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실질적 평등과 약자 혐오

평등에는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이 있다. 학교에서도 배웠을 것이다. 형식적 평등은 개개인이 처한 구체적 상황(경제적 상황, 사회적 지위, 교육 등)에 관계없이 법적으로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것이다. 실질적 평등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적·경제적 차이를 인정하고, 이에 따라 국민이 실질적으로 균등한 조건을 갖출 수 있도록 사회적 격차를 조정하고 완화하는 적극적 조치를 요구한다.

 

실질적 평등의 개념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지지는커녕 강력한 반감이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역차별이다, 감성팔이다, 떼법을 정당화한다, 공산주의식 발상이다…… 법학의 영역에서는 상식에 속하는 개념이 우리 사회에서는 왜 이렇게 광범위한 공격을 받는 것일까.

 

공산주의식 발상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말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평등이란 기회의 균등일 뿐인데 실질적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결과의 평등까지를 보장하려고 한다. 이는 더 능력 있고 더 노력하는 사람들의 성과를 빼앗아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 똑같이 나누어주려는 공산주의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다.

 

이런 주장을 접할 때마다 쓴웃음을 짓게 된다. 왜냐면 실질적 평등이란 오히려 공산주의 혁명으로부터 자본주의 체제를 방어하기 위하여 헌법 체계에 들어오게 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평등이란 기회의 균등만을 말한다는 생각은 19세기 유럽의 초기 자본주의 시대를 지배하던 생각이었다.

 

당시시민적 법치국가의 유일한 관심사는 국가로부터 시민사회의 자유 영역을 확보하는 것뿐이었다. 국가는 일종의 필요악으로 받아들여졌다. 국가는 국방과 외교 등 최소한의 역할만 하면 족하고, 시민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 더 능력 있고 더 노력하는 이는 더 큰 보상을 받고 그렇지 못한 이는 덜 보상을 받게 되어 사회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분배가 이루어진다는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자유방임주의자들이 꿈꾸었던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예정조화적인 사회의 자동조절은 현실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빈부격차가 극도로 심화되어 사회가 불안해지고 독과점의 발생으로 수요 공급을 통한 시장 기능이 마비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하에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사회주의 사상이 퍼져나가고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기에 이르자, 유럽 국가들은 혁명에 의한 체제의 파괴를 막기 위해 사회적 정의의 이념을 헌법 안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선거권을 확대하고 노동3권을 보장하며 복지 정책을 확대하는 등 일련의 변화들을 통해사회국가 원리가 현대 민주주의 국가 헌법의 기본 원리 중 하나로 자리잡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사회국가 원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사회국가란 한마디로, 사회정의의 이념을 헌법에 수용한 국가, 사회 현상에 대하여 방관적인 국가가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정의로운 사회질서의 형성을 위하여 사회 현상에 관여하고 간섭하고 분배하고 조정하는 국가이며, 궁극적으로는 국민 각자가 실제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그 실질적 조건을 마련해줄 의무가 있는 국가이다.* 


* 헌재 2002. 12. 18. 2002헌마52 결정.

 

실질적 평등은 민주주의 원리, 법치국가 원리와 함께 우리나라 헌법의 근본 원리를 이루고 있는 사회국가 원리의 중요한 내용에 해당한다. 여기에 대해서 공산주의적 발상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레드 콤플렉스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실질적 평등은결과의 평등을 추구하기 때문에 공산주의식 발상이라는 주장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결과를 기계적으로 똑같이 배분하는 것과 자유경쟁으로 발생한 결과의 극심한 격차를일부 보정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유경쟁에 대한 일부 개입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경쟁의 결과가 기계적으로 똑같이 되도록 강제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미국 대학 입시에서 흑인 학생에게 가산점을 주는 등의 적극적 차별시정 조치Affirmative Action를 시행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렇다고 현재 미국 주요 대학의 인종 비율이 역전된 것도 아니고, 인종별 인구 비례에 기계적으로 일치하게 된 것도 아니다. 사회복지 혜택을 받아서 부자가 되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그저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줄 뿐이다. 심지어 공산주의 국가에서도결과의 평등은 실현된 적이 없다.

 

결국 실질적 평등이똑같은 결과를 강제한다고 반발하는 이들은똑같은때문에 반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과장법일 것이다. 이들의 내심은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체에 대해 불공정하다고 반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설명했듯이 사회국가 원리와 실질적 평등은 자유방임으로 인한 극심한 빈부격차를 시정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과도한지 여부는 논쟁하고 검증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조치 일체를 부정하는 것은 자유방임주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얘기다. 사회국가 원리에 반하는 반헌법적인 주장이다.

 

공산주의식 발상이라는 반발이 주로 고연령층에서 나온다면, 젊은층에서 나오는 반발은 보다 문화적인 영역에서 발견되곤 한다. 정치적 공정성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피로증을 호소하는 반응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언더도그마underdogma’에 대한 반발감이다.

