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회

투명 혹은 불투명 가깝고 먼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망가지는 걸 보는 건 슬픈 일이다. 벌어진 가슴으로 검은 눈송이가 울컥울컥 쏟아지는 풍경은 아름답고 귀가 멀어버릴 것 같은 음악. 꼬리를 문 뱀의 초상. 지워진 밤하늘이 흘리는 비명이겠지. 


나는 물에 대해 생각하며 물의 귀에 대해 생각하며 물의 차가운 배꼽을 발로 꾹 밟는다. 그냥 그 감촉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여기는 잠시 동안 옥상이었다가 사막이었다가 바다였다가 숲이다. 미끌거리는 밤의 소리들은 어쩐지 너무 가깝게만 들리고 나는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다. 내 귀가 말을 하는 것 같아. 누구라도 좋으니 인간을 만나고 싶다. 인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내가 정상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다. 터져버린 둑 아래서 휩쓸리는 것들. 뒤섞이고 흔들리는 비린 육체. 몸을 가진 건 정말 비극인 것 같다. 그치.


나는 뱀이 되어 사막을 기어다닌다. 혀를 날름대며 먹이를 찾아 온종일 뜨거운 모래를 가로지른다. 밤이 되면 이곳은 너무 춥고 나는 인간이었던 때를 떠올린다. 안락한 침대와 따듯한 공기 시간을 강박적으로 재던 나의 습관을 떠올린다. 나는 그때와 지금 중 무엇이 더 나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그저 존재하는 방식대로 존재하게 될 뿐이라고 체념하듯 고개를 파묻는다. 구덩이. 


모래와 모래

모래와 모래

더 깊은 


그래도 더이상 손을 가질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인 것 같아. 말을 들려줄 사람도 없지만 말을 할 수도 없어서 혼자 쉭쉭거리며 그저 생각할 뿐이다. 나는 이제 곧 알을 낳을 것이다. 수많은 새끼가 태어날 것이고 금세 흩어질 것이며 나는 조용히 늙어갈 것이다.


*

투명한 것만으로 세상이 만들어져 있다면 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해본 적이 있다. 나는 아마 자주 넘어지고 부딪히며 시달리겠지. 투명은 투명인데 인간들은 투명을 가릴 만한 무언가를 고안해내겠지. 드러내기 위해. 그렇다면 나는 펄럭이는 검은 천조각이 되어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디딜 것이고 아파도 상처를 볼 수가 없어서 난감하겠지. 어떤 아주 돈이 많은 사람이 몸을 불투명으로 바꾸는 시술을 받을지 모른다. 나는 집에 들어설 때마다 벽을 더듬으며, 거기 있니? 나 왔어. 큰 소리로 말할 것이다. 투명하고 고요해 보이는 세상이 실은 엄청나게 시끄러울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라는 표식을 달아줄 것이고 어른과 성별을 의무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표식이 있어 그것이 투명으로 인해 생겨난 다른 방식의 구속을 야기할지 모른다. 나는 밤마다 모두 벗어던지고 복도를 서성이며 답답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를 쓰겠지. 투명한 지금도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싶다며 안달을 하겠지. 내 두 손은 점점 예민해지다가 마침내 둔해지게 될 것이다. 


그래도 텅 빈 거리를 늘 볼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조금 좋은 일일 것 같다. 지금은 모든 것이 너무 많다.


외모 지상주의도 사라질 거야. 

많은 산업이 사라질 거야.

범죄도 그만큼 많이 늘어날 거야.


*

나는 이제 두 번의 연재를 남겨두고 있다. 이 글을 다 쓰면 한 번이 남는 셈이다. 나는 졸고이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연재를 쉬지 않고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는 것에 기쁨과 안도를 느낄 것 같다. 종종 주변에서 곧 끝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데, 너무 서운하고 쓸쓸하면서도 속이 시원할 것 같다고 나는 대답한다. 산문을 쓰면서 자주 느끼는 건 내가 가진 감정들이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것들이라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나는 평소에 나를 드러내고 싶어하면서도 드러내기 싫어하기 때문에 시를 쓰는 것이 체질에 잘 맞았는데 산문은 많은 분이 읽고 공감해주시긴 해서 좋긴 하지만 벌거벗은 노출증 환자가 되는 느낌이라 많이 힘들기도 했다. 아마 이 정도의 원고료가 책정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속을 다 까 보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 나는 아주 적극적으로 내 불행을 팔아치운 셈이고 그것은 영원히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으로 저렴한 불행인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같이 불안정한 코로나 시대에 집에서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 이만큼의 수익이 보장된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좋은 운이었기도 하다.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몇 달 동안 돈 걱정 없이 팔자 좋게 지내 참 다행이었다. 


앞으로는 뭘 해서 추가 소득을 만들면 좋을까? (아이디어 있으신 분 협업 제의 기다립니다.)


