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돌을 묘사하겠다고 나선 그가 스스로를 옭아매고야 말았다

한 문장만 써야지. 딱 한 문장만. 그러고 나서 자자. 쓴다는 건 계속해서 지금의 수준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에 갇히게 되는 노동인 것 같다. 모두가 나를 잊기를 바라면서도 모두가 나를 잊을까봐 무서워. 그래도 꾸준히 쓰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을 가져본다. 근데 나를 못 믿겠어서 무서운 거 있지. 내가 꾸준히 쓸지 가끔 걱정이 되니까. 깍지를 끼고 기도하듯 손을 모아본다. 그러면 손바닥 사이로 따듯한 자장 같은 게 흐르는 느낌이 들고 가끔 어딘가로 연결될 것 같기도 하다. 많은 종교에서 왜 손을 모으는 행위를 취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해. 두 손을 모으고.


일주일은 더디 흐르고 한 달은 너무 빨라. 일 년은 더 빠르지. 내가 언제 벌써 이렇게 나이들어버렸나? 높은 탑 위에서 작은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지. 멀리 보려고 할수록 눈이 시려. 마음은 계획과 무관한 방향으로 다리를 뻗으며 눕고 긴 머리채를 흔들지. 비밀 지켜줄래? 전부 신의 뜻이었다고 말해줄래? 비좁은 풍경으로 흩어지는 구름들. 별들. 먼 도시의 반짝이는 모래알 같은 빛들.


어릴 때 나무를 보면 다리를 벌린 채 거꾸로 처박힌 인간들 같다고 생각했어. 그게 가장 가혹한 형벌이라고 생각했어. 줄곧 나무가 두려웠어. 흙속에 얼굴을 묻고 머리카락이 한없이 길어지는 꿈을 꿨어. 그런 밤이 네게도 있었다면 우리는 조금 친밀해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이제 다 커서 마음을 아끼는 사람이 되었다. 너는 무엇이 되었을까. 가끔 궁금해. 내가 잊은 것들도 대신 기억하고 있을지. 나와의 모든 기억 내려놓고 아침마다 출근하고 회사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이면 퇴근하고 주말이면 영화도 보고 친구도 만나면서 무탈하게 지내고 있을지.


한 문장 한 문장이 이어져서 한 문단이 되고 한 장이 되고 두 장이 되고 세 장이 되고 그런 거잖아. 한 문장이 없으면 한 권의 책도 시작되지 않는 거잖아. 그런 생각을 해. 전부 지워버리게 될지 몰라도, 일단 써보자고. 호수 옆에는 작은 집이 있고 아무도 살지 않아서 동네 아이들이 밤이면 거기 몰래 숨어 불장난도 하고 첫 키스도 하고 그랬다고. 그러던 어느 날 호수에 빠져 한 소년이 익사하고 그때부터 모든 게 망가지기 시작했다고. 아이들은 그 기억을 놓지 못해서 일생을 죽음을 반추하며 살았다고. 작은 집에서 모여 살면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겨울잠에 빠진 동물처럼 웅크리고 하나의 이름만 계속 읊조렸다고. 두 손을 잡고. 그러던 어느 봄에 호숫가의 진흙 속에서 한 짝의 신발을 발견하고 그때부터 모든 일이 다시 시작되지. 그런 이야기를 써보았던 적이 있어. 어디서 많이 본 얘기 같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살아본 적도 없는 삶이 가끔 내 것 같아. 실제 삶보다 그런 이야기들이 더 진짜같이 느껴지고. 때론 사무치게 그리워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다.


살아 있다는 실감이 잘 안나. 


가끔 나는 내가 길고 긴 통로 같다. 그 복도로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얘기하고 그런 거 가만히 보고 듣는 통로. 보고 들은 거 가지고 멋대로 각색하는 통로. 움직일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어서 아주 천천히 실금만 가는 통로. 어서 주저앉아 무너지기를 두 손 없이 기도하는. 


오늘 부분 개기일식이 있었다는데 그것도 모르고 뒤늦게 사람들이 올린 여러 가지 사진들을 보면서 아쉬웠다. 오십사 년 후에나 다시 볼 수 있다는데 나는 그 시간에 침대에 누워 <슬기로운 의사생활> 마지막 회를 봤다. 아이는 아빠 집에 가고 나 혼자 보낼 수 있는 오랜만의 주말이었는데 나는 그 시간을 전부 드라마에 써버렸다. 가만히 있으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런데 또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가만히 있는다. 그러다가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가 시간을 이렇게 다 탕진하고 마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사람들은 참 잘도 사랑에 빠진다. 드라마에서 의사들은 환자의 생명에 관심이 많고 드라마에서 가족들은 서로 돕고 의지한다. 


