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회

중력에 반대함

1

나의 일상 무엇으로 지키나: 매일 똑같은 루틴 반복하면 고통도 습관이 된다. 그런 습관이 하나하나 모여서 일상이 될 것이다. 


돈 어떻게 버나 소목표 대목표 무엇인가 

소목표: 매달 백만원 저금

대목표: 1억 만들기(십 년 안에 이룬다)


사는 거 왜 이렇게 좆같은가: 원래 인생이 그런 거야. 아마추어같이 왜 그래. 


언제 죽나? 장수하면 어쩌지: 아이를 생각하고 정신을 차리자. 어차피 인생 강제 로그인한 거 그냥 오늘만 생각하자. 내일은 내일로 미루며 살자. 안 그러면 알코올 중독 아니면 자살이다. 너는 별일 없으면 아마 장수할 거야. 가계를 봐. 요절 같은 건 꿈도 꾸지 마.


최근 제일 재미있었던 게 뭘까: 글쎄. 바다 수영. 


뭘 하면 덜 피곤해질까: 이건 아이 낳고 늘 궁금했는데 절대 답을 알 수 없어. 아마 아이가 커서 혼자 씻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잘 수 있게 되면 좀 나아지겠지. 



2

가슴을 뜯어 물수제비뜨던 남자

아프다고 소리지르니

자기에게 상처를 줬다고 

나를 가해자라고 손가락질을 하네


체리를 씻어오던 남자

그게 좋아 초대했더니

복숭아를 사왔네

왜 안 좋아하냐고 화를 내네


방광염인데 

한 번만 하자고 조르던 남자

항생제 먹고 

부서진 새가 아프다고 화난다고

전해달라네 


아 이 세상 장수해서 뭐하나

애는 키워 뭐하나

시는 써서 뭐하나

셋이 되면 뭐하나

로또 돼라 


다 필요 없어 

사랑 따위

내가 필요한 건 돈

돈이 찐이지


나는 유물론자

나는 자본주의의 고양이

나는 큰 집 큰 차 큰 것이 좋아


세상은 다 거짓말이고 미쳐 돌아가는 대관람차 같네 

화가 나도 화를 낼 곳이 없고

할말이 있어도 할 수가 없고

온몸이 눈물로 가득차도 출렁거리기만 하네


고개 끄덕거리지 마

짜증나니까


공감하지 마

알지도 못하면서

까불지 마


수업하고 집에 와서 침대에 누워 애 밥 먹는 거 보면서

이거 쓴다


원고 쓸 시간 없어

이거 쓰고 책도 두 권 읽고 수업 준비하고

인터뷰 답변도 써야 해


시는 언제 쓰지

시는 언제 쓰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재미없는 것도 역설적으로 바라보면

재미있다고 그랬는데


역설적으로 어떻게 보지? 그건 왜 안 가르쳐줘요 선생님


이제 오늘부터 돼지고기 절대 안 먹어

돼지고기만 먹으면 체하고 토한다


온몸이 저리고 책 읽다 자꾸 잠들어서

서서 책 읽어

언제 푹 좀 잘 수 있을까


지옥 같은 인생 열심히 살았는데

그래서 얻은 게 뭔가

사는 게 뭔가 아픔이 뭔가

아직 알 수 없는 건가

시간이 지난 뒤에 후회하지는 않는 건가

알 수 없는 거 아닌가


색즉시공 공즉시색인가

공수래공수거인가


내일 학교 가기 싫ㅇ ㅓ……

합평하기 시러……


나탈리 골드버그는

시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니라고 했지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고 했지

근데 어떤 미국 비평가는 

요즘 시는 맥포엠이래


그렇게 기계처럼 써서

입시 기계가 돼서

아이들이 시에서 무얼 발견하지?

