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



엑스가 숨을 가다듬는 동안, 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존 휠러는 어딘지 모르게 초조해 보였지만, 역시 아무 말도 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창으론 늦은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비껴들고 있었다. 

드디어 그 신비한 초능력자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낯빛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이마에 흐르던 땀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얼굴을 대충 문질렀다. 그러고는 겸연쩍게 웃는 것이었다.

“휴…… 항상 이러네요. 아버지의 수첩과 전함 무사시에 얽힌 비밀을 얘기하다보면 꼭 이렇게 격앙되고 말거든요. 아무리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어떤 이상한 감정이 북받쳐오르고, 그러면 좀전과 같이 이성을 잃고 마는 겁니다. 여하튼, 죄송해요. 이젠 마음도 다시 가라앉았으니,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아직도 여러분들에게 들려줘야 할 스토리는 무궁무진하니까 말이에요.

그래요. 아버지 덕분에 커다란 군함은 그렇게 가라앉았고…… 나는 그 모든 사연을 심안으로 본 수첩을 통해 읽어냈습니다. 그런데 나가사키 시의회 의장이 왜 하필이면 그 하고 많은 유품들 속에서 굳이 아버지의 수첩만을 꺼내어 따로 보관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진 않으십니까? 사실 그렇게 된 데엔 내 동생 와이가 엄청난 공헌을 한 셈인데…… 나중에 때가 되면 차차 이야기해드리죠. 난 결코 이야기의 순서를 뒤바꾸는 짓을 하면서 인위적인 인과관계를 만들어내지 않으니까요.  

자, 이제 마침내 제프리 허드슨에 대해 말씀드리게 되었군요! 잠깐, 제프리 허드슨이 누구냐고요? 혹시 여러분, 아직 기억하십니까? 한참 전에 내 미국식 이름을 들려드렸잖아요. 록 허드슨. 이게 나의 이름이지요. 그렇습니다. 짐작하신 그대로예요. 제프리 허드슨은 나에게 허드슨이라는 성을 물려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레이테만 해전에서 전투기를 조종했던 조종사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나의 양아버지가 되었던 걸까요?

그 사연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레이테만 해전에서 보여준 용맹함 덕분에 그는 일 계급 특진의 기쁨을 누렸고, 사령관이었던 맥아더의 신임도 한몸에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후, 그는 하지 중장과 함께 한국 땅을 밟게 됩니다. 그게 다 그를 전폭적으로 신임했던 맥아더의 명령 때문이었죠. 허드슨은 인천이라는 항구를 통하여 배를 타고 들어왔습니다. 뭐라고요? 아니, 아니에요. 이건 그 상륙작전 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보다 몇 년 전의 일이지요. 그래요, 제프리 허드슨이 인천으로 들어온 것은 1945년 가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레이테만 해전의 승리 뒤에 내 친아버지의 공로가 숨어 있다는 걸 전혀 몰랐던 나는 그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비굴하리만치 공손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죠. 하지만 지금도 난 안타깝습니다. 만약 내가 그 수첩의 존재를 미리 알았더라면, 그래서 아버지가 어떤 공헌을 했는지 알고 있었더라면, 처음 보는 허드슨, 내 양아버지에게 그렇게까지 비굴하게 인사하진 않았을 테니까요. 아마도 나는 좀더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그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며 자랑스럽게 악수를 청했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건 이미 모두 지난 일, 이제 와 후회하고 안타까워하면 또 무얼 하겠습니까? 여하튼, 내가 허드슨을 처음 본 것은, 하지 중장 일행을 환영하는 어느 화려한 만찬장에서였습니다.

뭐라고요? 제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요? 1945년에 태어난 내가 어떻게 그해에 인천을 통해 들어온 양아버지와 만난 일을 기억할 수 있느냐고요……? (문득 엑스는 말을 멈추더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이마의 땀을 닦은 그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는 듯 헛기침을 한 뒤 느릿느릿 말을 이어갔다.) 

