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고 공포를 느꼈어. 그건 내 동생도 마찬가지였지. 정말이야. 자넨 믿지 않겠지만, 난 어른이 된 뒤 부단한 노력 끝에 과거를 투시할 수 있는 힘을 얻었고, 결국 어머니 자궁 속에서의 일들을 기억해냈지.”

다섯째 날, 노인은 아버지의 최후를 설명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 아버지가 무無로 화하던 순간, 어머니의 뱃속으로 밀려들어온 건 차갑고 끔찍한 죽음의 그림자였다네. 엄청난 빛, 천둥소리와 함께 말이야. 나와 동생은 혼비백산했어. 이제 곧 어머니의 몸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알았기에, 두려움은 더욱 커졌지. 동생은, 싫다고 울부짖었어. 차라리 영원히 이 안에서 살겠다고 외치며 말일세. 난 그애를 꼭 껴안았어. 글쎄, 잘 모르겠군. 우리가 처음부터 팔과 다리가 각각 세 개뿐이었는지, 아니면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힘껏 끌어안는 바람에 두 몸의 융합이 일어나며 하나의 팔과 하나의 다리가 사라져버렸던 건지. 이상하게도 그건 잘 기억나지 않아. 다만, 우린 그렇게 온몸을 꼭 붙인 채로 정신을 잃었을 뿐이야. 그리고 그 순간, 너무나 강렬해서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만한 섬광이 나와 동생을 관통했던 거지. 난 그게 아버지의 생명을 거둬간 것과 같은 종류의 빛이라 믿고 있다네. 물론, 오랜 후 나를 연구한 학자들은 좀 다른 의견을 내놨지만 말일세. 그들은 ‘우주선線’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광선에 대하여 설명해줬어. 하루 내내 지구 표면과 대기에 얼마나 많은 양의 방사선들이 비처럼 쏟아지는가에 대해서 말이야. 그 빛들은 아주 먼 우주로부터 온다더군. 거의 대부분은 대기 중에서 흔적도 없이 스러지지만, 어떤 강력한 광선은 사람의 몸을 뚫고 들어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기이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거야. 그런 변화들 중 하나가 바로 나와 내 동생에게 일어난 돌연변이였다는 거지. 하지만 난 지금도 확고히 믿고 있어. 그건 결코 우주에서 온 게 아니었다고. 우릴 변화시킨 그 빛은 ‘뚱보’로부터 나왔고, 아버지를 죽게 했으며, 나와 내 동생의 뇌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다고. 그리하여 우린 둘 다 기묘한 능력을 가지게 된 거지. 프사이라는 힘 말일세. 알겠나?”

그러면서 노인은 의수로 자기 정수리를 가리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너무 추워서 정신을 차려보니 세상이 온통 하얗고 흐릿하더군. 그러다 서서히 모든 것들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어. 그때 난 알았지. 우리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밀려나왔다는 것을. 몸을 뒤척이려고 하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듯한 그런 기분. 우린, 그러니까 나와 동생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싶어 몸을 틀었고, 그제야 서로의 엉덩이가 하나로 붙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던 걸세.”

말을 마친 노인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은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그건 어떤 책의 한 페이지를 복사한 거였는데, 중간쯤에 빨간색으로 여러 번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배아의 기관은 따로 발생하다가 중력과 같은 불가사의한 힘에 이끌려 서로를 끌어당긴다. 바로 이런 힘의 작용으로 결합쌍생아는 서로를 끌어당기지만, 이 과정에서 힘이 잘못 배치돼 두 배아의 이웃한 기관이 융합된다.”

노인은 내가 다 읽기를 기다렸다가, 마치 일부러 외우기라도 한 듯 또렷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에티엔 프랑수아 조프루아라는 학자의 책에서 복사한 거야. 그는 1672년 파리에서 태어났어. 자네, 그게 어떤 시대인지 아나? 그야말로 학문의 르네상스에 해당하는 시절이었지. 학자들은 어떤 것의 전문가가 되기보단 모든 분야에 걸쳐 다종다양한 지식을 쌓았고, 그게 가장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지기도 했어. 조프루아 역시 그런 사조에 흠뻑 빠져 일생을 살았고 말이야. 어쨌든, 지금은 화학자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그는 당대 최고의 해부학자 겸 의사였어. 그의 지적 호기심은 하늘을 찔렀고, 어디선가 희귀한 생명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한걸음에 달려가곤 했지. 그렇게 해서 그는 많은 기이한 생명체들을 접했고 그들을 연구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결합쌍생아였네. 아마 이 세상에 에티엔 조프루아만큼 결합쌍생아들을 많이 해부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여하튼, 평생에 걸친 연구 끝에 그는 후세에 길이 남은 논문을 하나 발표했네. 그게 바로 지금 자네가 읽고 있는 『배아발생론』이고.” 