시가 다 익어 떨어지기도 전에

우리는 설익은 열매고 이파리고 전부 다 따버리지


빈 가지에 부는 바람만 미친 듯 비명을 지른다

미안해 선생님이

미안해


이보시오 이거 몇 매나 될까 다섯 매는 될까


안 된다고? 이런 씨발 



3

한국에 총기 사용 허가 나면 좋겠네

다 쏴버리고 싶네

그렇지만 결국 남자들이 먼저 총을 들겠지

우리보다 총에 익숙하잖아 

총 쏘는 게임도 많이 하고 군사훈련도 받고


서로 총 들고 싸우다가 남성 인구가 

반 토막 나면 어떻게 해


그럼 막 미래에는 국회의원 대부분이 여자고

장관도 거의 여자고

여자도 군대 가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야?

뉴스도 여자 둘이 진행하고

예능에는 여자만 잔뜩 나오고 남자는 들러리처럼 한 명 나오고 그러는 거 아냐?

어떻게 해 


그럼 서로 그 바늘구멍 통과하겠다고 또 싸우다가

남성 전멸하는 거 아냐? 

어떻게 해


총기사용 허가 절대 안 되겠다

남자들 우리가 지켜야지


X는 X고 Y는 Y니까 


아 언제 부자 되지 하늘에서 1억만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

부자 부모님 있었으면 좋겠다


비는 왜 이렇게 많이 와

습해 죽겠어

이러다가 피부 좋아지겠네


어제 꿈을 꿨는데 글쎄

바닷속의 해초가 되는 꿈이었는데

강동원이 오더니 나를 뜯어먹었어

그러더니 오히사시부리, 라고 일본어로 말하고 사라졌지 완전 개꿈이지 웃기지


남들 다 본 <부부의 세계> 이제야 조금 봤는데

남편 미친 거 아니야?

진짜 극혐 

저런 사람 정신 승리하는 논리 진짜 

너무 신박하고 어이없어서

악역 실제로 만나면 패주고 싶은 심정이 

뭔지 알겠더라

미쳤다 미쳤어 난리다 난리


김희애가 내 부인이면 얼마나 좋을까


내 아들도 낳아주고

집안일도 다 해주고

돈도 벌어다가 사업에 쏟아부어주는데

그게 김희애야……


지선우한테 프로포즈할 때 틀었던 음악 틀고 

여다경하고 차에서 키스하는 거 보고 진짜 가슴이 깨지는 줄 알았네

게다가 다경이랑 결혼해서 고산 돌아왔는데

안방 존똑인 거 완전 소름


여자를 개별자로 안 보는 놈들이 저런다

‘여자=다 같은 여자’ 이 공식이 머릿속에 있는 놈들

그런 애들은 사설 감옥에 가둬놓고 


매 끼니 팥죽만 시켜줘야 돼

근데 옹심이 추가 금지고 김치 반찬 없고 추가는 

올리고당뿐이야

올리고당뿐이야


이거 써놓고 보니까 너무 랩 같다

퀸 와사비가 불러주면 좋겠다

퀸 와사비 짱


배 아프다

피곤하다

자고 싶다

부자 되고 싶다

눕고 싶다


맨날 이 얘기를 조금 다르게 하고 있는 것 같네

너무 힘들어서 이거 전부 누워서 썼다


보통 쓸 때 한 오 분마다 몇 매 썼나 확인해본다. 작가들 다 공감해서 웃을 걸?



4

애기 데리고 바다 갔다 오느라 며칠의 시간과 체력을 너무 많이 써버렸고 아이는 너무 좋아했고 우리는 돌을 많이 주웠고 하루종일 해변 개장 시간부터 폐장 시간까지 물놀이ㅡ모래놀이ㅡ물놀이ㅡ모래놀이 무한 루프를 반복했고 나는 화상을 입었고 아이를 보며 오늘 일찍 자겠지 예상하며 뿌듯해했지만 내가 먼저 잠들어버렸고(기절함) 읽으려고 가져간 책은 한 세 장 읽었나. 맛있는 것을 잔뜩 먹었고 역시나 엄마는 물에 들어가지 않고 종일 앉아 짐을 지키며 바다만 바라봤다. 엄마는 그래도 좋다고 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나는 가끔 엄마를 보면 그런 게 참 안타깝다. 여기까지 와서 발에 물 한 번 안 묻히고 간다는 게. 난 우리 셋이 여행해서 너무 힘들었지만 너무 즐거웠는데 엄마도 그런지 궁금하다. 좋았으면. 


