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이제 한 발짝만 더 내디디면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어! 난 속으로 외쳤습니다. 그 순간이었지요. 그들이 내 앞을 가로막은 건 말입니다.

검은 옷을 입은 두 명의 남자. 그중 한쪽이 음울하다못해 우울해 보이기까지 하는 회색 얼굴로 내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록 허드슨이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반갑습니다. 우린 당신을 데리러 온 스미스 1과 스미스 2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소개 하는 걸 양해해주십시오. 본명을 결코 밝혀선 안 된다는 게 우리의 규정이라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둘은 각각 양쪽에서 나의 어깨를 잡았습니다. 난 덜덜 떨며 그들을 번갈아 쳐다봤지요. 둘 중에서 좀더 마르고 길쭉한 남자(그가 스미스 1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지요)가 입을 열었습니다.

‘우린 이 땅에 침투해 있는 적국의 첩자들을 감시하는 요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사악한 스파이들이 이 병원에 무시로 드나드는 것을 알게 됐지요. 그들이 왜 이런 허름한 시립병원 폐쇄병동에 드나들었는가를 분석하던 중, 당신의 뛰어난 능력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고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우린 상부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데려가기 위해 온 겁니다. 지금 국가는 위기 상태고(하긴 국가란 언제나 위기 상태이긴 하지만요. 국민들에겐 그렇게 말해두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당신 같은 존재들의 능력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어요. 자, 어떻습니까? 우리와 함께 가겠습니까?’

그러면서 스미스 1이 이윽히 노려보는 바람에, 난 생각하고 말고 할 겨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거기서 ‘이거 왜 이래? 당신들과 함께 갈 마음은 없어. 사실 난 무정부주의자라고!’ 따위의 말을 늘어놓으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도 싫었으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내가 무정부주의자라는 건 아닙니다. 굳이 정의하자면, 정부 따윈 있으나 없으나 매한가지라고 믿는 사람, 정도라 할까요?)

결국, 난 그 검은 옷의 남자들과 함께 커다란 승용차에 오르게 됐습니다. 아버지의 수첩 사진이 든 칠리소스 상자를 품에 안고 낡은 트렌치코트를 걸친 채로 말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그때부터 난 한 사람의 행려병자가 아니라 중요한 국가 업무를 수행하는 요원의 자격을 가지게 되었던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당신들은 당연히 묻겠지요? 대체 왜 그게 불행의 시작이냐고.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누누이 말했지만, 사건의 흐름엔 나름의 순서가 있고―비록 그것이 각각의 사건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의미하진 않을지라도―난 결국 그 흐름을 좇아 이야기를 이어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청년이 언덕을 오른다. 그런데 그를 청년이라고 불러야 할까? 어쩌면 그는 소년, 혹은 그저 ‘남자’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청년은 언덕을 오른다. 낮은 지붕의 집들과 녹슨 대문, 우중충하게 시든 담쟁이덩굴과 무료함에 지친 개가 있는 언덕이다. 오래전 이곳은 나름 번화한 지역이었다. 물론 청년은 알 길 없지만, 여하튼 그러했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국도나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자동차 따위가 이렇게 많아지기 전, 오직 철도만이 먼 곳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던 그런 시절. 그때 이 도시의 철도역은 모든 것이 모이고 뻗어나가는 유일한 포인트였다. 역을 중심으로 상가와 마을이 형성됐고, 길을 하나 건너면 보이는 이 언덕에도 총총히 집들이 들어찼다. 그 당시 여기엔 붉은 전등을 켠 집이 가득했고 밤이면 거기서 여자들이 밖을 내다보며 앉아 있곤 했다. 어쨌거나 결국은 다 지나간 이야기일 뿐이지만 말이다.

도시가 점점 커지면서 철도역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은 일종의 음습한 공동空洞이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텅 비어버린 이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폐지나 빈병, 쓰다 버린 철삿줄 같은 걸 찾아다녔고 그러다 지치면 언덕 경사면의 방으로 돌아오곤 했다.