노인은 차갑고 단단한 의수로 내가 들고 있는 종이를 가리켰다.

“사실 그건 일종의 희귀본 도서나 마찬가지야. 지금은 아무도 삼백 년 전의 해부학 책 같은 것엔 관심이 없으니 말일세. 내가 알기론 우리나라에도 몇 권 없다는군. 나는 오래전부터 우리가 어떻게 해서 어머니의 뱃속에서 하나의 개체로 융합되고 말았던 것일까에 대해 깊이 생각했고, 많은 자료를 찾아보았지. 그리고 결국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 거야. 분명히 원래의 우리는 따로 떨어져 있던 거라고. 그래, 태어나기 직전의 그 순간까지도 말일세. 그러다가 어머니 뱃속에서 본 빛, 그 엄청나게 밝으면서도 음산한 죽음의 기운을 띠고 있던 광선과 마주하면서, 하나로 합쳐진 거라고. 그러니 아마도 에티엔 조프루아가 이 논문에서 말하는 ‘불가사의한 힘’이란, 나와 내 동생의 경우엔 ‘뚱보’로부터 나왔던 바로 그 섬광이었을 거라고 말이야.”


속초과학신문은 그 이후 단 한 번 더 발행됐고, 그해 9월 폐간되고 말았다. 마지막 발행일이었던 1945년 8월 30일자 신문엔 이득수를 죽음으로 몰아갔을 뿐 아니라 그의 두 아들에겐 기이하기 그지없는 운명을 선사했던 희대의 폭발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발행인이었던 김호선은 그 새로운 무기에 대한 심층 분석을 다각도로 시도했지만, 당시의 과학 지식으론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그저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무기, 지구를 멸망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무기”라는 표현만이 여기저기 넘쳐났을 뿐인 걸 보면 말이다. 

아이들의 어머니, 즉 이득수의 아내에게 남편의 죽음이 전해진 것은 그로부터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다. 그 거대하고 엄청난 폭발이 있던 날, 이득수는 세 개의 빨간 마름모가 그려져 있던 조선소 건물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그런 다음엔 아무도 그를 기억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이득수라는 사람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오직 샴쌍둥이로 태어난 두 아들의 유전자를 통해서만 증명될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엄청나게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들에게 전해졌다. 결국 이득수의 아내는 어느 먼 미래 차갑고 깊은 땅속에 누운 채 남편의 마지막에 대해 알게 됐다. 소식을 들은 그녀는 나무뿌리와 벌레들에 둘러싸인 채 고개를 끄덕였고, 그 순간 최후까지 남아 있던 손톱 한 점이 부스러지며 먼지로 화했다. 그리고 그제야 마침내 이씨의 아내 역시 무無가 될 수 있었다. 


*


김호선은 자신의 비망록에 결합쌍생아의 성장 상태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에 의하면, 두 아이는 세 개뿐인 팔과 다리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보통 아기들처럼 젖을 달라고 보챘다. 둘은 마치 서로 마음이 통하기라도 하는 듯 언제나 같은 방향을 바라봤고, 그들의 인생에 다른 이들은 전혀 필요 없다는 듯 행복한 표정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그 기이한 생명체를 보기 위해 문밖에서 기웃대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아이들의 어머니는 심하게 긴장했다.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의 아이들을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시달리고 있다.