아이를 낳고 몇 년 후에 두번째 아이를 가진 적이 있다. 자궁외임신이었다. 나는 몸에 대해 좀 둔한 면도 있어서, 아이가 생긴 걸 늦게 알았다. 배가 너무 아파 밤새 데굴데굴 구르다가 어딘가 이상해서 아침에 산부인과에 갔을 때(심지어 나는 산부인과하고 항외과 중에 어딜 가야 하나 고민했다. 바보. ㅠㅠ) 의사는 응급으로 종합병원에 가라는 소견서를 써서 건네주었다. 임신은 맞는데 아기집에 아기가 없다고 했다. 어쩐지 그렇게 오렌지가 먹고 싶더라니(평소에 과일 안 좋아함). 나는 병원에서 나오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엄마는 택시를 타고 달려왔다. 그날이 마침 금요일이어서 아이는 남편이 시댁에 데리고 갔고(현재는 전남편인) 나는 엄마와 둘이 응급실에 있었다. 바보같이 그 와중에 아침을 먹어서 일곱 시간을 기다려야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응급실 베드에 누워 금식 시간을 보냈다. 엄마는 내내 옆에 있어주었다. 나는 계속 눈물이 났다. 지금은 그냥 세포가 죽은 거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그땐 그 아이가 딸인지 아들인지 태어났으면 얼마나 예뻤을지 그런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나를 자책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나는 나 때문이라고 계속 스스로를 책망하고 비난했다. 


입원하고 수술하고 다시 입원 기간을 거치면서 의사랑 간호사는 참 차트를 안 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워낙 쉬운 케이스라 그랬겠지만 자꾸만 나를 ‘처녀가 사고를 쳐서’ 입원을 했다고 수군거렸다. 같은 병실에 사람들이 그러는 건 이해를 하겠지만 간호사들까지 그러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차트에 경산모―아이를 낳은 적이 있는 산모―라고 체크가 분명히 되어 있을 텐데 대체 왜 그래요. 입원 마지막날 밤에는 열이 심하게 나서 간호사가 하루 더 입원하면 어떠냐고 했을 때 퇴원하고 싶다고 했더니 왜 그러냐고 묻기에 내일 퇴원하면 집에 혼자 가야 하고 오늘 퇴원하면 남편이 데리러 올 거라서 그렇다고 하니 “남편이 있었어요????????”라고 간호사는 말했다. 


섹스를 하면 임신을 할 수 있고 모든 임신이 수월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커플은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서로 성적으로 친밀한 것이 일반적인 일 아닌가? 그렇다면 자궁외임신은 파트너가 있는 모든 여성이 겪을 수도 있는 자연스러운 아픈 결과 중 하나다. 임신을 하면 당연히 그 임신은 유산, 사산, 자궁외임신 등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근데 왜 여성을 탓하고 여성을 문란하다고 도장을 찍는지 모르겠다. 임신은 혼자 하나?


퇴원 전 담당 의사하고 마지막 진찰할 때도 어린 분이 어쩌고 하길래 “제 애가 세 살이에요”라고 하니 놀라며 차트를 보고 나이를 다시 본 다음 “결혼을 했어요????????” 그리고 왜 그렇게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냐고(스물여덟 살에 함) 요즘은 결혼 늦게 하는데 자기도 서른여섯에 했다는 둥 웅엥웅하였다. 내가 약간 동안인 건 맞지만 그렇게 동안도 아니고…… 왜 그런대 대체? 사람 좀 얼굴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요. 