지금 청년이 찾아가고 있는 이도 그런 부류에 속했다. 갈 곳 없는 사람. 

언덕을 오르며, 청년은 신기한 듯 사방을 두리번댄다. 아직도 이런 데가 있다니. 그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런데 어디서 봤더라? 

걸으면서 그는 문득 이 모든 풍광이 낯익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다. 그는 TV를 통해 이와 비슷한 곳을 여러 번 봤다. 복고풍이 유행하면서, 과거를 그대로 재현했다는 거리가 일종의 핫 플레이스가 됐기 때문이다. 지금 그가 힘겹게 걸어올라가는 언덕과 골목길은 ‘과거’ 그 자체다. 다만 한쪽이 관광지라면 이곳은 그냥 쇠락하는 땅, 어두운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  

드디어 언덕 꼭대기에 도달한 청년이 걸음을 멈춘다. 그는 어떤 집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고는 몇 발짝 뒤로 물러나 다시 그 집을 바라본다.

그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 뒤 오른쪽 구석을 눌러 스마트펜을 뽑아든다. 그런 다음 화면 위에 뭔가를 휘갈겨 쓴다. 아마도 이런 문장을?

―노인의 집은 마치 갑옷처럼 그를 겹겹이 감싸고 있다. 


*


내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헤엄치고 싶다고 말할 때 떠올리는 생각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특정한 사건이 가져온 결과를 지우고 원래 상태로 되돌리고 싶다.


―이탈로 칼비노,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에서


이탈로 칼비노의 책을 뒤적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돌아보니 웬 퉁퉁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웅얼거렸다. 

“저기, 그 사람이 왔어요.”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가 누군지도 알 수 없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얼굴에 여드름이 잔뜩 난 그가 작게 속삭였다.

“……저기요, 저번에 옥장판 파는 사람 오면 알려달라고 했잖아요.”

그래, 맞아. 도서관 장서실에 있던 사회복무요원.

“아아, 누구신가 했더니. 기억하고말고요!”

책을 덮어 책장에 꽂으며 서둘러 대답했다. 그때 사회복무요원이 갑자기 내 팔을 붙들었다. 

“잠깐, 그러면 안 돼요!”

“뭐…… 뭐가요?”

당황해하는 내게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좀전에 책장에 꽂았던 이탈로 칼비노의 책을 도로 꺼내더니, 한 칸 아래 책장에 정성스레 꽂아넣을 뿐이었다.

“책은 반드시 제자리에 꽂아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찾을 수 없다고요.”

그러더니 아예 무릎을 꿇고 앉아 다른 책들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는지 살피는 것 아닌가. 

“어휴, 이거 보세요. 꼭 이렇게 잘못된 칸에 책을 넣어두는 사람들이 있다니까요. 그러니 매번 찾아도 없는 거예요.”

사회복무요원은 이젠 주머니에서 작은 솔까지 꺼내 책에 앉은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그 옆에 선 채 기다리다 말고, 나는 다시 물었다.

“저어…… 그런데 그 옥장판 파는 사람, 지금 어디 있다는 거죠?”

그러자 그가 벌떡 일어섰다.

“앗, 내 정신 좀 봐! 좀 아까 매점으로 들어가는 걸 봤거든요. 그래서 알려드려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급히 온 건데…… 지난번에 엄청 간절하게 부탁했잖아요. 따라오세요.”

매점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마치 매복이라도 하듯 조심조심 다가갔다. 그러고는 문 뒤에 몸을 숨기고 안쪽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저기 보여요? 창가에 있는. 체크무늬 잠바 입은 사람요.”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 나도 덩달아 문 뒤에 몸을 숨긴 채 기웃거렸다. 깡마른 남자가 자줏빛 체크무늬 잠바 차림으로 뭔가를 먹고 있었다.

