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기계 인간이 되고 싶고 되기 싫어

편도가 부어 가라앉지 않는다. 일주일에 대략 스물두세 시간 정도 수업을 하는 것 같다. 시는 서른 편에서 서른다섯 편 정도 합평하는 것 같다. 나는 가끔 내가 합평 기계 같다. 내 시를 전혀 쓰지 못한 지 몇 달이 넘었다. 고3 수업은 끝없는 문예창작과 대입 실기 시험 준비의 연속이고 합평이 주를 이룬다. 이렇게 버티면서 자기 작업을 해내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걸까요. 끝없는 두통에 시달린다. 잠이 들면 꿈속에서 나는 학생이다. 선생의 말을 듣지 않아 서른의 나이에 끝없이 낙제하는 중학생이다. 현재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진 채 나는 내가 이미 대학 교육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불량 학생이다. 잘못 조립된 부품처럼 작은 책상에 다리를 구겨 넣는 커다란 학생이다. 영혼이 불구여서 입도 뻥끗 못하는 찢어진 백지이며 숫자의 나열이다.


너무 피곤할 때는 오히려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누워서 해야 할 일들을 꼽아보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새벽을 견딘다. 읽고 싶지도 쓰고 싶지도 않다. 비워내야 할 것들이 많다고. 다 흘려보내고 나면 계속할 수 있다고 중얼거리며 뒤척이며 나는 몸을 너무나 선명하게 느끼는, 순간의 거대한 살덩어리가 되고. 육체의 무게는 고스란하고 감각은 날이 서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눕는 순간에도 거대한 포대 자루를 끌고 언덕을 넘어가듯 숨이 찬다. 어제의 나는 과거의 나는 대체 어떻게 이 몸을 견뎠던 거지. 어떻게 해서 잠이 들었던 거지. 곰곰이 돌이켜보아도 오리무중이다. 이물감은 계속된다. 스스로를 이물로 여기는 이상한 감각, 낯선 피에 결박된 듯한 갑갑함을 느낀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이 떠오른다.


탈출하고 싶다.


육신에는 문이 없다.


정말이야. 정말로 그건 거기에 없어. 로봇을 붙들고 말하는데 로봇이 대답한다. 그것을 찾는 것이 제게 입력된 명령입니다. 그것의 존재 유무와 관계없이. 그럼 너의 목적은 없는 것을 찾아 허물어지는 순간까지 헤맴만을 계속하는 것이란 말이니. 누가 네게 그런 명령을 입력한 거니. 너의 의미는 무엇에 있는 거니. 저는 그런 것에 의문을 갖도록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생생한 인간이 가장 로봇과 유사할 수 있구나. 나는 화가 나는 것을 꾹 눌러 참는다. 미련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별안간 너도 탈출할 수 없는 신세라는 걸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벽 위에 문을 그려넣는다.


열리지 않는다.


그림은 그림의 역할만을 수행하므로.


*


처음 산문을 쓸 때는 주로 맥주를 홀짝이며 글을 썼다. 맨정신에 산문을 쓸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시를 쓸 때는 절대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절대적 규율을 갖고 있는데 시는 온전한 이성을 바탕으로 창작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취기에 휘말려 요량을 바라고 쓴 문장들은 감정적이고 설익을 공산이 크다. 나의 경우는 그렇다. 나는 시쓰기를 운이나 영감에 맡기지 않는다. 밀어붙이고 언어를 매만지고 사유를 확장시키고 좁게 뚫고 가는 힘은 취한 몸에서 나오지 않기에. 그러나 나는 내가 꽤나 유머로 가득찬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 유머를 발휘하려면 약간의 취기 혹은 들뜬 호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맥주를 홀짝거리게 되었다. 괜찮아, 한두 캔 정도는 오늘 내가 쓴 글의 원고료보다 적으니까!라고 생각하며(한동안 돈을 아끼려고 맥주를 끊었었다). 마시며 쓰는 즐거움을 막 배워나가던 참에 개학을 하게 되었고 이 생산량과 수업을 병행하려면 맥주는 독이 되는 실정에 놓여버렸다. 그런데 그후로 내 글이 점점 진지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나는 그게 걱정이다. 평생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할 수만 있다면 다른 일들을 때려치워도 될 텐데. 종신계약 좀 어떻게 안 될까요? 


산문을 연재하게 된 뒤로 SNS에 내 이름을 검색해보는 일이 잦아졌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기 때문이었고 아직까지 좋다, 재밌다 하고 적어주시는 분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곧 노잼의 서막이 열릴 것이다. 그때에는 아무도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을 것이고 그게 약간 신경 쓰일 것 같다. 연재라는 형식을 처음 경험해보는 내게는 이런 일들이 다 신기하고 재미있다. 아직까지는 별로라고 한 사람은 없는데 별로라고 생각한 사람은 굳이 리뷰를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내가 잡아내지 못한 것뿐이라는 사실은 나도 잘 압니다. 자만하지 않겠습니다. 언제까지나 이 구역의 미친년으로 남고 싶어. 그게 내 바람일 뿐이야. 흥.


