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

매듭 풀기

나는 돌을 좋아한다. 나에게는 여러 가지 색의 여러 지역에서 찾은 여러 질감의 돌이 잔뜩 있다. 돌은 아주 단단하고 부드럽고 거칠다. 돌은 무겁고 모양도 가지가지다. 돌을 물속에 담그면 돌의 색은 진해지고 돌은 더 커 보인다. 나의 돌을 소개하는 돌 낭독회 같은 것을 하고 싶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단 한 개의 구체적인 돌도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답답할 수도 있고 더 궁금할 수도 있다. 나는 쉽게 나의 돌을 가르쳐주고 싶지 않다. 나 혼자만 알고 싶으니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하나의 돌과 그 돌을 보고 상상해 쓴 한 편의 시를 세트로 묶어 팔아보면 어떨까? 그럼 나는 돌을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니는 일을 하게 될 것이며 틈틈이 열심히 시를 쓰게 될 것이다. 그 시들은 어디에도 발표하지 않고 오십 편이 되면 ‘돌’이라는 제목으로 한 권의 시집으로 묶을 것이다. 한 편 한 편 수신인의 이름을 적어넣을 것이다. 좋은 생각 같지 않은가요?


약간 돌 장사하는 것 같은 모양새라 불경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덕업일치랄까, 돌에 대한 사랑을 전파하면서 나는 돌로 생활비도 벌 수 있는 일석이조의 일 같기도 하다. 수요만 있다면……


내가 돌을 몹시 좋아한다는 걸 아는 아이는 자꾸 돌을 주워다주는데 낡고 깨진 타일이나 아스팔트 조각 같은 것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건 돌이 아니라고 해도 계속 돌이라고 우긴다. 그게 또 너무 귀엽다. 주변 지인들도 종종 원석이나 수정을 선물해주곤 한다. 나는 그것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자주 오래, 또 틈날 때마다 바라보며 매료된다. 돌은 참으로 불가해한 것이다.


처음 학교에서 수업을 하게 되었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수업으로 ‘돌 찾기, 발견한 돌로 시 써오기’를 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는 돌이 없다고 했지만 우리는 곧 엄청나게 많은 돌을 발견한다(돌인 줄 알고 주웠는데 지우개였던 것도 있었다). 힘을 합쳐 땅을 파고 주워 온 돌을 하나하나 씻어 흙을 제거한 돌의 색을 관찰했다. 지금 그 돌들은 어디에 있을까. 아이들의 책상에 놓여 있을까. 아니면 어딘가로 사라졌을까? 나는 자주 속으로 생각했다. “돌은 어디에나 있고/ 우리는 그것을 안다”(「도움의 돌」, 『가능세계』, 문학과지성사, 2016)고 돌은 정말 어디에나 있다. 편의점 앞에도 있고 갈빗집 바닥에도 있고 숲에도 운동장에도 바닷속에도 있다. 돌은 아주 조용히 있다. 어쩌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순간이 찾아오기를. 무너져내리기를.


돌의 내부에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응축되어 있고 무너짐과 결합이 함께 들어 있다. 돌은 살아 있되 죽어 있다. 세상에 돌만큼 신비로운 물성을 지닌 것이 또 있을까. 돌에게는 돌이라는 말이 너무 잘 어울린다. 돌, 돌, 하고 말해보면 설명할 수 없는 모든 내재율이 쏟아져나오는 것 같다. 나는 돌이 너무 좋다.


어쩌다가 나는 이렇게 돌에 반하게 되었을까. 처음 돌을 모으는 버릇은 여행지에서 그곳의 돌을 하나씩 주워 오면서 시작된 것 같다. 돈도 없고 무언가를 기념하고 싶었던 나는 발아래를 유심히 보고 다녔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돌을 발견하면 주워 가방이나 주머니에 하나씩 집어넣게 된 것이다. 여행지에서 듣던 노래를 들으면 그때가 환기되면서 그곳으로 잠시 돌아갈 수 있듯이 돌은 내게 노래이고 타임머신이다. 