“그러네요, 저 사람인가요?”

“네, 얼른 가보세요. 그럼, 전 이만. 정리할 서가가 남았거든요.”

사회복무요원은 뭐라고 인사도 하기 전에 재빨리 복도를 가로지르더니 계단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등뒤에 바짝 다가설 때까지 남자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 라면과 김밥을 허겁지겁 먹으며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어…… 안녕하세요. 혹시 옥장판 취급하는 분 맞나요?”

그제야 그는 뒤를 홱 돌아봤다. 나사못처럼 뾰족한 얼굴이었다. 의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던 그가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글쎄요, 근데 누구시죠? 무슨 일로 그러는 건지……?”

나는 얼른 속으로 연습해둔 말을 꺼냈다.

“……사실은 제가 요즘 몸이 좀 안 좋아서요. 옥장판이 이유 없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데 좋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거기서 무슨 원적외선인가 그런 게 나온다면서요? 좀 아까 매점 아줌마가 그런 얘길 해주더라고요. 그러면서 아저씨한테 가보라고……”

남자가 라면 국물을 마시다 말고 그릇을 내려놓았다. 

“하, 진짜, 누굴 바보로 아나? 대체 무슨 꿍꿍이야? 혹시 환불 때문에 찾아온 거면 그냥 가쇼. 아무 불법도 저지른 거 없으니까. 솔직히 몸 안 좋은 노인네들한테 옥장판 파는 게 뭐가 문젠데? 우리가 사기를 쳤어, 강매를 했어? 홍보관 와서 하루 재밌게 놀고 점심까지 얻어먹었으면 그 정도는 사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고소할 거면 증거부터 가져와야 할걸? 옥장판이 좋다는 건 사기고 부작용도 있다는 증거 말이야! 회사 홈페이지 보면 알겠지만, 원적외선이 얼마나 몸에 좋은지는 다 과학적으로 증명돼 있거든. 그거 연구한 박사가 옥스퍼든지 하버든지 하여튼 교수고, 노벨상까지 탔다고!”

나무젓가락까지 휘두르며 미친듯이 떠드는 남자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의 얼굴은 점점 더 붉어질 뿐이었다. 결국 난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고 말았다.

“아,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요! 나도 아저씨처럼 돈을 떼먹혔단 말이에요!”

갑자기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뭐야, 돈을 떼였다니? 누가 그래? 어떤 놈이 그런 헛소릴 하냐고?”

“……얼마 전에 저 앞 복도에서 어떤 할아버지랑 다투지 않았어요? 옥장판값을 못 받았다면서요? 저도 그 할아버지를 꼭 찾아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문득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먹던 라면과 김밥을 대충 정리하며 그가 중얼거렸다.

“참 나, 뭔 소릴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네. 생긴 건 멀쩡해서 왜 아무한테나 헛소릴 하는 거지? 다시 말하는데, 난 그런 노인네 몰라. 옥장판도 안 팔고. 이젠 손 씻었거든. 그러니까 귀찮게 하지 말고 그만 가보라고.”

개수대에 라면 찌꺼기를 버리고 티슈를 뽑아 손을 닦더니, 남자는 말도 없이 나가려 했다. 그를 뒤쫓으며 난 한번 더 외쳤다.

“좀 도와주세요. 그 할아버질 꼭 찾아야 한다고요.”

내 말에 남자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러다 퍼뜩 뒤를 돌아보더니 물었다.

“좋아, 넌 뭘 파는데?”

“네? 무슨 말씀이신지?”

“너 말이야. 취급하는 물건이 뭐냐고? 설마 너도 옥장판이나 자수정 매트 같은 건 아니겠지?”

나는 당황했다. 거기까진 전혀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잠깐 망설이다 그냥 아무 말이나 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몇 달 전에 본 탐사 프로그램 내용이 떠올라서 대충 둘러대기 시작했다. 