좋아요, 좋아. 내 얘길 수정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교수님, 그리고 앤드루 군, 당신들은 그런 경험이 없나요? 어떤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들은 나머지 그게 마치 자기 자신에게 실제로 일어났던 일처럼 느껴지는 것. 타인의 기억이 나의 기억이 되고, 그 현장과 시간 속에 내가 서 있는 듯한 기묘한 기분. 나에겐 그런 경험이 손에 다 꼽을 수 없이 너무나 많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에 관해 다른 이들이 들려준 수많은 이야기들. 내가 천리안으로 바라본 타인들의 다종다양한 내면. 그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뒤섞여 또다른 과거를 생성해내는 거지요! 방금 내가 저지른 실수 또한 그런 계열에 속합니다. 그래요, 정정하지요. 그 만찬장에 있던 사람은 내가 아니라 김호선과 그의 여자친구라고. 허드슨을 처음 만났을 때 비굴하리만치 깊게 허리 숙여 인사한 사람도 당연히 김호선이고요. 단지 김호선이 들려준 이야기, 김호선이 내게 남긴 기록들, 그리고 나 스스로 김호선에 대해 찾아본 문서들이 온통 뒤엉키며 내 머릿속에 완전히 자리잡은 끝에, 이런 기억의 오류를 만들어내고 말았다고요. 어때요, 됐습니까? 이제 내 이야기에 신빙성이 되살아나느냐, 이 말입니다.”

존 휠러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엑스는 의수를 한쪽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고집스럽게 침묵을 지켰다. 그의 말에 수긍한다는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결국 내가 양손을 벌리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난 처음부터 믿고 있었어요.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거든요. 머릿속에서 모든 게 뒤섞여버리는 황당한 느낌. 어딘가에서 들은 건지, 아니면 꿈을 꿨던 건지, 정말로 겪었던 건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기억들…… 그런 건 누구에게나 있는 거 아닐까요?”

그제야 엑스가 주머니에서 손을 빼더니 무릎에 차분히 얹었다. 그는 허공(이 아니라 연구실 천장의 하얀 벽)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럼 그때, 김호선은 왜 미군이 주최한 만찬장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웃고 있었던 걸까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나가사키의 하늘에서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난 며칠 후, 라디오를 통해 히로히토의 항복 연설이 흘러나왔습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렀고, 눈치 빠른 작자들은 중요한 짐만 챙겨 일본으로 돌아갔으며, 아직 떠나지 못한 이들도 돌아갈 때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하지만 나와 내 동생을 수술했던 의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논문에 대한 생각으로만 꽉 차 있었으니까요. 모두가 라디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 그는 혼자서 미친듯이 타이프라이터만 두드려대고 있었던 겁니다.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전혀 모른 채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알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세상을 놀라게 할 샴쌍둥이 분리 수술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고, 그래서 다른 생각 따윈 할 겨를이 없었던 겁니다. 그렇기에 어느 날 오후 누군가가 쾅, 소릴 내며 문을 밀고 뛰어들어올 때까지도 연구실에 틀어박힌 채 논문만 쓰고 있던 거겠지만요. 어쨌든 외과의는 화가 나고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감히 과장인 자신의 방에 노크도 없이 들어온 놈이 누구인지 보기 위해 안경테를 치켜올리니, 처음 보는 낯선 이들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지 뭡니까. ‘당신들 뭐야?’ 그가 거만하게 묻자, 그들 중 한 명이 가까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너야말로 여기서 떠나지 않고 뭐하는 거지?’ 경비를 부르기 위해 두리번대는 의사에게, 또다른 한 사람이 외쳤습니다. ‘썩 나가! 넌 이제 패전국 국민이라고. 알겠어?’ 그제야 외과의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렴풋이 짐작했습니다. 그는 허둥지둥 약간의 돈과 귀중품만을 챙겨서 항구를 향해 달렸습니다. 일본으로 떠나는 배는 이미 만원이었지만, 꽤 많은 웃돈을 얹어준 덕에 겨우 승선할 수 있었지요. 

