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회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태풍이 온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밤새 사나운 바람이 불었다. 현관문이 철컹거리는 소리가 꼭 노크 소리 같아 몇 번이나 잠에서 깼는지 모른다. 두려움이 커튼처럼 부풀어오르는 소리. 빗방울이 흩어지며 난간을 치는 소리. 국기 게양대 아래서 바람 불던 날 듣던 성가신 깡― 깡― 하고 끝없이 울리던 소리가 생각난다. 나는 나와 아이의 안위를 걱정하며 얕은잠 속에서 비를 뚫고 달린다.


나는 또 나의 게으름과 성실함을 마음속으로 저울질하며 누워서 쓴다. 오늘은 방학이라 학교에 가지 않았다. 책을 읽고 시집 원고를 다시 정리하고 누워서 산문을 쓰고 있다. 그러나 다음 주에 개학이라 실제로 수업을 하지 않은 날은 하루뿐이다. 등교 정지에도 고3은 예외다. 사백 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와도 별수없다. 이전에는 삼사십 명으로 개학이 연기되고 온라인 수업을 했는데, 교육부는 대수능의 일정이 조금이라도 틀어져 자신들의 직무가 늘어나는 것이 끔찍하게 싫은 게 분명하다. 


다시 앉았다. 어떻게 하면 일의 능률이 높아질까 늘 고민하는데 아무래도 시간 대비 가장 많은 결과물을 내는 것은, 몸은 힘들지라도 책상에 앉아서 쓰는 일인 것 같다. 예전에 수업시간에 핸드폰으로 시 써오기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책상에 앉아 쓰는 대신 어떻게 노트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누워서, 버스에서 지하철에서도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 끝에 해본 실험이었다) 한 학생이 말했다. “전 원래 핸드폰으로 쓰는데요?” 나는 핸드폰과 스마트폰과 너무 늦게 만나 그랬지 이미 그러한 방식이 더 익숙하고 수월한(연습이 필요치 않은) 시대인 것이다. 내가 육십이 되어 젊은 시인들을 보면 다들 그렇게 원고를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 혜민 스님이 되어 미래를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매체에 적응하며 자기를 표현하기.


우리집에서는 우렁이를(다슬기일지도) 수십 마리 키우고 있다(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아이와 함께 도림천에(그곳에는 거대한 잉어들이 살고 송사리도 살고 오리도 살고 왜가리도 살고 아무튼 많은 것들이 산다) 가서 이 년 전에 두 마리를 잡아온 것으로 시작되어 이제는 큰 수조에 우렁이를 키우고 있다. 나는 한가할 때는 수조 옆에 누워 한없이 우렁이를 보고 있는다. 방금은 수조를 청소해주고 새 물을 넣어준 뒤에 먹이를 주었다. 작은 입이 오물거리며 먹이를 아주 천천히 먹고, 아주 느리게 기어다니는 것을, 왜 한없이 보게 될까? 왜 질리지도 않는 걸까? 이런 기쁨은 어떤 이름을 붙여야할까? 느림보기쁨? 가만히보기기쁨? 마음의안정우렁이요법? 확실히 이 장면을 보며 멍하니 있는 건 내 정신건강에 좋다. 수조 속에 있는 우렁이들이 안쓰럽다가도 부럽기도 대견하기도 하다. 너무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데 우렁이를 대상화하는 것 같아서 쓰려다 만다. 그런데 대상화 없는 글쓰기가 가능한가? 그렇다보니 이젠 오직 스스로를 대상화하는 방법밖에는 남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안녕? 내 친구 은선이랑 인사해. 은선이는 오늘 밥을 먹고 책을 읽고 누워 있고 원고를 정리하고 글을 쓰고 지냈대. 참 재미없는 친구야. 그 친구는 대상화될 매력이 없지. 