“저는 뭘 파는 게 아니고…… 뭐랄까, 일종의 투자회사 같은 데서 일하거든요. 그러니까 일단 십이만원을 입금하고, 상품에 가입시킨 회원 수가 늘어나면 백만원, 천만원, 이런 식으로 점점 불어나는 거죠.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갑자기 그가 내 등을 툭 쳤다. 

“됐어. 이게 내 앞에서도 사기를 치려고 하네. 어디 유튜브 같은 데서 주워듣고 떠드는 거 누가 모를 줄 알고. 딱 보니까 장사라곤 해본 적도 없는 녀석이구먼. 안 그래?”

그러더니 그가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우린 도서관 현관을 나와 건물 뒤편에 있는 흡연실로 갔다. 그는 담배를 한 대 권했지만, 난 됐다고 했다. 남자는 천천히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길게 빨았다.

“자, 이젠 솔직히 말해보시지. 대체 이유가 뭐야? 옥장판값 떼먹은 노인네 얘긴 왜 물어보는 건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사실은 좀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래요. 걱정도 되고…… 요 며칠 안 보여서요. 아저씨라면 그 할아버지 연락처든 주소든 알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난 간단히 사연을 털어놓았다.

“……뭐, 대충 그렇게 된 거예요. 그런데 나이 많은 분이 갑자기 안 나타나니까 좀 그렇더라고요, 기분이.”

한동안 진지하게 얘기를 듣던 남자가 씩 웃었다.

“겨우 그거였냐? 그러게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하지 그랬어. 그 정도는 바로 알려줬을 텐데. 근데 그 노인네 주소를 갖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거기 사는지는 나도 잘 몰라. 돈 달라고 몇 번 쫓아갔더니 어디로 튀었거든. 아니, 튄 건지 틀어박혀서 안 나오는 건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언젠가부터 아예 안 보이더라고. 며칠 근처에 숨어서 지켜보기도 했지만 헛수고였지. 그러다가 마누라 심부름으로 도서관에 들렀는데―딸내미 그림책을 반납하고 오라는 거야―여기서 딱 마주쳤지 뭐야. 이때다 싶어 냅다 잡았는데, 햐, 그 노인네 진짜 빠르더군. 얼마나 잘 뛰던지……”

그러면서 남자가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냈다.

“어쨌든, 예전 주소라도 알려달라고 하면 가르쳐줄 수 있어. 여기 저장해뒀거든. 어디 보자……”

그리하여 난 엑스, 혹은 본인을 엑스라고 주장하는 한 노인의 주소를 얻을 수 있었다.


엑스는 구시가지에 살고 있었다. 전엔 거기에 철도역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저 다 쓰러져가는 낡아빠진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나는 광장을 한번 둘러봤다. 망가지고 칠이 벗겨진 벤치, 쓰레기로 뒤덮인 화단 사이에 바늘이 멈춘 채 서 있는 시계탑 하나가 전엔 이곳이 ‘광장’이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심하쇼. 여기 일대에 미친놈들이 많거든. 하여간 노숙자들이 문제라니까. 매달 20일만 되면 돈이 따박따박 나오니까, 그걸 다 찾아서 여기 모여 술 퍼마시고 주정하고 뒹구르는 거지.” 

택시기사는 카드를 돌려주며 말했다.

다행히 아직은 20일이 되지 않았고, 그래선지 광장은 텅 비어 있었다. 약도를 그린 종이를 들고 사방을 두리번대다가 건너편에 보이는 슈퍼마켓으로 갔다. 어두컴컴한 가게 안에 늙수그레한 여자가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저기, 말씀 좀 여쭐게요. 여길 찾는데, 어디로 가야 하죠?”

여자는 내가 내민 종이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더니 턱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네? 저쪽으로 가라고요?”