중요한 것은, 배가 육지에서 한참 멀어진 후에야 자신이 중요한 서류를 병원에 두고 왔음을 깨달았다는 사실입니다. 점점 작아져가는 항구를 보며, 외과의는 거의 한 시간이나 고민했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그 서류를 가져와야 하는 건지,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영원히 이곳을 떠나야 하는 건지 말입니다. 그는 스위스에서 들어온 분유를 먹으며 점점 자라나던 쌍둥이를 떠올렸고, 아직 완성하지 못한 논문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외과의는 결국 영원히 떠나기를 택했고, 아쉬운 표정으로 어깨를 한번 으쓱한 뒤 선실로 걸어들어갔습니다. 그래요, 그게 세간에 알려진 그의 마지막 모습이죠. 나중에 그가 동경의 어딘가에 조그만 병원을 개원하고 양갓집 규수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후문도 있지만, 사실 그건 거짓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그 외과의의 진짜 말로는 다음과 같으니까요. 그가 양갓집 규수와 결혼한 것은 맞지만, 얼마 후 그는 도박과 술에 빠져 점점 폐인이 되어갔습니다. 그의 마지막은 결국 호러로 마무리됩니다. 오래전 샴쌍둥이의 분리 수술을 성공시켰다는 과거의 영광에 집착했던 그는 끊임없는 망상에 시달렸고, 어느 날 자신의 아내를 결합쌍생아로 착각하고 말았으니까요. 그는 아내를 대상으로 다시 한번 수술을 집도했고, 그 자신은 피로 물든 다다미 위에서 손목의 동맥을 끊은 채로 발견됐습니다. 그의 말로는 엽기적인 사건만을 다루는 주간지의 한 면을 장식하며 열도를 공포에 빠뜨렸지만, 그마저도 얼마 뒤엔 모두 잊히고 말았습니다. 그가 술집에서 ‘이래 봬도 내가 세계 최초로 샴쌍둥이 분리 수술을 성공시킨 사람이야!’라고 외치고 다녔던 일 역시 그저 하나의 술주정으로 치부될 뿐이었고요. 오히려 후대의 연구자들은 그 외과의의 과거 이력에 더 관심을 보였고, 그가 마지막으로 저지른 끔찍한 살인 역시 그것과 연관 지어 해석했습니다. 즉, 그가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에 오기 전, 만주의 어느 도시에서 인간을 반으로 자르거나 도로 이어붙이거나 혹은 몸안에 세균을 주입하는 등 여러 기괴한 실험을 자행한 부대의 군의관으로 복무했던 사실 말입니다. 

어쨌든, 외과의가 떠난 뒤 병원에선 대대적인 청소가 이뤄졌습니다. 그건 당연하고도 필요한 일이었어요. 네, 인정하고말고요. 하지만 그 청소를 너무 서둘렀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습니다. 외과의가 쓰던 연구실 책상에 들어 있던 서류들을 그런 식으로 처리해버린 걸 보면 말입니다. 아무도 거기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주의깊게 읽어보지 않았지요. 새로 부임한 의사는 미국의 존스 홉킨스라는 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마친 ‘닥터 후’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아, 물론 그는 한국인이었어요. 이름은 우종식이었고요.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성명을 영어로 표기하길 좋아했고, 이름을 쓸 일이 있을 때면 언제나 ‘Whoo’라고 적었던 겁니다. 그래서 미국인 친구들은 모두 그를 ‘닥터 후’라고 불렀고, 자기 자신도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닥터 후’라고 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하튼 닥터 후는 부임하자마자 연구실 정리에 착수했습니다. 그는 그 방이 너무 우중충하고 퀴퀴하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우울함이 깔려 있다고 느꼈어요. 하긴, 알 수 없는 일본어로 뒤덮인데다 괴이한 생체실험 과정이 잔뜩 그려진 지저분한 종이가 서랍에 가득했으니, 그렇게 여긴 것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닥터 후는 그 기이한 종이 뭉치들의 정체를 알기 위해 김호선을 병원으로 불렀습니다. ‘일본어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는데다 어느 정도 과학적 지식까지 있는 지식인 어디 없소?’라고 묻는 닥터 후에게, 누군가가 김호선을 소개해줬기 때문입니다.

