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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미래는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_『아르미안의 네 딸들』에서



1997년 2월. 신임법관 임명장을 받았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신임 공무원으로서의 사명감 대신 사회에 소속되지 않은 채 떠돌며 사는 삶에 대한 동경에 불타고 있었다. 그 무렵 읽은 하루키의 『먼 북소리』가 태생적인 개인주의 성향에 불을 붙인 것이다. 그때까지 한 번도 대한민국 밖으로 나가보지 못했던 주제에 말이다.


2020년 2월, 23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무리하는 명예퇴임식장에 앉아 나는 『여행 말고 한달 살기』 책 구매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비싼 서울 물가를 감안하면 여기서의 생활비로 충분히 살 수 있는 멋진 도시들이 아직 세상에 많다는 것에 가슴이 뛰었다. 어느 로펌으로 가느냐는 질문에 ‘집으로’ 간다고 답했고, 어떻게 살 거냐는 질문에 여행하고 글쓰며 살겠다고 답했다. 사람들은 황당해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대구에서 신천지발 확진자가 발생했고, 세계는 극도로 위험해졌다. 나는 에어비앤비 예약을 취소하고 방구석에서 하루종일 유튜브로 믿어지지 않는 세상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뭐랄까, 세상이 굶주린 내게 손바닥을 내밀며 ‘기다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 같았다. 더 위험해지고 서로에게 더 굳세게 문을 닫은 세계에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떠돌이 삶’이란 자유가 아니라 공포일 뿐이었다. 


당연하게 누렸던 일상을 그리워할수록, 그걸 지탱해왔던 기둥들의 무게가 새삼 느껴졌다. 우리는 약속, 규칙, 양보, 거래, 상호이해, 자제, 존중의 힘으로 배낭을 메고 낯선 도시로 떠날 수 있었고, 한밤중에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사먹을 수 있었다.


그 힘이 제도화된 것이 법이다. 법이란 사람들 사이에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선의’이기도 하다. 그것은 결국 한 시대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생각이다. 법은 오래전 사람들이 공유했던 생각을 토대로 만들어졌고, 지금 우리들이 공유하는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서로 공유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 생각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연재를 마칠 즈음에는 세상이 더 안전해졌기를.


20206

문유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