하지만 그녀는 이미 TV 쪽으로 다시 돌아앉아 있었고, 내 물음엔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난 여자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다닥다닥 붙은 처마와 녹슨 대문, 늘어진 개와 찌그러진 플라스틱 의자를 지나 거의 골목 끝에 다다랐을 때, 노인의 집이 나타났다. 적어도 약도상으론 거기가 엑스의 집이었다. 대문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출입구로 보이는 곳 앞에 서서 난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여기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아니, 누군가 살고 있긴 한 걸까?

온갖 고물과 잡동사니로 둘러싸인 그 집은, 마치 갑옷 같았다. 노인을 겹겹이 감싸고 있는 거대하고 딱딱한 껍질.

손수 나무를 깎아 만든 듯한 담장엔 틈이 여기저기 벌어져 있었고, 그래서 안을 엿보기도 쉬웠다. 대문엔 어디서 주워왔는지 경광등이 달린 주차금지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그 위에 손수 쓴 글씨로 ‘개조심’이라고 적힌 종이가 여러 겹의 테이프로 붙여져 있었다. 틈으로 들여다봤지만, 좁은 마당 어디에도 개는 보이지 않았다. 개집 같은 것도 안 보였고, 무엇보다도 개를 키울 만한 공간 자체가 없었다. 엑스는 혹시 고물을 수집하는 걸까? 사방 구석마다 노끈으로 묶은 폐지가 가득했고, 빈병이 꽉꽉 채워진 마댓자루가 거의 지붕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누군가 쓰다 버린 파란 생수통, 스티로폼 상자, 반쯤 썩은 목재들, 프라이팬, 헌옷, 수십 년은 더 되어 보이는 컴퓨터 모니터까지, 그야말로 모든 맛이 간 것들이 좁은 마당 안에 일종의 미로를 형성한 상태였다.

대문을 밀어보니, 쓰윽 열렸다. 

문 앞에서 나는 잠시 망설였다. 들어가도 되는 건가? 어쩌면 여기엔 엑스가 살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집주인은 처음 보는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놀라 소리치겠지. 잠깐, 그러면 주거침입이 되는 건가? 신고를 당하고, 앰뷸런스와 경찰차가 동시에 도착하고, 양쪽에서 내 팔을 붙드는 경찰과 119 구급대원. 행정입원 명령. 결국, 다시 병원으로. 

갑자기 의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약을 걸렀습니까? 몇 번이나 얘기했을 텐데요. 한 번이라도 건너뛰면 증세가 악화될 수 있다고. 이것 보세요, 당신은 지금 위험한 상태입니다. 언제 무슨 헛것이 보일지 모르니까요.”

의사는 내 눈을 들여다본다. 

“어때요, 지금은 뭐가 보입니까? 이번에도 그 동굴인가요? 혹시 아까 그 집도 동굴로 보여서 들어간 겁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건 실제가 아니었어요. 환상이죠. 어쩌면 꿈이었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당신은…… 거기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받아들여야 한다고요!”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제기랄, 어떻게 말을 하란 거야? 이 어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동굴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는데, 도대체 무얼 하라는 거냐고. 난 귀를 막은 손에 힘을 주며 머리를 흔든다. 

“괜찮으십니까?”

옆에 있던 누군가가 내게 속삭이듯 묻고, 난 고개를 끄덕인다. 어쨌든 죽진 않았구나. 그건 확실해. 만약 죽었다면, 이렇게나 통증이 심할 린 없을 테니까.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나가서 확인해보고 오겠습니다.” 

그러면서 주섬주섬 일어서는 그에게 나는 말한다. 

―나가지 마. 안 돼.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가 나가면 안 된다는 걸 알고, 나간다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으리란 것까지 이미 알고 있다. 

“네? 뭐라구요?” 

스무 살의 그가 돌아보며 되물을 때, 나는 다시 한번 나지막하게 발음한다. 

―나. 가. 지. 마. 아직은, 나갈 때가 아니야.

그러나 내 말을 듣지 못한 그는 몸을 숙인 채 뛰어나가고, 잠시 후 엄청난 폭음이 들려온다. 