그 시기에, 김호선은 자신의 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그래도 나에 대한 경계를 많이 누그러뜨렸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오늘 찾아갔을 때, 애들의 어머니는 내게 쌍둥이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다. 나는 둘이 합해졌을 때에 비로소 ‘완성’된다는 의미로 한 아이에겐 ‘완完’, 다른 한 아이에겐 ‘성成’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이름의 의미를 들은 여자는 마음에 든다며 웃었다. “그럼, 방사선 사진은 언제 찍으러 데려갈 거요?” 그러나 내가 이렇게 물었을 때, 그녀는 다시 홱 돌아섰다. 여자는 나를 노려보며 아이들을 감싸안았다. “이애들은 아무데도 안 가요. 분명 신령님이 도와주셔서, 얘들이 잘 자라게 해주실 거라고 나는 믿어요. 그러니 그만 돌아가세요.” 그러자 옆에 있던 마씨가 나섰다. “이보슈, 그러지 말고 이분께 애들을 한번 맡겨보오. 경성에 데려가서 운이 좋으면 공짜로 수술도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소?” 그렇지만 아이들의 어머니는 막무가내였고, 오히려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다. “가라고, 가! 애들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진 아무도 손대지 못한다고!” 결국 나는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경성에 있는 형님의 친구분은 이 결합쌍생아를 볼 날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좀더 기다리라는 전보를 쳐야 할 것 같았다. 그분은 이 아이들의 탄생에 대하여 들었을 때 거의 환호하며 말했다. “김군, 애들 어머니를 잘 설득해서 꼭 이곳으로 데려오게나. 그 분야의 전문가인 일본인 산과의사를 잘 알고 있거든. 그 아이들을 연구하여 함께 논문을 쓴다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걸세. 그리고 만약 분리 수술에 성공하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쾌거를 이루는 셈이지.” 물론 나는 결합쌍생아의 분리 수술이 아직까지는 그 어느 곳에서도 성공하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분리를 시도했던 모든 쌍생아들이 결국 죽고 말았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결합쌍생아들은 그냥 몸이 붙은 채로 살아갈 때 천수를 누릴 확률이 훨씬 높았다. 하지만, 과학이란 모름지기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 아니던가. 기나긴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은 언제나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연의 신비를 밝히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나 역시 어떤 수를 써서라도 아이들을 경성으로 데려가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의학의 진보에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알겠소. 억지로 데려가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일단 애들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오. 그냥 두면 아이들은 죽고 말 거요. 그러나 수술을 하면 적어도 한 놈은 살릴 수 있고, 운이 좋으면 둘 다 살아남아 천수를 누릴 것이오.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마씨를 통하여 연락하시오.” 쌍둥이들의 집을 나와 마을 밖으로 향하고 있을 때, 갑자기 머리를 산발한 노파가 나타나 내 앞을 가로막았다. 

“네가 선주 집의 둘째 아들이냐?”

노파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괴이한 눈초리로 나를 쏘아봤다.

“그렇네만. 자네는 뉘신지?”

내가 묻자, 그 늙은 여인이 갑자기 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나에게 던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하얗고 굵은 알갱이들은 왕소금이었다. 

“훠이, 훠이. 저리 가. 다시는 이 마을에 나타나지 마. 저애들 앞에 나타나지 말란 말이다. 애들 아버지가 어젯밤 꿈에 나에게 왔어. 다 타버려서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더군. 그런데 그 사람이 뭘 부탁했는지 알아? 바로 네놈을 쫓아내달라는 거였어. 애들은, 저렇게 둘이 붙어 있어야만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댔어. 둘을 떼어놓으면 이 마을에, 아니 이 땅에 큰 화가 닥친다고 울면서 말하더니 사라져버렸다고. 그러니 이제 다시는 여기 오지 마. 알겠지?”

그 미친 노파의 헛소리에서 나를 구해준 사람은 마의 아내였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그녀가 노파의 어깨를 붙들며 말렸기 때문이다. “아니, 이분이 누군지나 알고 그러는 거유?” 그러면서 마의 아내는 나를 돌아봤다. “마을의 무당 어른인데, 얼마 전부터 머리가 이상해졌어요. 그러니 너그러이 이해하세요.”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그즈음 지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더니 38도선이라는 것이 생겼고,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게 되었다. 세상의 시끄러움에 모두 정신을 잃었고, 그래서 아무도 결합쌍생아의 어머니인 이씨댁이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마의 아내가 마당에 쓰러진 이씨댁을 발견한 것은 그해 가을이었는데,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안 좋아진 뒤였다. 이씨의 아내 역시 죽을 때 별다른 말을 남기지 않았다. 그럴 기운도 없이 그저 가쁜 숨만 몰아쉬다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마의 아내가 마지막으로 몸이 붙은 쌍둥이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아이들을 데려가는 김호선을 도와 함께 경성으로 떠나며, 마는 이유 없이 허둥대고 있었다. 몸이 붙은 두 아이는 천진난만한 눈초리로 마의 아내를 올려다봤다. 그때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다행이지. 고아가 되긴 했지만, 좋은 분을 만나 경성에서 치료도 받게 되었으니.’ 

