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

성폭력은 자유에 대한 죄

형법상 강간죄는 ‘정조貞操에 관한 죄’라는 항목 아래 강제추행죄, 혼인빙자간음죄 등과 함께 규정되어 있었다.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이야기가 아니다. 1995년 12월 29일자로 ‘강간과 추행의 죄’로 개정되기 전까지 그랬다.


대체 ‘정조’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해서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첫번째 뜻으로 ‘정절貞節’과 같은 말이라고 나온다. ‘정절’을 다시 찾아보면 ‘여자의 곧은 절개’다. 두번째 뜻은 ‘이성 관계에서 순결을 지니는 일’이란다. 쉽게 직설적으로 고쳐 말하면, ‘기혼 여성의 남편과만 섹스해야 할 의무’와 ‘미혼 여성의 결혼하기 전까지 누구와도 섹스하지 않을 의무’인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까마득한 옛날도 아닌, 서태지 박진영 신해철이 톱스타로 활약하던 <응답하라 1994> 시절 이야기다.


물론, 설마하니 이 당시까지 법학자나 판사들이 강간죄를 ‘정절’과 ‘순결’을 침해하는 죄로 해석했던 것은 아니다. 1973년에 발간된 서울법대 유기천 교수의 『형법학』 교과서(개정9판 124쪽 이하)를 보면 강간죄는 ‘인간의 애정의 자유’를 보호하는 범죄라고 설명하고 있다(애정의 자유란 무엇인지 또 궁금해지지만). 내가 공부하던 1980년대 후반의 형법 교과서에도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가 보호법익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도 1995년까지 ‘정조에 관한 죄’라는 형법전의 항목 제목은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유기천 교수의 위 책에 따르면 ‘정조에 관한 죄’란 일본의 구 형법, 즉 일제강점기의 형법의 잔재인 것 같다. 간통죄 이하 ‘정조에 관한 죄’를 강간죄 등과 함께 묶어서 건전한 사회 풍속을 해하는 범죄, 개인에 대한 범죄가 아니라 ‘사회적 법익에 관한 죄’로 규정했었는데, 광복 후 1953년 우리 형법이 제정되면서 강간죄를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항목 쪽으로 분리․독립(?)시킨 것이다. 


당시로서는 상당한 인식의 발전이었겠지만, 사회적 인식은 크게 변화했었는지 의문이다. 그 유명한 ‘보호가치 있는 정조’라는 말이 판결문에 등장했을 정도니까. 1955년 7월 22일 서울지방법원 형사재판부는 현역 장교를 사칭하며 ‘댄스홀’ 등에서 만난 70여 명의 미혼여성과 성관계를 맺은 박인수의 혼인빙자간음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며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 판결은 상급심에서 바로 파기되었지만, 당시의 사회 인식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건이다.


사회 인식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내 경험을 돌이켜봐도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성범죄 사건을 재판할 때마다 변호인들이 피해 여성의 평소 행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형법 교과서에 강간은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에 관한 죄라고 적혀 있는데도 일부 변호사님들은 평소 술을 자주 마시는 여성, 나이트클럽에 자주 가는 여성, 과거에 바든 카페든 술집에서 일한 적이 있는 여성은 그런 자유가 없다고 보시는 것 같더라. ‘정조에 관한 죄’라는 제목이 오히려 솔직한 사회 인식을 반영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분들은 지금까지도 적지 않다. 성범죄 피고인의 부모가 낸 탄원서를 보면 피해자가 학교나 회사 내에서 자유분방한 연애로 유명한 여자였다는 등의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다른 남자들과 섹스한 적이 있는 여자는 아무 남자의 섹스 제의에도 당연히 자유롭게 응했을 것이라고 믿는 근거가 도대체 무엇인지 반문하고 싶어지곤 했다.