“안 돼!” 


“그래, 안 되지. 안 되고말고. 하지만 그는 나갔어. 어떤가,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가? 한 번만이라도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냐고?” 

뭔가 단단하고 매끄러운 것이 이마를 만지는 감촉에 눈을 뜨자, 쭈글쭈글한 노인의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아니, 엑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기가 어디지? 동굴은 분명 아니었다. 눈이 부신 걸 보면. 노인의 등뒤로 경광등이 달린 주차금지 표지판이 보였다.

엑스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자, 일어서게.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왜냐하면, 그때 자넨 다르게 말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너무 자책하지 말게. 인간은 원래 그런 거야. 강하기만 하다면 인간일 수 없지. 다만 중요한 건, 아직 늦지 않았다는 거라네. 우린 할 수 있다고.”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는 그의 손을, 나는 한참 만에 잡았다. 

‘당신이 그 일을 어떻게 알죠?’라고 묻기도 전에, 엑스는 이미 빙긋이 웃고 있었다.

“말했잖나. 난 프사이Ψ를 가지고 있다고. 그리고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야. 자네 역시 대단한 힘을 갖고 있어. 물론 지금은 믿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받아들이게 될 걸세.”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운 다음, 엑스는 대문을 활짝 열었다.

“자, 들어오게나. 그나저나 용케도 나를 찾아냈군.”

그가 먼저 안으로 들어서더니 집사처럼 허리를 굽히며 웃었다. 

어디선가 새소리 같은 게 들려오는 마당은 밖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넓었다. 어쩌면 착시일지도 모르지. 난 눈을 비비며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틈으로 들여다볼 땐 보이지 않았는데, 여기저기 작은 나무가 자라고 있고 새집 같은 것도 보였다. 새소리는 저기서 들려오는 걸까. 

“뭐해? 들어오지 않고?”

고개를 들어보니, 엑스가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난 천천히 현관으로 다가가 신발을 벗었다. 


비좁은 마루 한가운데엔 연탄난로가 놓여 있었다, 바닥은 차가웠지만, 다행히 난로 주위엔 약간의 온기가 감돌았다. 한쪽 벽에 붙여놓은 책상 위는 낡고 오래된 책과 종이, 연필, 지우개 같은 것들로 어지러웠다. 맞은편 열린 문으로 작은 방이 들여다보였다. 그야말로 간소한 살림살이였다. 옷장 따윈 없고 구석에 옷걸이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 아래엔 전기 매트와 요가 개켜진 채 쌓여 있었다. 

엑스는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잘 펴더니 옷걸이에 정성스레 걸었다. 그러고는 느릿느릿 걸어나와 마루 한켠에 있는 싱크대로 향했다. 

“커피 한잔 어떤가?”

그가 찬장에서 커피믹스 두 봉지를 꺼내더니 흔들었다.

“아, 저는 괜찮습니다. 마시고 왔어요”라고 사양했지만, 엑스는 이미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사양 말고 마시게. 그래도 손님이 왔는데, 뭐라도 대접은 해야지.” 

한참을 달그락거리던 엑스가 플라스틱 쟁반에 종이컵 두 개를 받쳐 들고 왔다.

“이거 미안하게 됐군. 다과상이 따로 없어서 말이야.” 

그는 무척이나 겸연쩍어하며 바닥에 쟁반을 내려놨다. 

“자, 들게나, 어서. 따뜻할 때 마시는 게 좋지. 아무래도 할 이야기가 많을 테니까.” 

그러면서 엑스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고 한쪽 눈을 찡긋하기까지 했다. 난 두 손으로 종이컵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의외로 맛이 좋았다.

“……그래, 어디서부터 얘기할까?”

엑스가 종이컵의 커피를 단숨에 비우더니 물었다.