한동안 산문 쓰는 데에 공력을 모으고 싶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득한 마음에 SNS를 잘 하지 않았는데 연재가 끝나면 열심히 다시 하고 싶기도 하고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기도 하다. 나는 누군가 내게 기대하는 것을 열심히 수행하며 살고 싶지 않다. 뭐든지 제멋대로 하며 살고 싶다. 그런 내 모습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실망한다고 해도 더이상 어쩔 수 없다. 나는 너무나 다른 사람의 기대에 나를 맞추기 위해 나를 지우며 살았고 그런 일에 진력이 났으니까.


어렸을 때는 종일 아빠가 때릴까봐 무서우면서도 아빠가 잘해주면 너무 좋아서 눈치만 보고 살았던 것 같다. 아빠는 늘 내게 ‘너는 절간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먹을 아이’라고 칭찬을 했고 나는 그게 얼마나 기뻤던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후에는 전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늘 눈치보고 조바심치며 살지 않았나? 나는 그런 나를 잊고 끊어내고 지우고 싶은데 당신은 내가 변했다고 왜 자신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분통을 터뜨리곤 한다. 나는 이제 그렇게 살지 않기로 했으니까. 나도 내가 누구고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걸 생각하고 고민하며 나를 발견해나가며 자유롭게 살고 싶으니까. 내 마음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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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남들 다 본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보았다. 공유가 너무 착해서 짜증이 났다. 물론 공유도 빻았지만 정도의 차가 너무 크다. 부인 생각하고 챙기는 마음씨가 너무 크고 곱잖아? 진짜 현실 반영했으면 큰일났을 거다. 전남편이 공유만큼만 됐으면 이혼 안 했을 것 같다.


정유미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소름 돋았다. 극 중에서 그런 대사를 한다. “갇힌 것 같아요. 사방을 둘러봐도 벽이고, 애초에 출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영화 <Room>을 보며 왜 그렇게 가슴이 미어지고 내 얘기 같았는지. 천장에 난 한 칸짜리 창문을 올려다보는 브리 라슨의 눈빛을 왜 그토록 잊지 못했는지. 그녀는 납치, 감금되어 범죄자의 아이를 낳고 갇혀서 살고 있고 나는 그냥 애 낳고 집에 있는 것뿐인데 왜 여주와 내가 그렇게 겹쳐 보이던지. 아카데미에서 상을 아주 많이 받은 제 인생 영화 중 하나이니 안 보신 분들은 꼭 보세요. 대신 보고 나면 후유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브리 라슨은 ‘Room’에서 나와 ‘캡틴 마블’이 되지요. 참 좋아요.


저는 아직 <비밀의 숲> 시즌 2를 보지 않았어요. 온 정신을 집중하고 커다란 거실 티브이로 각 잡고 보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제게 기회가 오지를 않아요. 오늘 이 글을 빨리 마무리하게 된다면 다 쓰고 비숲을 보고 잠들고 싶어요. 어쩐지 지금 시계를 보니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조금 무리해도 좋을지 몰라요. 어쩌면 오늘밤은요. 


얼마 전에 누군가 제 얼토당토않은 꿈 이야기를 재미있다고 해주신 분이 있어 최근 꾼 연예인 꿈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꿈에서 손호준과 예대를 같이 다니는 CC였어요. 저는 문창과 손호준은 연기과 혹은 영화과였던 것 같고요. 손호준이 기차에서 촬영을 한다기에 몰래 승객인 척 기차에 따라 탔어요. 깜짝 놀래주고 싶기도 하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촬영을 하다 쉬는 시간이 되자 그는 몰래 와서 제게 뽀뽀를 해주었어요. 너무 두근거리고 설렜지요. 그후 저는 하루 종일 손호준에 대해 찾아보고 글 쓰는 틈틈이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의 공개된 모든 정보를 캐내고 나중엔 넷플릭스에 이름도 검색해보았지요. <우리, 사랑했을까>라는 작품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하나씩 차에서 소리로 보면서 행복한 등하굣길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제 꿈 내용하고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더 재미있더라고요. 단지 제가 송지효가 아닐 뿐(눈물). 왜 전혀 내 타입도 아니고 관심도 없었는데 꿈에서 뽀뽀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렇게 많은 관심이 생기는 걸까요? 약간 덕통사고 난 느낌이었지만 저는 학창시절 이후에 깊이 연예인을 깊이 좋아한 적이 없어서 이것도 한순간 지나가겠지만 아무튼 그런 꿈을 꾸고 두근거려서 기분이 좋았답니다. 손호준 배우님 이것을 읽을 일은 없겠지만 연기 잘 봤고 역할이 작가여서 더 눈여겨봤는데 글은 한 글자도 안 쓰시더라고요. 맨부커상도 받고 뉴욕 타임스 선정한 올해의 소설에도 들어가는 592만 권의 책을 판매한 할리우드 진출에 빛나는 얼굴 없는 소설가 캐릭터 너무 잘 봤고요. 너무 말도 안 되고 연기도 어설퍼서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행보 응원하겠습니다. 물론 대본을 배우가 쓴 게 아니니까 캐릭터가 말도 안 되는 건 배우님 탓이 아니겠지요. 근데 현실 웃음 터지고 그래요. 아무튼. 파이팅.