전갈을 받고 급히 병원으로 온 김호선에게, 닥터 후는 물었습니다. ‘이 서류들은 뭡니까?’ 김호선은 쓰다 만 논문을 찬찬히 읽고는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때 닥터 후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줬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아는 대로 모든 것을 말해줬을 수도 있겠죠. 혹은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서 얘기해줬을지도 모르고요. 확실한 것은, 그가 무엇을 이야기했어도 닥터 후는 모두 믿을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어쨌든, 김호선의 설명을 들은 닥터 후는 연구실 서랍 안에 있던 종이 뭉치들을 모두 상자에 담아 병원 뒷마당에 던져버리길 택했어요. 병원의 잡일을 도맡아 하는 허드렛일꾼이 거기에 불을 붙이자, 종이들은 활활 타올라 어디론가 날아가버렸습니다.

그렇게 하여, 샴쌍둥이 분리 수술 같은 건 처음부터 없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우리, 그러니까 병원에서 팔에 링거를 꽂은 채 서로 마주보며 누워 있던 나와 내 동생의 기록도 완전히 바뀌었고요. 닥터 후는 자신의 진료기록부에 우리의 병명을 새로 적었습니다. 원래 적혀 있던 ‘분리된 결합쌍생아’라는 글자를 수정액으로 지운 뒤, 그는 다음과 같은 다섯 글자를 또박또박 적었습니다. 선천성 장애. 그런데 그후로도 우리의 진료기록부는 수없이 잦은 수정을 거치게 됩니다. 어떤 날 우린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아이들이 되었고, 또다른 어떤 날엔 전쟁터에서 다친 채 버려진 가엾은 어린이들이 되었으며, 또 그 밖의 다른 어떤 날엔 그저 알 수 없는 이유로 팔다리를 가지지 못한 소년들이 되어야만 했어요. 그러고 보면 우리의 과거, 나와 내 동생의 어린 시절의 역사는 그야말로 ‘수정액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싶어집니다. 하긴, 여기 계신 누구나의 역사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말이에요. 

어찌됐든, 그렇게 하여 나는 선천적으로 팔을 가지지 못한 채 태어난 아이로 기록되었고, 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가지지 못한 아이로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입원해 있던 병원으로 한 무리의 외국인이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을 겁니다. 나와 내 동생을 보러 온 사람들이었지요. 닥터 후와 김호선이 맨 앞에서 외국인들을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으로 가슴에 훈장을 단 허드슨 중위가 뒤따랐고, 이어서 자비심에 가득찬 경건한 표정의 국제구호단체 회원들이 줄지어 들어왔던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그중 한 여성이 저를 안아올리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갈색 머리를 뒤로 올려 묶은 그 여자에게서 생전 처음 맡아보는 향기로운 냄새가 풍겼거든요. ‘가엾기도 해라!’ 그녀는 파우더가 잔뜩 묻은 자신의 볼에 내 얼굴을 비비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애들의 어머니는 굶주림으로 죽었고, 아이들 역시 곧 죽을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다행히 제때 발견되어 죽음을 면하게 되었지만요.’ 닥터 후가 허드슨 중위와 구호단체 회원들에게 설명하자, 곁에 서 있던 김호선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여기 있는 미스터 김이 모든 것을 설명해줬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그날 용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이 아이들은 비참하기 그지없는 말로를 맞았겠지요!’ 닥터 후가 말하는 용단이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상공에 피어오른 거대한 버섯구름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에 허드슨 중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일행을 둘러보았고요.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온 세상이 번쩍, 하고 밝아졌습니다. 엄청난 섬광이 눈앞에서 터졌던 거예요. 나는 눈이 부셔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때까지 옆 침대에서 잘 자고 있던 내 동생도 덩달아 악을 쓰기 시작했고요. 나를 안고 있던 갈색 머리 여자가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이애들 왜 이러는 거지요?’ 그러자 맨 뒤에 서 있던 간호사가 얼른 달려나와, 나를 받아 안았습니다. 간호사는(내 기억에 그녀는 수술실에 버려져 있던 나와 동생을 처음 발견해준 고마운 분이었는데요) 미안한 듯 나를 감싸안으며 대답했지요. ‘죄송합니다. 아마도 사진 찍는 소리와 조명에 놀란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친절한 간호사도 슬피 울고 있는 나와 내 동생의 사진을 그만 찍으라고 말할 순 없었습니다. 그런 사진은 정말로 필요하고도 요긴한 것이었으니까요. 