다행히 사흘 내내 비가 안 와서 잘 놀았다. 집을 빌려준 송지현 송주현 자매님들 고마와요. 


여행을 다녀오면 금방 현실감이 회복되지 않는다. 지금도 문을 열고 나가면 바다가 있을 것 같고 파도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게 이상하다. 왜 이렇게 돌아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걸까. 내일 또 수업 가야되는데 정신 차리고 선생 모드로 돌입해야 하는데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혼곤한 잠을 자고 싶다. 오래도록 꿈도 꾸지 않고. 깨어나면 가끔 여기가 어디지 하는 생각을 해. 여기가 어디지. 나는 나라는 가면을 쓴 귀신이 아닌가, 자리를 찾아 헤매는 두 발 없이 허공을 떠도는 것이 아닌가. 


아이의 말버릇 중 하나는 “세상에 엄마보다 좋은 사람은 없어”인데 가끔 너무 찔린다. 지금도 우유 따라주고 엄마는 누워서 원고를 쓰고 있는데 이런 엄마가 대체 뭐가 좋은 사람이라고. 엉엉. 그거 혹시 네 희망사항은 아니지. 진심이지. 믿을게. 엄마는 좋은 사람이니까. 세상에서 제일. 


갑자기 노래방 가고 싶다. 가서 도원경 <이 비가 그치면> 부르고 싶다. 이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 에어컨 틀면 춥고 에어컨 끄면 꿉꿉하다. 냉동실 안에 돼지고기 많은데 어떻게 하지. 나는 요즘 먹는 것을 많이 줄였다. 냉장고에서 음식이 점점 썩어나간다. 뭔가 해 먹는 게 너무 귀찮다. 컵라면을 세 박스 사놓고 학교 갈 때도 컵라면을 가져간다. 식재료를 사고 다듬고 요리하고 먹는 것에는 정말 많은 에너지가 든다. 얌전히 썩고 있는 것들을 보면 화가 난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나는 것이다. 식재료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냉장고만 (아이 때문에) 계속 채워넣는 게 한심하다. 나는 지금 확실히 뭔가 과부화되어 있긴 하다. 어떤 부분을 고치면 내가 나아질까. 어쩌면 너무 낡은 부품들로 만들어진 로봇 같다. 다들 최첨단인데 나는 프로토타입인 거 같다. 메모리도 적고 데이터도 많이 처리하지 못하고 소프트웨어도 윈도98인 것 같다. 흑흑. 


집을 정리해서 짐을 좀 버리고 싶은데 짐을 정리할 시간도 기운도 없다. 짐 정리 대신 해주는 업체 없을까. 전부 남의 손에 맡기고 싶다. 미어터지는 집 말고 좀 깔끔한 집에서 여유 공간을 확보하고 지내고 싶다. 물론 이혼 전의 큰 집에서 지금 집인 작은 평수로 오느라고 물건들을 더 비좁게 둘 수밖에 없게 되긴 했지만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나는 옷이랑 책이 너무 많다. 근데 버리고 싶지 않다. 그게 내 문제다. 호더까진 아니지만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십 년 전 옷도 (물론 입기는 하지만) 버리지 않고 걸어두면서도 늘 새 옷을 계절마다 몇 개씩 사게 되니 결과적으로 옷은 점점 늘어난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후회하기도 한다. 도로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할 수 없지. 뭘 버리면 집이 좀 훤해질까. 책을 다 버리면 결국 다시 사게 된다는 무서운 괴담을 들어서 책을 버리기도 싫고. 요즘은 전자책을 많이 본다. 종이책이 물성이 있어 더 좋지만 전자책은 무게가 없고 아이가 잘 때 옆에 누워 몰래 보기에 좋다. 백라이트가 있으니까. 그래서 결국에는 진짜 좋아하는 책은 또 책으로 갖고 싶어서 전자책으로 사고 종이책으로도 사는 이중 구매를 저지르게 된다. 나 새끼. 