*

코로나가 재확산되고 있다. 13일부터 백 명 이상에서 많으면 삼백 명 가까이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검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퍼트리고 다니는 것까지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바이러스에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나는 아이를 키우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너무 두렵고 겁이 난다. 아이가 코로나에 걸려서 격리를 해야 된다거나(그럼 아이는 누가 어떻게 돌봐주지 어린데 얼마나 무서울까) 내가 코로나에 걸려 학교가 폐쇄되는 생각을 많이 한다. 곧 대학 입시를 치를 아이들이 나 때문에 학교에도 오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내가 격리되면 아이는 누가 돌봐주지. 집회를 연 일부 교회 사람들도 문제지만 그 집회를 허가해준 국가의 권력자 집단들도 문제다. K-방역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매주 코로나 얘기하는 것 같아서 눈치 보이긴 하지만 지금 내게 코로나는 먼 나라 먼 곳의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너무나 가까이 와 있는 공포이다. 얼마 전에는 전남편 회사 동료가 확진 판정을 받아 전남편이 음성 판정을 받고 이주 간 집에서 자가 격리를 하기도 하였다. 한동안은 파주 일산은 안전하다고 믿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아이들이 등교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 한편에는 온라인 수업과 육아를 병행해야 한다는 두려움도 있다. 나는 결국 엄마에게 의지하게 될 것이고, 지금도 자주 집에 와서 집안일을 해주고 도움을 주는 엄마에게 나는 또 큰 짐을 떠안게 하고 말 것이다. 그런 비빌 구석이라도 있다는 게 다행이긴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요즘 유난스럽게 마스크를 쓰고 손을 닦고 손 소독을 한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에. 


신기한 점은 아이가 어른인 나보다 마스크에 잘 적응한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황사 속에 키우며 마스크를 한 탓인지 이제 밖에 나갈 때 마스크를 하는 건 옷을 입는 것처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며 심지어 가끔 아이는 집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다. 답답하고 불편하지 않으냐 물으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그런데 오래 착용한 날에는 마스크에서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난다고 했다. 코로나 이후에는 양치 시간이 사라졌다고 한다. 


옷을 벗고 있으면 오히려 이상하고 불편한 것처럼 마스크를 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진 모습이 어쩐지 짠하다. 공기 좋고 바이러스 없는 곳에서 신나게 뛰어놀던 내 유년과 아이의 유년이 너무나 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코로나 이전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지금도 바이러스가 변형되어 더 강력한 바이러스가 나타나고 있으며 코로나 완치 판정을 받은 후에도 후유증을 앓는 사람이 많고, 나는 이 바이러스가 지나간다고 해도 결국 또다른 변형된 바이러스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사스 바이러스의 변형이듯 코로나의 변형 바이러스도 또 생겨나 더더욱 널리 퍼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떠나지 않는다. 인류가 너무했지. 그렇지.


동물에게 코로나가 전파된다는 것은 아직은 증명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행이다. 인간이 모두 사라진 지구에서 동물들은 잘 지낼 것이다. 나는 자꾸만 마거릿 애트우드의 『미친 아담』 삼부작이 생각난다. 이것이 물 없는 홍수가 아니라면 무엇이 물 없는 홍수겠는가?


*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실망으로 일그러지는 걸 보는 건 기쁜 일이다. 벌어진 눈으로 빨간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풍경은 어둡고 창백하며 불과 같은 음악. 허물 벗은 흔적의 투명. 가득찬 밤하늘이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기적에 가까운 손이다. 


나는 불에 대해 생각하며 불의 입에 대해 생각하며 불의 뜨거운 배꼽에 발을 밀어넣는다. 그냥 녹아내리고 싶기 때문이다. 여기는 잠시 동안 기둥이었다가 호수였다가 댄스홀이었다가 의자다. 거친 밤의 소리들은 어쩐지 너무 멀게만 들려 머리가 깨끗해지는 기분. 침묵이 찰랑이는 불 같아. 누구라도 좋으니 인간을 죽이고 싶다. 인간의 입을 틀어막고 싶다. 내가 비정상이라는 걸 말하고 싶다. 댐 아래로 쏟아지는 파란 불. 뒤섞이고 흔들리는 몸 없는 것들. 몸을 가진 건 정말 행운인 것 같다. 안 그래?


나는 네가 되어 아스팔트를 기어다닌다. 온종일 팔 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며 수없이 되죽는다. 아침이 되면 이곳은 너무 밝고 나는 인간이었던 때를 떠올릴 수 없다. 기울어져가는 벽들과 습한 공기 머리카락을 뽑던 습관을 떠올리지 않는다. 나는 그때와 지금 중 무엇이 더 나은 것인지 잘 알겠다고 그저 존재하는 방식대로 존재할 수는 없다고 고개를 파묻는다.  


더 깊은 

춤과 춤


더이상 손을 가질 수 없다는 건 기쁜 일인 것 같아. 말을 들려줄 사람도 없지만 말을 할 수도 없어. 나는 이제 곧 부활할 것이다. 금세 죽을 것이며 나는 자꾸만 다시 태어날 것이다.

다음주에 마지막회가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