사진을 찍은 사람은, ‘뉴욕 데일리’라는 신문사의 기자였습니다. 아마도 그의 이름이 존 깁슨이었던가요? 어쨌든, 그가 앞으로 나서며 쾌활하게 외치더군요. ‘자자, 아이들에겐 미안하지만, 다시 한번 사진을 찍어야겠습니다. 아니, 그냥 울게 두세요. 그게 더 리얼해 보이니까 말이에요. 이런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리얼함이니까요! 네, 좋아요, 좋습니다. 모두 이쪽을 보고, 그 쌍둥이를 각각 품에 안아주세요. 그래요, 그 자세가 딱 좋겠군요. 에이, 그건 아니고요, 좀더 얼굴을 가까이 해주셔야 따뜻한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그럼, 찍겠어요. 하나, 둘, 셋!’ 결국, 나와 내 동생의 생애 첫번째 모습은, 너무 울어서 얼굴이 빨갛게 변한 볼썽사나운 사진 한 장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만약 저의 이야기가 믿어지지 않는다면, 언젠가 시간이 날 때 뉴욕 시립도서관의 마이크로필름 자료실을 방문해볼 것을 권해드립니다. 거기엔 나와 내 동생을 안고 있는 그 자애로운 사람들의 사진과 기사 자료가 여전히 보존되어 있으니까요. 물론, 그 자료들 속에서 나와 내 동생을 찾는 일이 그리 쉽진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존 깁슨이 찍은 사진은 우릴 안고 있는 구호단체 사람들과 그 옆에서 당당히 웃고 있는 허드슨 중위, 그리고 약간 뒤편에 조금은 불안정하게 서 있던 닥터 후라든가 김호선 등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나머지, 정작 나와 내 동생의 얼굴은 흐릿하고 뿌연 몇 개의 점 정도로만 기록되고 말았으니까요. 

여하튼 중요한 건, 그 당시 존 깁슨의 꿈이 소설가였으며, 실제로 나중엔 몇 편의 스파이 소설을 써서 약간 이름이 알려지기까지 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가 쓴 소설들이 그다지 좋은 평을 받은 건 아니었습니다. 그가 쓴 건 이언 플레밍을 모방한 일종의 삼류 첩보물이었는데, 극의 흐름과는 전혀 상관없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와 읽을 때 짜증이 난다는 게 평론가들의 전반적인 의견이었거든요. 하여간, 그래서였는지는 모르지만(즉 꿈이 소설가였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존 깁슨은 뉴욕 데일리에 송고할 기사마저도 극적으로 각색하길 즐겼습니다. 그는 밤이면 밤마다 싸구려 담배를 입에 물고 한 손엔 압생트 잔을 든 채 타이프라이터를 미친듯이 두드렸습니다. 자신이 낮에 취재한 기사를 이리저리 뜯어고쳐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 소설가 지망생인 존 깁슨의 조그마한 행복이었죠. 그런 그가 하고 많은 술을 다 놔두고 굳이 독한 압생트를 마신 건,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개선문』과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소망의 표현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왜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 소설 속에서 외과의사인 라비크는 항상 압생트를 입에 달고 살잖아요. 그런데, 제가 이 모든 사연을 잘 알고 있는 이유는, 존 깁슨이 출판한 소설 중 하나인 『텔레파시 스파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그런 이야기들, 즉 압생트와 싸구려 담배, 그리고 낡아빠진 타이프라이터에 대한 잡담들을 주절주절 늘어놨기 때문입니다. 난 그 책을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고 그래서 작가의 서문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었던 거지요. 