얼마 전 통장을 보니 전세 자금 대출을 받으며 의무적으로 만들었던 적금 통장에 백만원이 들어 있었다. 벌써 이 집에 산지 십 개월이 된 것이다. 이십사 개월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셋값이 오르지는 않았는지 부동산 앱에 들어가 실거래가를 찾아본다. 아무래도 나는 약간 사기당해 들어온 것 같다. 내가 전세를 얻을 때보다 다행히 실거래가가 낮다. 그런데 전세가 귀하긴 한가보다. 매물이 하나도 없다. 단 하나도. 그러다보면 부르는 게 값이 될 것이다. 불안하다. 요즘 집값이 너무 올랐다. 아이는 지난주 주말에 아빠 집에 다녀왔는데 다녀와서 자꾸 “집에 오니까 너무 좋다!” 하고 외쳤다. 기분이 좋기도 하고 아무리 아빠 집이라도 자기가 사는 집이 최고겠거니 싶어 “집이 제일 편하지?” 하고 되물으니 아니란다. 아빠 집이 조금 더 편하단다. 나는 의기소침해서 “왜?” 물었다. 아이는 눈치가 빠르다. 말하기 싫다고 한다. 그러더니 조금 후에 “아빠 집은 화장실도 두 개 변기도 두 개 이선이 게임방도 있고 넓어!” 하고 말한다. 속이 상해 전남편의 집을 네이버 부동산에 검색해보았다(한 번도 가본 적 없음). 그런데 예전에 검색해봤을 때보다 집값이 엄청 올라 있다(걔는 매매 하고 나는 전세 함). 속이 쓰리다. 그러다가 뭐, 그래도 가난한 아빠보단 부자 아빠가 낫지, 하고 위안으로 삼는다. 결혼생활 중에 간밤에 미드를 보다가 부부 상담을 받는 장면을 보면서 “너는 내가 영원히 네 옆에 있을 거 같지?” 하고 물은 적 있다. 그는 언젠가 헤어지게 되더라도 최선을 다해주겠다고, 잘살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다고. 그렇게 말했던 전남편의 말이 생각난다. 사억육천에(정확하게 기억 안 남, 내 돈이 될 게 아니라서) 집을 팔고 아이를 데리고 나가 살 내게 재산분할로 오천만원을 준 전남편을. 2008년부터 뒷바라지하고 자취방 가서 집안일해주고 냉장고를 채워주고 전기세를 내주고 밀린 카드값을 카페 알바한 돈을 모아 빌려준 나를. “내가 당신을 알고 지내고 보살펴준 세월이 얼만데?” 따져 묻는 내게 “재산분할은 결혼생활만 반영되는 거지”라고 싸늘하게 말하던. 오천만원을 주고 아이와 함께 내보낸 전남편. 십 년 동안 가장 친한 친구였던. 태어나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내게 어떻게 했는지. 이젠 잊어버려야겠지요? 지금도 우리는 꽤나 친한 친구처럼 지낸다. 서로 아이를 위해 그게 편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은 지독히도 미운 것이다. 


