진지하고 비장했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이 모든 것이 거대한 사기극이라니. 혹시 여기엔 다른 뭔가가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엑스는 어떤 절박한 사정 때문에 사라진 것이고, 교수 또한 마찬가지 이유로 갑작스레 모든 걸 그만두게 된 걸지도 모른다. 공중전화 부스로 뛰어들어가 다이얼을 돌리자, 좀전의 여자가 받았다.

“또 무슨 일이죠, 앤드루 학생?”

“혹시 지금 행정실로 가면 휠러 교수님의 메모를 직접 볼 수 있을까요?” 

내가 묻자, 잠깐의 침묵 후에 여자는 대답했다.

“유감이군요. 방금 읽어드린 뒤, 찢어서 버렸거든요.”

나는 그 찢어진 종이라도 달라고 부탁했지만, 여자는 자신이 그 메모지를 아주 작게 찢었고 따라서 조각을 모두 모아봤자 아무것도 읽을 수 없을 거라고 차갑게 대답하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