내 옷장이 미어터지는 건 여름과 겨울 두 계절이 뚜렷한 한국 날씨 때문이야. 내가 샌프란시스코 같은 곳에 살았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걸. 게다가 봄가을 일 년에 한 이 주 입을 옷들까지! (봄과 가을 있긴 있는지 의문이지만) 왜 대형 아파트에 드레스룸이 있는지 알겠다. 이 변화무쌍한 한국이여. 


한국 살면 분열증적으로 성격이 형성되기 딱 좋다. 내가 그 증거다. 가끔 나도 어떤 내가 진짜 나인지 잘 모르겠다. 다정한 나. 화내는 나. 웃는 나. 미친 나. 자살 사고에 시달리는 나. 아이와 브런치 맛집에 가서 사진을 찍는 나. 나는 내가 잘 통합된 것처럼 사고되지 않는다. 그게 괴로울 때가 있다. 



5

지난주에 대산청소년문학상 예심 발표가 있었고 붙은 학생은 기뻐하고 떨어진 학생은 상심하였다. 모두 함께 열심히 준비했는데 늘 결과는 엇갈린다는 게 참으로 슬픈 일이다. 


승현이는 우리 반에서 제일 열심히 쓰는 학생이고 시에 대한 사랑이 참으로 크고 맑은 아이다. 승현이의 시를 읽을 때는 이상한 슬픔을 종종 마주하곤 한다. 그런 승현이가 웃으며 괜찮다고 의연하게 말하는데 내 마음이 참 아팠다. 내가 뭔가 잘못해서 그런 결과가 나온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데도 승현이는 자기의 시세계는 나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말한다. 그런 승현이에게 많이 고맙다(물론 우리 반 친구들 예은 여빈 은이 현서 정빈 남혁 모두에게 고마워). 승현이가 쓴 시를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여기 남겨둔다. 


나는 이것 또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지나갈 거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 아플 땐 실컷 아파하고 기쁠 땐 열심히 기뻐하면서 일희일비하며 시를 쓰자. 모든 순간이 중요하니까. 


그리고 그 순간순간이 모여 우리를 만드는 거니까. 나는 아직도 어렵지만 곁에서 아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것도 내 고통스러운 일상 중 하나니까.




내 주먹에 뭐가 있는지 맞혀봐


                        

고양예고 3학년 정승현



정말 이상하지. 

그렇게 물어보면 네 눈치를 보게 된다. 주먹을 바라보고 있으면. 주먹을 내 얼굴에 들이밀고 도망칠 것 같은데. 손등의 푸른 핏줄이 비치는 것이. 당장이라도 네가 줄줄 쏟아질 것 같다.  


네 주먹 안엔 머리카락 한 움큼이 있을 것 같다. 

고개 숙여 우리의 치마 길이를 검사하고 다니던 선생은. 교복 바지를 보고는 네 머리채를 잡았다. 다음날 너는 짧아진 머리를 매만지며 등교했지. 고슴도치 같은 네 뒷머리는 어디서 자라나는 억울함일까. 이제 그 선생은 네 머리채 대신 귓불을 잡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생 정말 치마 길이를 검사하던 게 맞았을까. 


네 주먹 안엔 녹슨 커터 칼이 있을 것 같다.

너는 밤마다 어둠을 한 겹씩 벗겨내어 팔찌 삼았지. 그러다보면 새벽이 되어서. 너는 항상 학교에 먼저 와 있었다. 엎드려 잠든 네 소매를 내려주었다. 나는 네 손목이 가벼웠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맞혀보라고.

내 주먹 안에 뭐가 있는지.


정말 이상하지.

네 꼭 쥔 주먹을 잡고 싶었다. 무엇이 들었을지 모를 손이,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다 비치는 손이 살아 있다. 네 손등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고. 나는 네 투명한 슬픔에 손을 내민다. 


너는 싱겁다는 듯 손바닥을 체육복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