지난주 토요일엔 집에 친구가 놀러왔다. 이선이가 없어서 자고 가기로 했다. 나는 그에게 세븐일레븐에 가서 L와인을 화이트로 사오라고 부탁했는데(7900원이고 가격 대비 맛이 좋아요) T로 시작하는 레드 와인을 사왔다(이름 기억 안 남). 나는 화이트 와인을 차갑게 해서 마시는 걸 좋아하는데 그건 캐럴라인 냅의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을 읽고 생긴 버릇이다. 그 에세이를 읽고 술을 끊으려고 했는데 그걸 읽고 새로운 술 취향을 하나 얻게 된 셈이다. 근데 산문 개꿀잼이고 완전 좋으니 님들도 꼭 읽어보세요. 같이 화이트 와인의 세계로 떠나요. 아무튼 잘못 사온 와인을 갖고 계속 친구를 놀리며 나는 광어와 연어를 시켰다. 나는 이런 밤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좋았다. 타인과 함께 마시며 웃고 떠드는, 아이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은 온전히 혼자만의 밤. 한 달에 한 번 주어지는 시간. 우리는 와인을 마시다가 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마셨고 그것마저 거의 다 마셔갈 무렵 아직 우리의 밤은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신발을 꿰어 신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이것저것 파워에이드, 빼빼로, 육포, 소주, 사케 등등을 가득 사서 돌아오다가 우리는 계단에서 어떤 여자와 스쳤다(그땐 별로 눈여겨보지도 않았고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집은 에어컨이 없어서 우리는 현관문을 열고 방충망을 쳐놓고 선풍기를 틀어놓았다. 우리는 또 부어라 마셔라 신나게 놀며 여행 이야기를 많이 했다. 둘 다 장기 여행을 좋아하고 같은 나라들을 여행해보았기 때문에 여행 이야기를 하자면 하루가 부족했다. 그때 누가 방충망을 쾅쾅 두들겼다. 나는 아뿔싸 우리가 너무 시끄러웠구나 생각하며 현관문 쪽을 내다보았는데, 현관 밖 센서 등 때문에 역광에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무슨 일이세요?” 묻자 그 여자는 거두절미하고 우리를 향해 “제 전자담배 주워가지 않으셨어요?” 하고 말했다. 일단 무슨 수로 우리집을 찾아낸 건지 너무 이상했고, 우리는 전자담배의 ㅈ도 보지 못했는데 무슨 확신이 저렇게 대단한가 싶었다. 그 여자가 돌아간 뒤에 우리는 귀신인 줄 알았어! 진짜 무서웠어!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새벽 한시였다. 


종종 술에 취했다가 깨어나면 지난밤의 일이 모두 꿈같을 때가 있다. 그날이 그랬다. 나는 완전 까먹고 있었는데 착실히 아침에 일어난 친구가 말했다. “기억나? 어제 그 여자?” 나는 아, 그 여자 기억나지 하고 대답했는데 “그후에 우리 그 여자 찾아서 온 아파트를 돌아다닌 것도 기억나?” 하고 친구가 말하자 갑자기 주마등처럼 기억이 머릿속을 휙 지나갔다. 그 여자 가고 나서 내가 그 여자 아무래도 이상하다, 진짜 귀신인지 모른다. 그 여자가 어떻게 알고 우리집을 찾아왔겠냐 너무 이상하지 않냐 아무래도 우리가 그 여자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취해서 우기는 바람에 우리는 핸드폰 빛을 플래시 삼아 각층을 그 여자를 찾아 엄청 진지한 탐정처럼 “그 여잔 여기 없어” 이러면서 각층의 복도를 휘젓고 다녔다고 한다. 글로 써보니 참으로 평평한 얘기 같지만 그때 우린 세상 누구보다 진지했고 모험을 떠나는 사람들처럼 결의로 가득차 있었다. 내가 너무 <신비아파트>를 많이 본 것 같다. 우린 어제를 반추하며 침대를 대굴대굴 구르며 웃고 창피함에 이불을 발로 찼다. 다 큰 어른 둘이 뭐한 거지…… 현타를 맞는 동시에 다시 웃으며. 그 덕에 우리는 종일 웃어서 광대가 아팠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친구 말에 의하면 우리집에 찾아와서 자기 전자담배를 달라고 하려면 세 가지 확신이 있어야 한다.


1. 자기와 마주친 것이 우리라는 것

2. 우리가 자신의 전자담배를 가져간 것

3. 여기가 우리집이라는 것


내가 그 여자라면 아무런 확신도 없었을 텐데. 찾으셨나요? 혹시 님도 취해 있었나요? 다음날 같은 시각 아파트 어디선가 같이 이불을 발로 차고 있었기를 바랍니다(나만 그러는 건 억울하니까). 