젊은 세대는 당연히 강간죄를 ‘정조에 관한 죄’로 보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일부 젊은 남성들은 강간죄를 폭력범죄, 상해죄와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다친 곳도 없지 않느냐’ ‘후유증이 남는 것도 아니고’ ‘좀 무섭게 말은 했지만 때린 것은 아니다’…… 몸 어디가 부러지고 찢어져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장애가 생기고 하는 것, 즉 ‘몸에 대한 죄’라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이런 남성들에게 설명하고 싶은 것이 있다. 위에서 강간죄의 보호법익은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라고 했다. 말이 어려운 것 같으니 다시 쉽게 직설적으로 고쳐 말한다. 강간이란 ‘누구와 섹스할지, 언제 섹스할지, 어디서 섹스할지, 어떻게 섹스할지, 왜 섹스할지 각자 알아서 정할 자유’를 침해하는 죄다. 이 자유는 모든 인간의 권리다.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이든, 클럽에서 매일 밤 원나이트를 하는 여성이든, 5분 전에 당신과 섹스를 마친 여성이든, 술자리에서 만취한 상태로 당신을 보며 계속 웃음을 보인 여성이든, 어떤 이유로든 지금 이 순간 당신과 섹스를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 것이다. 당신과 섹스를 해야 할 의무 같은 것은 이 중 어떤 경우에도 발생하지 않는다. 


게다가 법은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 모두를 처벌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방의 반항을 억압할 만한’, 즉 상당히 무거운 폭행이나 협박을 가하여 억지로 성행위를 한 경우에만 강간죄로 처벌하고 있다. ‘자유’에 대한 침해가 심각한 경우에만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무리한 요구인가? 법은 섹스를 하지 말라고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른 모든 자유로운 주체 간의 행위들처럼, 자유무역처럼, 동업처럼, 부동산매매처럼, 코스프레 동호회 사진 촬영회처럼, 합창단 공연처럼, 길거리 농구처럼, 자유롭게 그걸 원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이상 법은 시민의 자유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오로지 다른 시민의 자유를 침해해서 피해를 끼치는 경우에만 개입하는 것이다. 


여자들은 원래 말로는 싫다고 하기 마련인데 어떻게 하냐고? 말로 싫다면 싫은 거다. 인간은 원래 말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도 자신 없으면 간단하다. 애매한 사이에서는 안 하면 되는 거다. 눈만 맞으면 서로 알아서 이불 까는, 상호 합의 과정이 이미 충분히 이행된 사이에서는 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문제는 거의 대부분 ‘하면 된다’ 박정희 정신으로 모든 애매한 신호를 자기 성기 측에 유리하게 억지로 해석하는 경우에 발생하기 마련이다. 어떻게 초면에 그렇게 과감한지.


남성들에게 불공정한 점도 있었다.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를 보호법익으로 하면서도 강간죄의 대상은 여성으로 한정했었던 과거의 형법 조문이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라고 되어 있었다. 여성들만 그런 자유가 있다는 것인지, 남성들의 자유는 너무나 당연하므로 침해당할 우려도 없다는 것인지 알쏭달쏭했다. 무려 2012년 12월 18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강간죄의 객체가 ‘부녀’ 대신 ‘사람’으로 개정되어 남성도 강간죄의 대상이 될 자격을 획득했다. 남성들도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를 폭력으로 박탈당하는 대상이 될 수 있는 동등한 위치에 있다. 그러니 역지사지의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성적 행위를 내 의사와 관계없이 당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역지사지의 상상력은 아직도 드물고 자기 욕망에 관대한 아전인수는 만연해 있는 것 같다. 조두순은 사형시키라고 비난하면서 자신의 행위는 범죄인 줄 모르는 경우들이다. 매일 밤 전국 방방곡곡에서 자신이 강간범인 줄 모르는 강간범들이 강간을 하고 있다. 그리곤 인터넷에 후기를 올려 자랑하기까지 한다. 친구들에게도 으쓱대며 과시한다. 친구들은 그의 ‘능력’과 ‘행운’을 부러워하며 방법을 전수해달라고 애원한다. 


그게 무슨 끔찍한 범죄집단 얘기냐고?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 직장인들이다. 전과도 없고 선량하게 생겼고 평소 다른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는 경우가 많다.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선 후에도 송아지처럼 눈을 끔벅거리며 이게 죄가 되는 줄 정말 몰랐다고 울먹인다. 부모는 우리 애가 그럴 리가 없다고 울부짖는다. 