아, 이런, 이런! 이야기가 또 다른 데로 흘러가버리고 말았군요.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얘기에서 진짜로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겁니다. 그때 존 깁슨이, 허드슨 중위와 새로 부임한 의사 닥터 후,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일본인 외과의의 절친한 친구였던 통역 김호선 및 국제구호단체 회원들 사이에서 울고 있는 나와 내 동생의 사진을 찍은 뒤,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 또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 새로운 소설 속에서, 아니 정확히는 그 기사 속에서, 나와 내 동생은 이름 대신 그저 ‘한국의 불행한 장애아들’이라고만 나와 있을 겁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샴쌍둥이가 아니며, 분리 수술 같은 건 애당초 있지도 않은 일일 겁니다. 『랜싯』에 보고될 논문은 처음부터 존재한 적이 없으며, 오직 불쌍한 고아 소년들의 처참한 생존기만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게 더 말이 되는 얘기고, 감동을 자아내기에도 더 적합한 스토리였을 테니까요. 덧붙이자면 존 깁슨이 쓴 기사, 아니 소설 속에서 허드슨 중위가 웃고 있는 것은, 그가 승전국의 군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가난하고 억압받던 나라의 불행한 아이들을 구해낸 선의의 화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국제구호단체의 회원들 역시 그들의 자비심을 드러내기에 그 병원보다 더 어울리는 장소를 찾기 힘들었을 겁니다. 어차피 모든 선의는 타인의 불행이라는 어둠 속에서 더 빛을 발하며 눈에 띄는 법이니까요. 닥터 후 또한 그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발견했습니다. 승전국이자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어느 큰 병원에서 수련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자신이야말로 앞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갈 주역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지요. 어쩌면 그 사진 속에서 가장 겉도는 인물은 김호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부자이자 인텔리였고 떠나버린 일본인 의사의 친구였지만, 동시에 머나먼 북쪽의 추운 나라를 꿈꾸는 혁명가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그는 몸과 마음이 따로 분리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당대―아니 사실은 거의 모든 시대에 해당하는 말이겠지만―대부분의 지식인이 그러하듯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얼추 자리를 잡고 섰고 남들을 흉내내어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습니다. 마음먹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한 그가 무척이나 애매모호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완벽한 얼굴이었죠.  

하긴, 그러고 보면 존 깁슨의 기사 속 사진에 찍힌 병실은 어딘지 모르게 지상의 천국 같은 느낌을 주기까지 합니다. 마치 아기 예수처럼 울고 있는 나와 내 동생, 그리고 우릴 둘러싼 동방박사와 천사들.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17세기 프랑스 화가였던 조르주 드 라투르의 신비롭고도 경건한 그림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효과를 얻기 위하여 깁슨이 일부러 카메라 조리개를 이리저리 조절한 건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엄숙하고 신비로운 빛과 그림자 속에서 자주 인간의 이성은 흔들리곤 하지요. 마치,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허드슨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자비와 사랑이 뭉게뭉게 샘솟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워 있던 병실에서, 그는 (비록 일시적이긴 했지만) 못 견디리만치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는데, 그건 허드슨에겐 너무나도 낯선 감정이었나봅니다. 자기도 모르게―그러니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다음과 같이 소리 높여 외친 걸 보면 말이에요. ‘이 불쌍한 아이들을 반드시 미국으로 데려가겠소! 거기서 최고의 의료기술로 새 삶을 선사해주겠다, 이 말이오!’ 