자고 일어나서 바로 씻고 집에 갈 것 같던 친구는 다음날 저녁도 먹고 아홉시쯤 “아 집에 언제 가 ㅠㅠ”라는 말을 남기고 갔답니다. 착한 내 친구는 설거지도 다 해놓고 음식물 쓰레기통의 음식물도 다 치워놓고 재활용 쓰레기도 분리해놓고 갔어요. 저는 친구를 보며 뿌듯했답니다. 더 재밌는 얘기 많이 했는데, 입이 근질거리지만 사생활을 위해 여기까지만 할게요. 주로 여행 다니며 당한 캣콜링의 다양한 사례들에 관한 것이었다는 것만 밝혀둡니다.


그리고 「중심을 향해 다가가기 색의 방식으로 도피하기」라는 제 다음 시집의 마지막 시에 송도의 용이 지나가는 길 이야기도 이 친구가 해준 거예요(아직 거의 보신 분들 없을 것). 친구에게 시를 보여줬더니 너무 좋아했어요. 저는 요즘 시집 제목 뭘로 하지, 시집 색깔 뭘로 하지, 뭐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습니다. 첫 시집은 아이가 좋아하는 분홍색으로 했는데 이번에도 궁금해 물어봤어요. 의견을 구하니 아이가 아주 단호하게 칠리 레드로 하라고 강요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중이에요. 어차피 아이는 글씨를 못 읽으니까, 물성적인 사랑이라도 받고 싶어요. 그런데 『여기까지 인용하세요』 때문에 망설여져요. 선배 시인들의 두번째 시집을 보며 시름이 깊어지곤 해요. 다들 너무 멋지게 시집을 만들어서. 나는 이 시집에 지워버리고 싶은 시들이 많은데. 정말 꺼내놔도 될까, 발표할 때랑 묶을 때랑 마음이 또 달라져요. 발표할 때는 시집 묶을 때 안 넣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대부분 그런 생각으로 쓴 시들이라 엄정하게 시를 고르면 옛날 유럽 시집처럼 팸플릿 두께의 시집이 될 거예요. 근데 또 첫 시집 때 빼고 싶었던 시들을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해줘서 제 눈을 잘 못 믿겠고 그래요. 제가 믿고 따르는 저의 편집자님께 조언을 구해보려 해요. 단호하고 다정한 그분은 아주 차분하게(그러나 단호박) 의견을 줄 것 같아요. 빨리 다음 시집을 만나고 싶기도 하고 계속 유예하고 싶기도 해요. 그냥 해치워버리고 싶기도 하고요.  


이 산문 읽으시는 분들 중에 제 시집은 읽어보지 않으셨다는 분들이 꽤 있던데 보답은 시집 구매로 해주시길.


저는 시인이니까. 


어릴 때 왕따를 당했던 일을 자주 생각한다. 요즘도. 머리에 껌을 붙인 일. 머리카락을 억지로 잘림당한 일(그래서 긴 머리에 집착하는 것 같다). 미술 시간이 끝나고 물통을 씻고 돌아와보니 의자가 빨갛게 칠해져 있던 일(생리한다고 놀렸는데 생리가 놀림받을 일인가?). 학교에 가보니 책걸상이 없었던 일(화장실 제일 끝 칸에 처박혀 있었고 아무렇지 않은 척 도로 제자리에 가져다놓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얻어맞은 일(의외로 이건 크게 상처가 되지 않았다). 걸레라고 놀림받던 일(성 경험 전무했고요. 있으면 또 어때?). 정신병자 취급받던 일(제일 적확한 따돌림 이유였다). 벙어리라고 놀림받던 일(너네랑 말하기 싫어). 모든 일의 배후에는 ‘이상한 애’라는 수식이 항상 따라다녔는데. 이렇게 멋지게 자란 나 최고고, 왕따인 채로 초중고를 전부 다니고 졸업했다는 것에 상을 주고 싶다. 지금 같았으면 당장 때려치웠을 텐데. 그래서 예대 갔을 때 모든 게 신기했다. 아무도 나한테 이상하다고 하지 않아서. 친하게 지내줘서. 내 자리를 찾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문창과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시선도 많고(전 세계적으로 많다) 나도 때론 다른 전공을 했으면 먹고사는 일이 조금 더 수월했을 텐데, 하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거기 있어서 행복했고(좆같은 일도 많았지만) 그럼 됐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나의 대학 동기 혹은 선후배가 있다면 고마워. 잘 지내.