요즘 내 소원 중 하나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서 돌만을 위한 유리 장식장을 짜 돌을 전시해두고 매일매일 보는 것이다. 언젠가는 꼭 이루게 될 것이다. 지방으로 이사가서 이억 정도 대출받으면 되니까(대출이 나올까?). 


*


이사 얘기가 나와 말인데 나는 요즘 파주 지역 집들의 시세를 살펴보는 데 관심이 많다. 심심하면 네이버 부동산에 들어가 실거래가를 살펴보고 집들의 구조를 살펴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지금 사는 전셋집보다 매매가가 저렴하면서도 큰 평수의 집들이 많다. 주변이 논밭이고 읍이라는 것이 저렴한 이유인 것 같다. 나는 좋은데, 우리 애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파주는 만약 전쟁이 나면 한 방에 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좋다. 나는 좀비물 같은 걸 봐도 제일 먼저 좀비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애써 도망 다니면서 볼꼴 못 볼꼴 다 보며 겨우겨우 하루하루 살아내는 불굴의 의지가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 그런데 왜 좀비들은 전부 말랐을까? 아마 무덤에서 살아난 시체 즉 해골의 이야기가 근원에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나는 좀비물이 별로다. 그냥 잘 접속이 되지 않는다. 좀비로 뒤덮인 세계에 대해 공감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무서운 건 역시 인간이다. 인간만큼 무서운 존재는 없다. 인간은 자꾸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모두 상처받기 싫어하는데 어째서 이렇게 상처받아야만 하는 사람이 많은 건지 가끔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런데 어떤 영역의 인간은 진정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을 이제는 자주 포기하게 되어버렸다. 그건 슬픈 일이다. 인간을 포기한다는 거. 그러나 끝없이 이해하려고 애쓰는 게, 때론 너무 훤히 이해가 되는 게 더 슬프기도 하니까. 이해할 수 없는 것의 미지가 늘 아름답지는 않으니까.


옛날에는 왜 그렇게들 자기 집을 가지려고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너무나 이해가 간다. 이 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된다는 스트레스와 아이의 전학이나 부적응에 대한 걱정, 뿌리 없이 떠도는 기분. 아이는 이혼 때문에 이사를 하게 되어서인지 이사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다. 다시는 이사를 가고 싶지 않다고 원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자꾸만 말해서 내 마음을 찢어놓는다. 어딘가 정착해서 다시는 떠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켜주고 싶다. 다들 그런 마음에서 집을 사려고 하는 거겠지. 투기하려는 사람 빼고.


*


산문에 엄마 얘기를 썼는데 엄마가 집에 들어오면서(엄마는 대체로 금요일마다 들른다) 이야기했다. “그렇게 힘들어?” 속으로 좀전에 올라갔을 텐데. 벌써 읽었구나, 싶었다. “네가 너무 힘들다고 그러니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그래서 나는 농담하며 “그럼 엄마가 산문 좀 대신 써줘. 나 할일이 너무 많아. 내 산문에 빨리 답장 써줘!” 떼를 썼다. 그리고 며칠 뒤 엄마는 정말로 글을 써서 보내왔다.



사랑하는 은선아


엄마는 네 글을 보면서 네가 얼마나 힘들고 

바쁘게 네 삶을 꾸려오고 있는지 느껴져서 

마음이 많이 아프고 슬펐어.

엄마가 보는 것 신경쓰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써. 

할 수만 있다면 너의 힘든 짐을 나누고 싶구나. 

그동안 많은 일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많이 힘들었지?


은선이는 여리고 예민한 사람인데 너의 진심이 

다른 사람에게 왜곡되고 오해가 생기면 현실적으로 헤쳐나가야 할 육체적인 일도 힘든데 

정신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까지 너를 힘들게 하는구나.


은선아

지금 돌이켜보면 엄마도 미리 예측할 수 없었던 

느닷없이 나에게 닥치는 어려운 일들을 헤쳐나올 수 있었던 것은 

엄마에게 두 딸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제일 어린 은선이.


엄마가 돌봐주지도 못하고 미안하구나. 