“지난번 마지막으로 들려준 이야기, 그다음부터요. 자서전을 써달라고 하셨으니 일단은 다 들어봐야 할 거 아니에요? 아니, 생각해보니까 그보다 먼저 해주셔야 할 얘기가 있어요. 대체 그동안 어디서 뭘 하신 거예요? 왜 도서관에 안 나왔던 거죠?”

그러자 엑스는 또다시 씩 웃었다.

“이런, 이런. 내 걱정을 했구먼.”

순간 나도 모르게 발끈했다.

“아뇨, 그럴 리가요! 다만, 약속했던 일이잖아요. 그리고 원래 약속이란 그게 누구든 언제든 간에, 지키라고 있는 거라고요!”

문득 노인의 얼굴에 아련함이 스쳐갔다. 일견 슬퍼 보이기까지 하는 오묘한 표정이었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약속이란…… 지키라고 있는 거지. 그런데 난 그걸 지키지 못했어. 내 동생 와이에게도, 그리고 이번엔 자네에게도. 미안하네, 정말 미안해.” 

그러면서 엑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허공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난 당황하여 노인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앙상한 어깨에 손을 얹자, 노인은 옷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저길 보게. 저 사진 말이야. 저애가 바로 내 동생 와이야. 그리고 난 지난주 그애를 찾으러 서울에 다녀왔다네.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와이를 발견했거든. 그래, 그동안 그렇게도 찾아다닌 내 동생, 그애가 그런 곳에 있을 줄이야! 하지만 이번에도 난 와이를 만나지 못했어. 그 아이는 닿을 듯 닿을 듯 하다가 꼭 이렇게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단 말이야.” 

노인이 가리키는 쪽을 보니, 벽에 걸린 액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싸구려 액자였다. 그 안에 젊은 엑스(처럼 보이는 남자)가 입술을 한쪽으로 말아올린 듯 기묘한 미소를 지은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


7. 쉬는 시간에 존 휠러가 소련에서 망명한 뇌신경과학자에 대해 알려주며 엑스의 동생인 와이의 존재를 언급하다


휴식 시간에 교수는 나를 연구실 옆 작은 방으로 데려가더니 넌지시 물었다. 

“자네, 최근 소련이 초심리학을 이용한 각종 무기를 개발중이란 사실을 알고 있나?”

존 휠러는 내게 몸을 숙인 채 목소릴 낮췄다. 마치 문밖에 스파이라도 숨어 있다는 듯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런 얘긴 금시초문이었기에 고개를 저었지만, 동시에 본능적으로 밀려드는 공포와 불안으로 얼굴이 창백해지는 걸 감출 수 없었다. 지금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그리고 이젠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때 우린 누구나 그런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언제 소비에트의 볼셰비키주의자들이 서방세계로 핵미사일을 날려 보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곧 닥쳐올 게 확실한 핵겨울에 대비하기 위해 지하창고에 통조림을 가득 쌓아두고, 나 역시 부엌 싱크대 찬장에 레토르트식품을 차곡차곡 사 모으던 시절이었다. 하다못해 밤하늘에 뜬 작은 별을 보고도 소련의 정찰위성은 아닌지 의심해야만 했던 시대이니, 존 휠러에게 “초심리학 무기라뇨?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라고 말할 때 내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던 것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은 이해해줘야만 한다.

내 대답에 교수는 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초심리학 무기. 초능력 무기라고도 하지. 자네도 알다시피, 1945년의 핵개발 이후 양 진영은 우울하고 지루한 치킨게임을 계속해오고 있어. 서로는 서로에게 영원한 적이고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끊임없이 뭔가를 시도해야만 했던 거야. 앞다투어 우주로 로켓을 쏘아 보내거나 마리아나해구에 잠수정을 가라앉히고 작은 나라들을 하나씩 접수해나가는 것, 이 모든 게 그 끝없는 게임의 일부인 거지. 그런 의미에서, 초심리학 무기 역시 또 하나의 카드 패나 마찬가지야. 소련이 먼저 시작했으니 우리도 어떻게든 응수해야 하는, 일종의 기괴한 정반합이라고나 할까?”

