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법

결국 이것은 헌법에 관한 이야기다.  

다음은 이번 연재의 제목으로 생각해봤던 후보들의 긴 리스트다.


나를 지키는 법

이 험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법

법블레스유

법은 도대체 왜?

우리가 바라는 공정한 지옥

공정하기라도 했으면

공정함이란 무엇일까

각자도생 사회에서 살아남기

생존을 위한 공존


…심지어 ‘알쓸신법’도 생각해봤고,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교도소 구내 음악으로 늘 나오던 노래에 영감을 받은 ‘법은 어렵지 않아요’도 있었으며, 이왕 이리 된 거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맘으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법을 공부할 용기를 낼 권리의 온도’도 잠시 생각해보았다.


이 제목 후보들에서 거꾸로 읽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먼저 법은 어렵게 느껴진다. 관공서에서 <○는 어렵지 않아요> 같은 노래를 틀어준다는 것은 그것이 어렵다는 증거다. 서점에 갔을 때 제목에 ‘법’자가 들어 있는데도 선뜻 손길이 가는 책이란 ‘3일 만에 부자 되는 법’ 정도일 것이다. 


또, 법은 내 인생에 크게 도움 될 것 같지가 않다. 요즘 시대에 누가 내 인생, 내 이익과 직접 상관없는 책에 관심을 기울일까? 그래서인지 서점에 나가보면 ‘나’에 집중된 책 제목들이 눈에 많이 띈다. ‘나는 ○○하기로 했다’ ‘나를 위한 ○○’ ‘○○할 권리’ ‘○○할 용기’ 등등. 


법에 대한 이런 인식을 피할 수 있는 제목을 궁리해보아도 신통치가 않았다. 스스로 겁을 집어먹고 미리 변명하는 것만 같다. 해치지 않아요~ 도망가지 말아요~


그나마 법과 관련한 주제 중에서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건 ‘공정함’밖에 없지 않을까? 공정하기만 하다면 독약이라도 기꺼이 들이킬 듯한 분위기가 이 사회에 형성되어 있는 듯하다. 영화 <어벤져스>의 최종 빌런 타노스에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가 이것이다. 타노스는 허구의 세계에 등장한 그 수많은 빌런들의 계보에서 가장 스케일 큰 범죄를 저지른 자다. 핑거스냅 한 방으로 무려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소멸시켰다. 다만 그는 공정했다. 재산, 성별, 인종, 장애 유무, 성적 취향 등에 상관없이 랜덤하게 절반에게 사형을 집행했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저성장시대, 그것도 미래에 크게 기조가 바뀔 것 같지 않은 구조적 저성장시대에는 함께 나눌 파이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가 없다. 그저 지금 가진 자그마한 조각이라도 누가 빼앗아가지 않게 발톱을 세우고 으르렁거릴 수밖에 없다. 입시, 취업, 결혼, 육아…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누군가 내 앞으로 새치기를 하지 않나 신경을 곤두세운 상태다.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 중에서 ‘평등’에만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텐데, 문제는 평등 중에서도 ‘형식적 평등’ ‘기계적 평등’만을 기준으로 공정함을 따지는 분위기가 사회 일각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소수자를 위한 적극적 차별 시정 조치에 반대하는 움직임 등이 그렇다. ‘공정함’의 의미를 탐구하려면 헌법의 가치 체계를 전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실질적 평등’ ‘생존권적 기본권’ 그리고 평등을 포함한 모든 가치들의 존재 이유인 ‘인간의 존엄성’을 함께 생각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공정함인지, 또 무엇을 위한 공정함인지 놓칠 수 있다. 


결국 헌법이 추구하는 근본 가치들인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 사회적 기본권(생존권적 기본권), 그리고 이를 구체화하는 개별적인 권리들을 우리 삶과 연결시켜 차근차근 이야기하기로 결심하고 ‘최소한의 선의’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래, 눈길을 끌려고 캐러멜 맛이나 마라 맛으로 포장하기보다 이게 옳지, 하면서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법을 공부할 용기를 낼 권리의 온도’에 대한 미련을 살짝궁 가져보는 것이 또 인간…


왜 헌법인가?