곧 차는 출발했고, 여자는 오래도록 먼지가 이는 신작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며칠 뒤 마을로 홀로 돌아온 마는 아내의 질문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아이들의 운명과 행방에 대하여 침묵을 지켰고, 몇 년 후 국군에 의해 총살당했다. 1950년 10월 어느 날의 일이었다.   


*


일곱번째 날 들려준 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끝으로, 노인은 도서관에 나오지 않았다. 날씨는 점점 추워졌고, 사흘째 되는 날엔 드디어 눈이 내렸다. 나는 매일 오후 장서실에 나와 노인이 앉았던 자리를 기웃댔다. 그에게 단 한 번도 연락처를 묻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노인이 나타나지 않은 채 일주일이 지나자, 정말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사서는 약간 귀찮은 듯 대답했다. 

“글쎄요, 아시다시피 여긴 노인회관이 아니라 도서관이니까요. 누구나 도서관에 나올 때도 있고 안 나올 때도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 그냥 며칠 기다려보면 어때요?”

어쩔 수 없이 돌아서는데,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회복무요원이 말했다.

“저기, 그 할아버지 말씀하시는 거 맞죠? 머리에 중절모 같은 거 쓰고 낡은 바바리코트 입은 분요.”

“네, 맞습니다. 혹시 아세요? 요새 왜 안 나오시는지.” 

그러자 사회복무요원은 미안한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 실은 얼마 전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거든요.”

그러니까 그 일은 일주일 전쯤 일어났다고 한다. 오전 업무를 마치고 장서실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오는데, 복도 저 끝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더라는 것이다.

“무슨 일인가 하고 가보았지요. 간혹 여기서 도서관 이용자들끼리 싸움이 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걸 관리하는 것도 제 업무 중 하나였으니까요.”

그때를 회상하듯 고도근시 안경을 쓴 그가 먼 하늘을 쳐다봤다. 나도 덩달아 도서관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우연인지 마침 커다란 날개를 가진 하얀 새 한 마리가 휙 지나가는 게 보였다.

“갔더니, 다행히 이용자들끼리 싸우는 건 아니었어요. 단지 어떤 남자가 그 할아버지의 바바리코트 자락을 잡고 늘어지는 중이었지요. ‘아이구, 사람 살려!’ 할아버지는 옷자락을 빼내려 안간힘을 쓰며 소리치고 있었죠. 일단 전 달려가서 할아버지에게서 남자를 떼어냈어요. 사정이 어떻든 간에, 어르신께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저기, 그러지 마시고 일단 놔드린 다음, 대화로 풀면 어떠세요? 여긴 공공장소, 그것도 도서관이니, 두 분 다 정숙해야 한다고요!’ 겨우 말린 다음 떼어놓자, 남자가 막 화를 냈어요. ‘그러다 이 할아버지 또 도망간다니까요!’ 난 무슨 영문인지 몰라 둘을 번갈아가며 쳐다봤어요. ‘이 노인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요? 이제야 찾아냈는데 다시 사라지면, 그쪽이 옥장판값 낼 거냐고요!’ 이렇게 외치는 말을 듣고서야, 대충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짐작할 수 있었죠. 남자 말에 의하면, 그 할아버지가 지난가을에 사간 옥장판값을 아직도 안 냈다는 거예요. 그래서 몇 번 독촉을 했더니 전화번호도 바꾸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는 거지요. ‘결국 그 돈은 내가 다 갚았어요. 어휴, 어찌나 열불이 나던지. 찾아내기만 하면 가만 안 두겠다고 다짐했는데, 여기서 만났지 뭡니까.’ 그러면서 씩씩대는 그에게 노인이 말하더군요. ‘무슨 소리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작동도 안 되는 싸구려 옥장판을 비싸게 팔아먹은 게 누구냐고! 소비자보호원에 신고하려다 인생이 불쌍해서 봐준 건데, 이제 와 딴소리를 하다니 정말 기가 막히는군!’ 그러더니 할아버지는 하소연이라도 하듯 나한테 주절주절 늘어놨어요. ‘이놈은 옥장판, 찜질기, 안마의자 같은 걸 다단계로 팔아서 노인들을 등쳐먹는 아주 악질적인 인간이거든. 나도 깜빡 속아서 천연 춘천옥이란 말을 믿고 장판을 샀는데, 집에 와서 전원을 켜보니 불도 들어오지 않는 거야. 사실 내겐 그게 꼭 필요했다고. 난방도 되지 않는 집에서 덜덜 떨며 지내다보니 너무 추워서 온몸이 쑤시고 아팠으니까. 하여튼, 나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지. 물건을 교환해달라고 말이야. 하지만 이놈이 대답만 그럴듯하게 하고는 차일피일 미루며 오지 않는 거야. 그래놓고는 오히려 뻔뻔하게 장판값을 내라고 하니, 이게 말이 되냐고. 안 그래?’ 얘길 듣고 나니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몰라 잠깐 멍하니 서 있었어요. 그때였어요. 할아버지가 갑자기 빛의 속도로 달려나간 건 말이에요.”