그 순간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존 휠러는 말을 멈췄다. 열린 문틈으로 엑스의 얼굴이 보였다.

“여러분, 전 충분히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도 될 것 같은데, 어떤가요?” 

교수가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다가가더니 문을 살짝 당겼다.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주겠습니까? 앞으로 진행할 실험에 대해 이 학생과 좀더 의논할 일이 있어서 말이지요.” 

그러면서 그가 안쪽에 앉아 있는 나를 가리키자, 엑스는 한동안 머뭇대더니 마지못해 문을 닫았다. 교수는 발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문을 열고는 바깥쪽 복도를 살폈다.

“왠지 꺼림칙한 남자야. 그렇지 않은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특히나 저 살피는 듯한 눈초리가 맘에 안 드는군. 그나저나 설마 밖에서 모든 걸 엿듣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더니, 하던 말을 계속했다. 여기에 존 휠러의 장황한 이야기를 모두 옮겨 적을 필요는 없고, 그럴 여력도 없으니, 간단하게 결론만 얘기하기로 하자.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은 소련에서 망명해 온 한 뇌신경과학자에 의해 시작됐다. 그는 철의 장막 뒤에서 벌어지는 가공할 초능력 무기의 실체를 알려줬고, 미국이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태세를 갖출 것을 촉구했다. 

“그 뇌신경과학자의 이름은 레오니드 몰로디노프였어. 소련에서 관련 연구를 진두지휘했던 사람이지.” 

레오니드 몰로디노프는, 표면적으로는 소비에트연방 과학아카데미의 의장직을 맡고 있었으나, 실제로 그가 했던 일은 초심리학과 초능력 현상의 연구였고, 그것은 모스크바 근교에 있던 ‘부크바-A’라는 비밀 기관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세뇌를 통한 심리 조종 기술을 개발하여 유리 가가린의 첫번째 우주비행을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로 레닌 훈장까지 받은 몰로디노프가 미국으로 갑자기 망명한 이유는 지금까지도 공식적으론 밝혀지지 않았다는 게 존 휠러의 말이었다. 

“다만 중요한 건, 그의 망명이 적어도 가가린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사실이야. 최초로 유인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을 다녀온 그 남자 말일세. 결국 비참하게 죽었잖아. 우주선에서 내린 뒤 흐루쇼프가 직접 영웅 칭호를 수여하고 금성훈장까지 달아준 베테랑 비행사가, 전투기 시험 비행 도중 뜬금없이 추락사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어쨌든, 몰로디노프는 가가린이 죽고 얼마 뒤,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신경과학총회 참석을 이유로 서방세계 방문 허가를 받았고, 그길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하네. 그리고 곧바로 망명 신청을 한 뒤, 지금은 신분을 감춘 채 나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거지. 뭐, 이건 여담이지만, 나 역시 나사를 방문했을 때 그를 두어 번 만난 적이 있네. 아주 소탈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더라고. 인간의 무의식을 조종하여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혁명 전사로 바꾼 주인공답지 않게 말이야. 어쨌든, 우린 그를 통하여 이자의 존재도 알게 됐지. 자, 한번 보겠나? 현재 소련에서 초능력 부대를 총괄하며 이끌고 있다는 베일에 싸인 남자.”

존 휠러는 웃옷 안주머니에서 증명사진 한 장을 꺼내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아니, 이 사람은?”

“어떤가, 많이 닮았지? 아니, 똑같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군.”

조그만 사진 속에선 엑스가 입술을 한쪽 끝으로 말아올린 듯 독특한 미소를 지은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사람이 왜 여기 있는 거죠? 설마 이중첩자……?”

하지만 내 질문에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이상한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자는 엑스가 아니야. 미스터 와이지. 그리고 어쩌면 그는 엑스의 사라진 동생일 수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