전에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 종종 엄마들 다섯 명과 어울려 지낸 적이 있다. 나이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성장배경도 다른 다섯이지만 아이가 같은 나이고 같은 지역에 사니까 할 얘기는 많았다. 대부분은 아이 얘기였고, ○○이 가졌을 때 나는 뭐가 제일 먹고 싶었고 입덧이 심했고 애는 어느 병원에서 낳았고 그런 얘기들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유산 경험이나 임신 합병증 얘기가 나온 일이 있는데, 그 자리에 있는 다섯 중 한 번에 아이를 가져 수월하게 출산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유산 혹은 나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야기하지 않지만 임신 출산 경험에서 다들 아이를 잃은 경험이 있었다. 내게는 그게 너무 생소하고 신기하게 들렸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들 그런 일들이 있었구나. 그럼 그런 이야기를 쉬쉬하거나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 여성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우리 엄마 때(팔구십년대)에 ‘하나 낳아 잘 키우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같은 슬로건을 주입시키고 남자가 정관수술을 하면 아파트 분양권을 우선순위로 주던 그 시절에, 어릴 적 아파트 현관에 그런 전단 같은 것이 붙어 있는 걸 자주 봤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그땐 다들 중절 수술했다고, 안 한 사람이 없었다고 그랬다. 


시절이 변해 출산 장려 시대가 되었는데 아직도 여성들이 겪는 고통과 홀로 짊어짐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는 너무 모르고 산다. 


그때는 그렇게 중절하라고 국가에서 난리를 치더니 이제는 애 낳으라고 난리를 친다. 여자는 애 낳는 기계가 아니다. 이 나라에서 여성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들』 속 시녀들 같다. 나는 몇백 년 안에 한국이 없어지고 중국에 흡수될 거라고 자주 생각한다. 예전에 알던 한 친구는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도 많이 낳는 게 꿈인데 남자친구도 없고 몇 년 안에 결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친구는 냉동 난자 시술을 알아보았는데 미혼 여성에게는 그 프로그램이 지원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더 자연스럽게 여러 가정의 형태를 존중하고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아이를 낳고 싶으면 잘 낳아서 키울 수 있게 국가가 제도를 마련해야지. 여성에 대한 평등한 사회 기반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한국은 없어지는 게 맞지. 

아, 그리고 아이의 재난지원금을 아이 아빠가 받았단다. 내가 친권, 양육권을 다 가지고 있는데 왜 아이는 제도 속에서 남성에 귀속되는 건가? 나는 1인 가구로 지정되어 그만큼의 재난지원금만 받았다. 물론 전남편한테 말해서 받긴 했지만 모든 이혼 부부가 그런 소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나는 그 아이들이 소리 내어 부르던 하나의 이름이 사실 이 세계의 모든 이름과 동일하다고 호수 아래에는 이승의 영혼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고 한 명씩 천천히 물속으로 걸어들어간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끝맺었다. 늘 내가 하는 생각은 끝에 대한 생각이고 사라짐에 대한 갈망일 뿐인 것 같아서 스스로가 시시하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존재하는 이상 그 매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바보.


옛날 사진들을 둘추었다 친한 언니들하고 같이 여행 갔다가 절에 들러 소원을 비는 내 모습을 보았다. 두툼한 기왓장에 나는 ‘다정한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적었다. 그 소원만은 어쨌든 이룬 것 같다. 다른 소원을 빌걸. 언제 또 다 같이 그 멤버로 여행을 갈 수 있을까? 이번 생에서 가능할까? 그런 생각을 하니 슬퍼지고 다정 같은 건 다 필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니들아, 나 이제 차도 있고 운전도 잘하는데, 언제 또 여행 가자. 우리 애기들도 데리고서. 혹시라도 이 글 보면 꼭 의사 표현 좀 해줘. 바다도 가고 산책도 하고 절도 가고 초원사진관 앞에서 사진도 찍고 카페도 가자. 응?  


과거가 자꾸 전생 같다. 행복했던 순간들도 있었어 그래. 탑 위에서 작은 구멍으로 바깥을 보는 한 늙은 여자가 중얼거렸다.


Fleet Foxes의 노래 <Helplessness Blues>에 이런 가사가 있다.


I was raised up believing I was somehow unique

Like a snowflake distinct among snowflakes, unique in each way you can see

And now after some thinking, I'd say I'd rather be

A functioning cog in some great machinery serving something beyond me

But I don't, I don't know what that will be

I'll get back to you someday soon you will see

What's my name, what's my station? Oh, just tell me what I should do


*


퇴원하고 돌아오니 현관에 오렌지 한 박스가 있었던 게 생각난다. 그걸 보고 마음이 무너졌던 것이.





산문의 제목은 프랑시스 퐁주, 「조약돌」(『사물의 편』, 최성웅 옮김, 읻다, 2019)에서 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