그래도 스스로 잘 자라서 

자신의 길을 알아서 헤쳐나가니 대견하구나.

어느 날 엄마에게 선물과 같은 손자도 생기고 

결혼생활도 잘했으면 좋았겠지만 

그것은 혼자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니……


어제 티브이를 보는데 이혼은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더이상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 하는 거라고 하네.


은선아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네 앞에 일어날지

모르지만 우리 서로 격려하며 사랑하며

우리 앞에 다가오는 삶을 잘살아보자.

항상 너 자신을 귀하게 생각하고.

네 아이에게 네가 전부이듯이 너 또한

네 삶에서 아이가 첫번째잖아. 그러려면

너 자신부터 바르게 서야 해.


우리 휴가 가서 바다를 바라보며 푹 쉬어보자.

너무 먼 미래보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엄마가 많이 사랑하는 거 잊지 말고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엄마는 사랑한다.


은선이를 응원하며 사랑하는 엄마가


2020. 7. 28.


엄마는 전화로 글을 쓰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몇십 년 만에 글을 쓰려니 잘 쓸지 모르겠네. 네 마음대로 고쳐써도 되고, 마음에 안 들면 그냥 혼자 읽고 말아도 돼.” 엄마는 정말 내 원고에 보탬이 되려고 오랜만에 펜을 든 것이다. 자식이 뭐라고.


근데 또 나는 그걸 고스란히 받아 적고 있다. 엄마,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요. 그리고 엄마의 편지에 ‘헤쳐나간다’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오는 게 슬펐다. 우린 뭘 그렇게 자꾸 헤쳐나가려고 애를 쓰고 또 쓰고 있는 걸까. 끝없이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내가 알기로 엄마는 시를 써서 문학상을 받은 적도 있고(가계경제에 보탬이 되려고 썼던 거라 활동하거나 계속 쓸 생각은 못했다고 하셨던 것 같다)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공방도 운영했었다(결혼해서 애 낳고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기질이 엄마를 많이 닮았다고 늘 생각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늘 나중에 너희들 다 키우고 시간 여유가 생기면 책을 쓸 거라고 말했는데, 사는 게 어려워서 여유가 생기지를 않았다. 지금은 눈이 어두워 책을 잘 못 읽는데 웹진에 발표하는 글은 읽기가 수월해 잘 챙겨보는 것 같다. 이렇게라도 엄마가 강제로(?) 글을 쓰게 만들어서 뿌듯하기도 하고 불효녀 된 것 같기도 하고 두 가지 마음이 내 안에서 싸운다. 엄마 글이 좋아서 언젠가 엄마가 꼭 자신만의 책을 썼으면 좋겠다. 


돌 얘기로 시작해서 어쩌다 여기까지 의식의 흐름대로 오게 되었네. 내 원고 원래 그런 스타일인 거 다들 아니까 괜찮겠지. 돌 얘기 큰 집 소망 얘기 엄마 얘기 제목은 ‘돌 이사 엄마’인 건가. 이렇게 알차게 여러 가지 얘기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갑자기 밖에서 미친 듯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폭우가 오는 소리. 몹시 두근거리게 되는 소리. 오늘은 이상하게 시원하면서도 아프게 들리는 소리다. 이런 빗속에서는 돌이 흉기가 되기도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문득 고속도로에서 보았던 ‘낙석조심’ 표지판이 생각난다. 


떨어지는 돌.

떨어지는 돌.


돌이 무언가를 해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지금 처음 해보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무기가 된다니 돌은 역시 불가해하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와 엄마와 바다에 가기로 했는데 그때는 날이 화창했으면 좋겠다.



P.S.

제 산문을 읽고 아이와 함께 쓰라고 입욕제를 선물로 보내주신 분이 있어요. 오늘 전해 받았고 집에 오자마자 아이에게 빼앗겼습니다. 미력한 글을 읽고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와 즐거운 ‘우리들만의 밤 파티’를 하고 입욕제 후기 꼭 남길게요. 정말 고맙습니다!



엄마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