이 분열된 사회에서 그것만이 그나마 최소한의 공유된 약속이기 때문이다. 보수, 진보, 여혐, 남혐, 극우, 좌빨, 적폐청산, 홍위병, 하나님의 뜻, 성경 말씀… 각자의 프레임으로만 주장하면 같은 자리를 맴돌 때가 많다. 화투 한 판을 치더라도 룰 미팅을 먼저 확실하게 해야 하는 법이다. 전국구 타짜인 경상도 짝귀와 전라도 아귀가 손모가지 걸고 배틀을 붙는데 각자 자기 동네 룰로 승부를 내자고 우긴다고 치자. 구경꾼들은 결론 없는 말싸움에 지쳐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정의, 역사, 진실, 섭리… 크고 아름다운 말일수록 백만 가지 다른 뜻으로 쓰이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가치관은 다양하고 쉽게 변하지 않는다. 뇌과학자들은 심지어 보수 성향과 진보 성향은 뇌 구조 자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연구 결과까지 내놓고 있다. 미국, 유럽, 어디든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의 의견은 분열되어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5 대 5, 또는 1 대 4 대 4 대 1 정도로(의견이 통일된 국가는 대체로 침략이나 학살에나 장점을 보인다). 애초에 다른 존재들끼리 한 집에 살기 위해 최소한의 타협을 하고 살아가는 것이 사회다. 그래서 서로의 존재 자체를 싸움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약속 위반을 따지는 게 낫다. 그 모두의 약속이 헌법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나라가 미국이다. 우리보다 훨씬 복잡하고도 심각하게 분열된 사회인 미국에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때 논쟁의 기준이 되는 것은 항상 연방헌법이다. 영화나 미드에서 ‘수정헌법 제1조’를 외치는 대사를 참 많이 보지 않나? 법정에 선 변호사 역의 톰 행크스만 외치는 것이 아니다. 걸인 차림으로 길바닥에 선 모건 프리먼도 외치고, 싸구려 포르노 잡지 발행인 역을 맡은 우디 해럴슨도 외친다. 그만큼 이 조항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정헌법 제1조(표현의 자유)는 미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해마다 끔찍한 총격사건이 이어지는데도 총기 소유를 금지하지 못하는 이유도 수정헌법 제2조가 무기 휴대의 권리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미국 연수 시절, 지금은 정치인이 된 엘리자베스 워런 교수의 파산법 강의를 듣다가 깊은 인상을 받았던 순간이 있다. 파산면책제도 정당성의 근거로서 수정헌법 제13조를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수정헌법 제13조는 노예제 폐지에 관한 조항이다. 인간을 평생 감당할 수 없는 빚의 굴레 속에 살게 하는 것은 헌법이 금지한 노예로 만드는 일이라는 논리다. 언제 폭동과 내전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심각한 분열 상태인 미국에서 헌법만이 모두가 인정하는 고스톱 룰이다. 전쟁중에도 지키는 제네바협약인 셈이다.


헌법은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약속일 뿐 아니라, 오래된 약속이라는 점이 특별하다. 오래 된 이유는? 고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법률은 보다 쉽게 제정하고 개정할 수 있다.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된다. 선거에 의해 다수당이 변화하면, 또는 정당끼리 특정 사안에 대해 정책 연대를 하는 데 성공하면 법은 바뀐다. 며칠 네티즌 여론이 들끓으면 발 빠른 의원 누군가가 급히 개정안을 발의하고 페이스북에 자랑글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헌법은 쉽게 바꾸기 어렵다. 국회의원 과반수의 발의 또는 대통령의 발의가 있어야 개정안이 제안되고, 단순 과반수가 아닌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개정안이 의결되며, 이를 다시 국민투표에 부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헌법 개정이 확정된다. 이렇게 헌법 개정절차가 법률보다 어렵게 되어 있는 헌법을 경성헌법 rigid constitution, 硬性憲法이라고 한다. 