하지만 허드슨은 당장 우릴 데려가진 못했습니다. 그는 엄청나게 바빴고 할일이 아주 많았으며, 그렇기에 병원에 누워 있는 쌍둥이에게 신경쓸 겨를 따윈 없었으니까요. 만약 나와 내 동생을 안고 환히 웃고 있는 허드슨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실린 기사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우릴 완전히 잊은 채 본국으로 떠났을 겁니다. 그러나 다행히(어쩌면 불행히도) 그의 말은 활자화되었고, 어떤 기이한 계기로 인하여 허드슨은 자신의 약속을 지켜야만 하는 신세에 처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 그러니까 허드슨이나 존 깁슨, 닥터 후, 구호단체의 회원들이 모두 돌아가고 난 뒤, 병실엔 다시 적막과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나와 동생은 이제 일어나 앉을 수 있었고, 어느 날 걷게 되었으며, 몇 마디 말을 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몸집이 커진 우린 더이상 병원에 있을 수 없었고, 그래서 어떤 회색의 네모난 건물로 옮겨졌습니다. 나와 동생처럼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수없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었는데, 거기서 우린 나름대로 즐거운 나날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서로 의지하면서 말이에요. 

간혹 김호선이 자기의 여자친구와 함께 그곳을 찾았습니다. 과자와 사탕 같은 걸 사 들고 와서 나눠줬고, 나와 동생을 해가 잘 드는 방으로 불러 이런저런 이야길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는 마치 먼 하늘에 어떤 스토리가 줄줄이 적힌 보드라도 걸려 있는 듯, 시선을 창밖에 둔 채 드문드문 중얼거렸습니다. 너의 아버지는 이득수라는 분이다. (침묵, 적막) 너의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또, 침묵과 적막) 너와 동생은 원래 한몸이야. (고요함) 너희를 갈라놓은 것이 정말 잘한 일인지, 난 아직도 모르겠구나. (영원과 같은 시간의 흐름) 

때로 김호선은 작은 책상 위에 카드를 펼쳐놓고 그걸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우린 눈을 감은 채 카드 뒷면에 그려진 그림을 알아맞혔고, 그때마다 그는 나와 동생을 이윽히 바라보며 뭔가 할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이곤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아이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에, 누군가 나와 동생이 누워 있던 방의 창을 톡톡 두드렸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동생 대신 내가 살그머니 일어나 창문을 열었을 때, 놀랍게도 거기엔 김호선이 서 있었습니다. 그는 어딘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나는 사람처럼 단단히 채비를 갖춘 모습이었습니다. 두꺼운 코트에 털모자, 털장갑까지 끼고 있었으니까요. 그의 뒤엔 여자친구가 서 있었는데, 그녀 역시 같은 차림에 커다란 트렁크를 옆에 세워둔 채였지요. ‘아저씨, 여긴 웬일이에요? 이 깊은 밤중에?’ 내가 물었지만, 그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릴 처음 보기라도 한 것처럼 가만히 응시할 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그가 열린 창문 틈으로 손가락을 밀어넣더니 내 볼을 만졌습니다. 나는 그의 손가락을 꽉 쥐었지요. 김호선은 내게 손가락을 잡힌 채 꽤 오래 서 있었지만, 마침내 결심한 듯 조심스레 손가락을 빼냈습니다. 여자는 그런 그에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건물 옆 골목 모퉁이를 돌아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희미한 가스등이 그들의 뒷모습을 끝까지 비춰주던 광경이 생각나는군요. 

그렇습니다. 그게 내가 본 김호선의 마지막 모습이었어요. 물론 완전한 마지막은 아니었지요. 그후 그를 다시 만나긴 하니까요. 하지만 그건 너무나 뜻밖의 장소이고, 거기서 우린 자석에 끌리듯 서로를 향해 다가가게 될 터이지만…… 그 모든 것은 한참 후에나 일어날 일입니다. 적어도 아직은 아니지요.

김호선이 떠나고 얼마 후, 나와 내 동생은 다시 한번 석간신문의 1면을 대문짝만하게 장식하게 됩니다. 우리의 사진 위엔 커다란 고딕체 글자로 ‘세계평화의 상징’이라는 타이틀이 인쇄되어 있었지요. 하지만 슬프게도 그 사진 속의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었고 오히려 그 안엔 전쟁과 불화의 씨앗이 내포되어 있었다는 걸, 우린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와 내 동생은 그 사진을 찍은 후 이별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만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