“잠깐만요,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할아버지가 빛의 속도로 달렸다고요?”

내가 묻자, 사회복무요원이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와, 진짜 노인네가, 아니 할아버지가, 그렇게 빠르게 뛰는 건 첨 봤다니까요. 완전 광속으로 달려서는 마침 열린 엘리베이터에 잽싸게 올라타더라고요. 우린 계단으로 달려내려갔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밖으로 나가서 (그러면서 그는 도서관 앞 광장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큰길 너머로 사라져버렸어요. 신호등은 빨간불이었고, 차들은 미친듯이 쌩쌩 달리는데, 그 사이로 요리조리, 그야말로 무슨 첩보요원처럼 샤샤샥 달려가더라니까요. 나와 그 남자는 그저 얼이 빠져서 그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었어요. 저러다 차에 치여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지만 이런 걱정도 잠시, 정신을 차리니 이미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고…… 결국 난 터덜터덜 걸어서 장서실로 되돌아왔죠. 그게 끝이에요. 그후론 할아버지를 못 보았고요.”

옥장판이라니. 게다가 돈을 안 내고 튀어버렸다니. 난 사회복무요원에게 물었다.

“그 사람 이제 안 오나요? 옥장판 파는 남자 말이에요.”

그가 뭐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사서가 흘낏 쳐다봤다. 얼굴엔 짜증의 빛이 역력했다. 사회복무요원이 갑자기 우물쭈물하며 말끝을 흐렸다.  

“글쎄요, 오는지 안 오는지 잘 모르겠어요. 와도 못 알아볼 테고요. 왜냐하면 사실 얼굴도 잘 기억 안 나니까요. 근데 죄송한데,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오늘 안에 서고에서 마쳐야 할 일이 있거든요.”

안경을 닦아서 다시 끼며 장서실 밖으로 나가는 그에게 외쳤다.

“혹시 그 사람 오면 좀 알려줄래요? 저는 거의 매일 여기 오니까. 만약 없으면 삼층 컴퓨터실에 있을 거예요. 부탁합니다!”

하지만 사회복무요원은 아무 대답도 없이 계단을 내려가버렸다.


나는 다시 컴퓨터실로 향했다. ‘그저 늙고 외로운 할아버지일 뿐이야. 그의 말을 다 믿어서 이러는 것도 아니고, 걱정되거나 안쓰러워서도 아니라고. 단지 궁금해서 찾아보는 거라니까.’ 속으로 중얼거리며 구글에 접속했다.

예상했던 대로 노인의 흔적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엄청나게 어려운, 혹은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존 휠러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였고, 그 이름을 입력했을 때 뜬 결괏값은 수십만 개에 달했다. ‘존 휠러+마르탱 게르’ ‘존 휠러+이완’으로도 검색해봤지만, 역시 기대했던 건 어디에도 없었다. 이런 식으론 절대 찾을 수 없을 거야. 순간, 고독사, 독거노인, 같은 단어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래,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는 그야말로 삐쩍 말라 있었지. 난 노인의 앙상한 몸과 의수를 떠올렸다. 옥장판도 작동이 안 된다는데, 얼마나 추울까. 그때 뭔가가 떠올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엑스!” 그렇다면 정말로 그는 ‘엑스’였던 걸까.

문득 언젠가 그가 읽고 있던 문장이 기억났다. 아니 어쩌면 내가 읽고 있던 문장일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책의 그 부분엔 시뻘겋게 밑줄이 그어져 있었지. 나는 장서실로 달려내려갔다. 400번 서가로 가니, 책은 여전히 거기 꽂혀 있었다. 

『현대물리학, 시간과 우주의 비밀에 답하다』. 짙은 청색 하드커버의 책을 꺼내 펼치자, 빨간 밑줄 아래에 누군가가 파란색으로 √표를 해둔 것이 보였다. 