왜 이렇게 까다롭게 해놓았을까? 사람들이란 변덕스럽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결심할 때를 생각해보면 쉽다. 다이어트 시작하는데 나중에 맘 바뀌어 아이스크림 퍼 먹을지 모르니 그거 뜯어말릴 꼴통같이 고집 센 인공지능 냉장고가 필요한 것이다. “주인님! 전에 ‘내가 아무리 말려도 밤 10시 이후에는 냉장고 못 열게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꼭 열어야 하신다면 사모님과 합의하셔서 지시사항을 개정하십쇼!”(…헌법 개정보다 어려울 거다.)


이렇게 까다로워야 소수자가 보호받는다. 애들끼리 놀 때도 목소리 큰 애가 변덕스럽게 자꾸 규칙을 바꾸기 마련이다. 다수자의 편의를 내세워 소수자의 생존을 짓밟는 법을 입법할 때, 가장 강력한 반대 논리는 그건 헌법에 위반되니 정 바꾸고 싶으면 헌법부터 바꾸라는 주장이다.


심지어 저 까다로운 헌법 개정절차를 다 밟는 데 성공해도 바꿀 수 없는 ‘헌법 개정의 한계’도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정 당시의 국민적 합의사항, 즉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개정은 불가능하다. 조선왕조 코스튬의 팬이어서 군주국 부활을 꿈꾸는 덕후라면 아무리 많은 동호인들을 모아봤자 헌법 개정으로는 불가능하니 혁명을 꿈꾸어야 할 것이다.


왜 헌법인가?

내 권리를 보장한 계약서이기 때문이다. 재판에서 이기는 당사자는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거나 다짜고짜 우는 사람이 아니다. 빼도 박도 못할 계약서 조항을 들이미는 사람이 제일 강하다. 권리를 가진 자는 그걸 당당하게 주장하면 된다. 은혜를 베풀 것을 호소할 필요도 없고 힘으로 윽박지를 필요도 없다.


그동안 사람들이 헌법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다. 법이란 그게 뭐든 학생들이 따라야 하는 교칙처럼 저 위의 누군가가 자신을 규율하는 갑갑한 구속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번 검색창에 ‘헌법’을 친 후 읽어보시라. 앞부분에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한참 나열한 후에 혹시라도 빠뜨렸을까봐 “이 밖에도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고 마무리한다. 뒷부분에는 국민이 시키는 일을 맡아 할 이들을 어떻게 고용하고 이들과의 계약기간은 몇 년이며, 이들이 지켜야 할 의무는 무엇무엇이고 엉터리일 때는 어떻게 해고하고 등등이 시시콜콜 적혀 있다. 집주인과의 임대차계약서, 업주와의 ‘알바’계약서, 대기업과의 납품계약서를 써본 분들은 바로 아실 것이다. 헌법이라는 계약서의 갑甲은, 국민이다.


몇 년 전, 제헌절 날 신문 칼럼으로 쓴 글이 하나 있다. 제목은 ‘가장 가슴 뛰는 글’이다. 헌법이 우리 사회에 살아 있게 하려면, 먼저 읽자. 나의 권리를.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피로 쓰인 글이 있다.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숱한 희생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글이 있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역사의 무게가 실려 있는 글이 있다. 그것도 우리의 역사뿐 아니라 인류 전체 역사의 무게가 말이다.

불신과 증오만 남은 듯 보이는 이 분열된 사회에도 고향이 어디든, 나이가 많든 적든, 재산이 많든 적든,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이 함께 서명했던 약속이 있다. 이 약속만 잘 지켜나가면 무슨 먼 나라의 거창한 이념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일 년에 단 하루만이라도 모두가 자녀와 함께 소리 내어 읽어보았으면 하는 가슴 뛰는 글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근로자는 근로 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 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대한민국 헌법 1~2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