아이를 재우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마지막이니까 멋지게 굿바이를 날리며 퇴장하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아직 할말이 더 있는데 못한 것 같고 갑자기 너무 아쉽고 그렇다. 그렇지만 나는 진짜 궁핍해지지 않는 이상 절대 다시는 산문집을 내지 않을 것이라 다짐 또 다짐한다. 산문을 쓰는 건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는 느낌인 것 같다(내가 임금이란 소리는 아니고). 누군가는 근사하고 멋진 시인만의 산문 쓰는데 역시 그것은 내게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를 열심히 써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엉엉. 산문을 쓰는 동안 오래 시와 멀어졌다. 내 게으름 탓이지만 수업 때 말하고 여기다 말하고 나면 더이상 시를 쓸 언어가 내게 남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것이 내 첫 산문집이자 마지막 산문집이 된다는 것. 그것이 조금 애통하기도 하지만 돈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은 앞으로 시인으로 열심히 살고 싶다. 세상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을 만큼 쥐어짜며(사실 엄청 고로쇠나무 스타일인데 매주 마감하느라고 맨날 아무 말 대잔치했습니다) 쓰고 싶다. 아무도 내 산문에 관심을 두지 않을 때부터 계속 산문집 같이 하자고 몇 년 동안 권해준 나의 완소 편집자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이렇게 많은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감사를 전한다.


어제 송지현이 『동해 생활』이라는 산문집을 냈다. 거기엔 내 얘기도 있고 내 추천사도 있고 표4에 나와 아이도 그려져 있다. 이제 무슨 산문 보지?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송지현 소설가의 『동해 생활』을 보라. 


P.S.

독자 여러분께: 이걸 읽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읽느라 많이 즐거웠죠? 다 압니다. 저라는 인간 굉장히 별로지만 굉장히 짱인 것 같아요. 언젠가 이 책이 나오면 행사도 하게 될까요? 하게 되면 쥐구멍에 숨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누가 대체 내 산문을 읽었지?? 궁금해서 그 자리에 가게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코로나가 좀 물러가야 가능한 일이지만 제 뇌내 망상입니다. 저는 살면서 지금까지 누가 내 글을 읽고 있네? 라는 가장 큰 경험을 할 수 있는 즐겁고 비명 가득한 연재를 하였고 이제 끝나게 되어 너무 속이 시원합니다만, 저는 손만 뻗으면 늘 닿을 곳에 있으니까 아무때나 제게 멘션 주세요.(인스타는 몇 달에 한 번 들어갑니다. 참고로 알아주세요.) 이혼하고 힘들 때 여기가 제 좋은 피난처가 많이 되어 주었습니다. 가끔은 산에 올라가서 소리지르고 싶은데 산에 올라가는 게 귀찮았거든요. 그런 저의 감상적인 토로로 가득한 끔찍한 글도 묵묵히 읽어주셨지요? 마지막까지 악을 쓰다 갑니다. 제가 옛날에 블로그를 엄청 오래했는데 등단하면서 폐쇄했어요. 흑역사 될까봐. 근데 또 이렇게 흑역사를 내 손으로 갱신하고 나니 인생 뭐 별거 있나 싶고 그러네요. 가끔은 이렇게 긴 글을 산문으로 쏟아내던 때가 그립고 그럴 것 같아요. 그럼 블로그도 해보고 그럴게요. 모두 희망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 잊지 마시고. 코로나 조심하고 부디 무탈하고 평안하시길.

연재 마지막 회차입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