그래서 쓴다. 영화 <살인의 추억>같이 으슥한 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칼을 들이대거나 때리고 묶는 경우만 강간이 아니다. 만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을 상대로 성행위를 하는 것은 형법 제299조의 준강간죄에 해당한다.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 자는 강간죄의 예에 의한다”라고 하여 강간죄와 동일하게 처벌한다. 상대방의 자유, 즉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점에서 강간죄와 동일한 범죄인 것이다. 혹시 이해가 안 되는 남성분이 계신다면 만취해서 필름이 끊겼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누군가가 당신의 항문에 격정적으로 성행위를 하고 있는 상황을 상상해보시면 되겠다.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 직장인들이 같은 과 여학생, 직장 동료, 동창생, 클럽에서 처음 만난 여성, 클럽에서 부킹한 여성을 강간한다. 과 엠티, 부서 회식, 친구들과의 술자리, 나이트클럽…… 온갖 장소, 온갖 경우를 보았다. 만취한 친구를, 과 후배를, 직장 동료를 집에 데려다준다며 부축해서 나와서는 여관으로 데려가는 경우도 많고, 아예 처음부터 만취 여성 사냥을 목적으로 클럽이나 나이트를 전전하는 경우도 많더라.


카톡이나 문자 내용도 증거로 제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세태를 상세히 알 수 있다. 친구들에게 ‘나이트에서 홈런 쳤다’ ‘웨이터에게 팁 찔러줬더니 꽐라 된 골뱅이 끌고 오더라’ 운운하며 의기양양하게 자랑하기도 한다. ‘홈런’ ‘골뱅이’ 등으로 검색해보니 엄청난 세계가 펼쳐지더라. 그런 이야기만 전문적으로 올리는 인터넷 카페 등도 넘쳐난다. ‘홈런’이란 원나이트를 말하고, ‘골뱅이’란 만취 여성을 말하던데, 제정신으로 서로 합의하에 갖는 원나이트야 법이 관여할 영역이 아니지만 만취 여성에 대한 ‘홈런’은 준강간이다. ‘후기’라는 이름으로 준강간죄 자백 및 범죄 수법 공유, 모의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증거 및 수사 단서를 열심히 남겨주니 고맙다고 해야 할지?


그중에서도 가장 놀랍게 느껴진 점은 이들이 열심히 ‘후기’를 올리며 ‘매력적인 수컷으로서의 우월감’을 한껏 과시하고 있고, 다른 남성들은 이들의 행운과 성취를 부러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준강간 피해자들은 겉으로는 잠꼬대 같은 말을 하기도 하고 몸을 조금씩 움직이기도 하지만, 이미 상황 및 상대를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다. 준강간범이 매력적인 수컷이어서 성관계에 응한 것이 아니다. 영화 <킬 빌> 초반부를 보면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는 주인공을 쓰레기 같은 남자 간호사가 수시로 강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짓이다. 의식불명 상태인 사람을 상대로 성행위를 한다는 것은 시신을 상대로 성행위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제정신인 상태의 상대는 유혹할 수 없어서 시신을 상대로 성욕을 충족시키는 수컷이 그걸 자랑하고 있는 거다. 끔찍하지 않나? 


너무 심하게, 자극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라도 얘기해서 자신의 행동이 무슨 짓인지 정확히 깨달을 이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법정에서 보면 너무나도 모르더라. 뒤늦게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죗값을 치른 후에도 여생을 강간 전과자로 살아야 합니다. 음주운전 한 번도 ‘호적에 빨간 줄 가는 거 아냐?’라며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왜 강간범이 되는 건 무서워하지 않는지…… 


‘나이트에 와서 부킹하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여자들도 섹스 파트너를 찾고 있는 것 아니냐’라고 항변하는 경우가 있더라. 내가 쓴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에서 박차오름 판사의 입을 빌려 얘기한 바 있지만 다시 한번 못박아둔다. 첫번째, 그런 경우라고 해서 섹스 파트너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니고, 두번째, 섹스 파트너를 찾고 있다 해도 그게 꼭 너는 아니며, 세번째, 그게 너라 하더라도 상대가 만취해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가 되어버리면 유감이지만 오늘밤은 여기까지인 것이다. 상대방의 만취는 그린 라이트가 아니라 레드 라이트. 정지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