정보란, 가능한 최대 엔트로피와 거시상태가 가진 실제 엔트로피 사이의 차이다. 


눈을 감자, 낡은 바바리코트에서 파란 펜을 꺼내 조심스럽게 표시를 하는 엑스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존 휠러와 친했다고 거들먹대며, 노인은 내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흘려들었지만, 어쩌면 그 순간 이미 그는 자신의 과거를 재구성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자네 역시 물리학도이니, 엔트로피가 무엇인지 알고 있을 걸세.”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날 노인은 다시 물었었다.

“엔트로피가 뭐라고 생각하나?”

“세계의 무질서도를 말하죠.”

“그럼, 세계는 무엇인가?”

“세계란, 우리가 사는 이 물리적인 계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닫힌 세계인가, 열린 세계인가?”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었다.

“글쎄요.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그렇게도 많은 이론물리학자들이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 우주가 무한한지, 아닌지, 혹은 단 하나뿐인지, 무수히 많은지 알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전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요. 우주가 어떤 모양이든, 혹은 몇 개든, 내 인생에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노인은 내 말을 못 들은 척했다. 그러고는 하던 이야길 능청스럽게 이어가는 것이었다.

“자네도 알겠지만, 엔트로피는 이 세계를 구성하는 정보의 양을 의미하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질서도가 증가한다는 것은, 세계를 이룰 수 있었던 경우의 수가 점점 많아지는 것을 뜻하지. 그러니까 바꿔 말한다면, 우리가 ‘현재’라는 어떤 상태를 관찰할 때, 그것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유추할 수 있는 원인의 조합들이 무수히 많아져가는 것. 그게 바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엔트로피의 증가란 말일세.”

당시 그의 말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약간의 비웃음 섞인 태도를 보였던 것 같다. 현대물리학의 가장 큰 문제점이 노인의 말에 완연히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우주에 대한 이론물리학자들의 상상은 갈수록 심원하고 방대해졌고, 마침내 그것은 어떤 종류의 초과학 같은 걸 형성했다. 실험이나 관찰로는 결코 증명할 수 없는 갖가지 기이한 우주론들이 하루가 멀게 쏟아져나왔고, 신이 난 사람들은 공상과학 소설가들과 뉴에이지 사상가들, 그리고 몇몇 종교 지도자들뿐이었다. 그때 나는 노인 역시 그런 괴상한 오류에 빠져 있는 게 틀림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내 비웃음 섞인 미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진지했다. 

“인간은 ‘현재’라는 거시상태의 아주 단순한 표면만을 알고 있다네. 지금의 우릴 봐도 그래. 내 초라한 행색과 괴상한 말투를 보면, 자네는 나를 전혀 믿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거야. 하지만 말일세, 과거라는 시간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니야. 그건 현재라는 거시상태를 통하여 추측할 수 있는 모든 상상 가능한 미시상태들의 총합이지. 그리고 그 총합 속엔 인간의 눈으로 보기엔 발생할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것들도 있게 마련이고. 그렇지만, 만약 우주 바깥에서 모든 것을 관측할 수 있는 어떤 전지전능한 두뇌가 있다면, 그는 그 제로에 가까운 확률이 결코 제로 그 자체는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을 걸세. 나의 과거도 마찬가지야. 말도 안 되는 듯 여겨지는 그 많은 일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실재하지 않았던 건 결단코 아니라는 거지.”

노인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다시 한번 그 문장을 속으로 읽었다. 

‘정보란, 가능한 최대 엔트로피와 거시상태가 가진 실제 엔트로피 사이의 차이다.’

그랬다. 거시상태가 가진 실제 엔트로피의 세상에서, 노인은 우리 눈에 비친 그대로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남들과 거의 비슷한 (굴곡지고도 한편으론 평탄한) 삶을 살아왔을 뿐이고, 지금은 그저 늙고 외로워서 사람들에게 허풍을 늘어놓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러나 가능한 최대 엔트로피의 미시적 세상에서, 그는 모두이자 모든 것이었다. 거기서 그의 과거는 무수한 가짓수를 지니며 시간 속에 펼쳐졌다.

난 컴퓨터실로 뛰어올라가 검색창에 ‘존 휠러+제5의 힘+엑스’를 입력했다. 

그러자 모니터에서, 그러니까 무한히 많은 전선과 케이블, 실리콘, 창공을 가르는 전파들로 뒤엉킨 세계 어딘가에서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엑스는, 말 그대로 실재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