 

‘언더도그마’라는 용어 자체가 반발감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신조어다. 미국의 극우 세력인 티파티 논객 마이클 프렐Michael Prell 2012년 저서 『언더도그마』에서 처음 사용한 이 말은 약자를 의미하는 언더독underdog과 독단적 신념을 뜻하는 도그마dogma의 합성어다. ‘약자는 무조건 선하고 강자는 무조건 악하다고 인식하는 사회적 현상 또는 오류를 뜻한다고 한다.

 

주로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에서 부자나 강자가 주로 악역으로 등장하고 서민, 약자는 선량한 피해자로 등장하는 것에 대해 비현실적인언더도그마라며 반발한다. 이런 입장의 사람들은 범죄 통계 등을 근거로 들며 실제 범죄자의 대부분은 빈곤 계층인데 재벌이나 권력자를 주로 악역으로 그리는 것은 현실과 다르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이러한 반발 정서의 확산은 단순히 문화 콘텐츠에 대한 불만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일반에 대한 반감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중요한 현상이다.

 

실제 범죄자의 다수가 빈곤 계층에 속하는 것은 맞다. 그것은 우선, 빈곤 계층의 숫자가 부유층의 숫자보다 많기 때문이다. 범죄자 역시 더 많은 인구 집단에서 배출될 수밖에. 물론 그러한 점을 감안하여 인구 비례로 따져보아도 빈곤 계층의 범죄율이 높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창작자들은 부자나 강자를 자꾸 악역으로 등장시키는 걸까?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강자와 약자는 범죄의 규모조차 격차가 크다. 지하철 소매치기와 수천억대 횡령, 배임 범죄를 생각해보라. 술 먹고 싸우다가 사람을 칼로 찌르는 것만 살인이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수십 명의 영유아가 목숨을 잃는 것은 더 끔찍한 살인이다. 강한 힘에는 강한 책임이 따른다는 말처럼, 강자의 범죄는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더 크기에 더욱 경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재벌이 사이코패스 살인마나 강간범으로 등장하는 것은 실제로 재벌 중에 그런 특수한 강력범죄자의 비율이 높아서가 아니다. 재벌들이 자칫 사회에 심각한 해악을 미칠 수도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한 은유로 보아야 한다. 상업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적나라한 범죄를 사실적으로 그리더라도 사람들은 불편하고 어두운 그림보다는 명품 수트를 입고 스포츠카를 모는 악역을 선호한다.

 

이른바언더도그마에 대한 반발은 쉽게 약자 혐오로 이어지곤 한다. ‘알바 경험이 강력한 근거로 등장하곤 한다. 커피숍 알바를 하던 배달 알바를 하던 부자 동네 사람들은 젠틀하고 매너가 좋은데 가난한 동네에는 진상도 많고 막말하는 사람도 많더라. 이런 경험담 밑에는 맞아, 맞아 하는 댓글이 주르륵 달리곤 한다.

 

이런 이야기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어느 봄 주말, 연이틀 결혼식에 간 일이 있다. 첫날은 최고급 호텔에서 열린 결혼식이었다. 하객들은 널찍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우아한 덕담을 나누었다. 다음날은 서울 외곽의 한 도시 변두리 예식장에서 열린 결혼식이었다. 좁은 로비에서부터 꽉 들어찬 사람들로 정신이 없는데, 엘리베이터 두 대 중 한 대는 고장이었다. 같은 시간대에 열리는 예식이 네 건이었고, 시간에 늦은 하객들은 엘리베이터에 타려고 서로 밀치다가 포기하고 6층까지 계단으로 걸어올라가기 시작했다. 에어컨도 고장인지 모처럼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아주머니들은 연신 땀을 훔쳤다. 만원 전철 같은 상황이라 어깨만 부딪혀도 험한 소리가 오가곤 했다. 나는 상상했다. 전날 만났던 그 우아한 하객분들이 지금 이 상황에서도 우아할 수 있을까에 대해. 영화 <기생충>에서 가정부(장혜진)가 성격도 좋은 부자(조여정)를 보고 와서는 하는 대사가 있다. “돈이 다리미라구. 돈이 주름살을 쫘악 펴줘.”

 

마치 대단한 인간사회의 진실을 폭로하는 양빈곤 계층에 범죄자도 진상도 막말하는 사람도 많은 것이팩트아니냐며 의기양양하게 주장하는 이들을 보면 되묻고 싶어진다. 만약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고. 겉으로 드러난 일부 현상만을 보고 쉽게 약자 혐오에 빠지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지 않아도 갈수록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빈부격차가 고착화되는 사회에서 문화적으로까지 낙인을 찍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먼저 왜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는지를 묻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타인을 비난하려면 먼저 동일한 조건을 부여해야 한다.

 

헌법에 있는 평등에 관한 조항이 무엇인지 물으면 거의 대부분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대답한다. 정말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법 앞에평등하기만 하면?

 

우리는 거기에 머물지 말고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에서 평등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국민이다. 모두가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그 사회는 평등하다고 부를 수 있다. 모두에게 똑같은 분배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법 앞의 평등만으로는 부족하다. ‘법에 의한 평등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 제34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②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③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④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

⑤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⑥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