최고 좋았던 건 내 글 읽고 뭔가 쓰고 싶어져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혹은 글을 쓰게 되었다는 리뷰들이었다. 그것은 최고의 칭찬입니다. 늘 쓰고 싶게 만들어버릴 것이다. 다짐, 다짐. 아 그리고 시보다 산문이 낫다고 평하신 분도 있어서 약간 웃펐어.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내 이름을 검색해보는 김에 『가능세계』하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나도 가끔 제목 헷갈림, 방금 인터넷으로 찾아봄)도 찾아보았는데 ‘가능세계’를 검색하면 제일 많이 나오는 게 ‘ㅇㅇ이 얼굴로 세계 정복 가능’ 혹은 ‘세계 정복 쌉가능’ 같은 말들이 나온다. 가능은 알겠는데 ‘쌉’은 뭔지 모르겠다. ‘완전, 진짜’의 의미인 것 같은데 맞겠죠? 이제 나 더이상 영한 젊은이 아니야. 젊은이는 젊은이라는 말도 안 써 ㅋㅋㅋ. 은행에서는 35세까지 청년이라고 하고 어디 기관에서는 등단 십 년 차까지 젊다고 하고 또 다른 기관에선 40세 이하는 청년이라고 하는데 회사에서도 십 년이면 과장 아닌가요? 나는 청년과 비청년 사이에 애매하게 끼어 있는 나이라는 것은 알겠고요. 수업하면서 유승준, 임은경, 장국영 얘기하면 다들 뭥미 하고 쳐다보는 거 다 알아. 초등학교 시절의 정글짐도 국민체조도 이젠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데서 보고 배우는 거겠지요?(안 봐서 잘 모름.) 


이런 격차는 평소에 잘 못 느끼다가 학생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갑자기 느끼게 되어서 약간 더 충격이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거 같은데, 속은 완전 애긴데, 입력된 정보의 시차를 급작스럽게 깨닫곤 하니까. 정신연령은 완전 열아홉인데(혹은 그 이하), 어른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고 어른인 척 행세를 해야 하니까 인지부조화가 오곤 하네. 아무리 늙어도 글만은 나이들지 않게 갈고닦아 쓰고 싶어. 유행어 쓰면서 젊은 척해서 더 어색하고 옹색해 보이는 그런 거 말고 감각을 단련해서 늘 새로운 언어의 몸으로 갈아탈 수 있는 정신으로 무장하고 싶어. 이런 욕망이 언어가 아닌 다른 지점으로 뻗게 되면 그건 위험할 수도 있겠다고도 생각이 들어. 그래서 어른이면서도 어른 아닌 이상한 차원에서 머물 거야. 나는 내 사유의 흐름을 장악하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놀라고 싶어라. 계속계속. 몸과 정신을 분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눈이 향하는 곳의 풍경을 늘 닦아두어야겠다고. 그리고 운동도 좀 하긴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건 나를 백업하여 따로 보관해둘 가상의 공간을 만들고 나를 그 클라우드에 항시 연결해두어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업로드되도록 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어쩌면 어릴 때 본 <공각기동대>의 전뇌화 과정 같은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시의 전뇌화. 시집 속 시들은 작은 모듈 같고. 


*


몇 주 동안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행하였는데 드디어 병에 걸렸다! 목요일(5/28)에는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 가서 설사를 했습니다. 도중에 교실을 박차고 나가 설사를 하고 오기도 했지요. 나중엔 토를 하고 토를 하기도 했어요. 아, 이게 토사곽란이구나. 이대로 쓰러질 것 같다. 토하다가 그런 생각을 했는데 학교에서 그러면 안 되지, 하며 가늘어진 이성을 부여잡고 식은땀을 흘리며 간신히 자리보전을 했어요. 


그리고 금요일부터 병원을 순례하게 됩니다. 이비인후과, 정신과, 산부인과, 내과를 다녀왔고요. 인후염, 불면우울, 방광염, 장염 판정을 받았습니다. 아, 눈에 다래끼도 났었지요. 걸어다니는 염증이 되어 일상을 영위하는 것은 정말 괴롭다. 아픈 사람들은 계단 몇 개 앞에서도 무너질 수 있고 쉽게 화장실을 찾을 수 없을까봐 외출마저 꺼리게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꼭 그렇게 자기가 겪어봐야만 세상을 다른 입장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게 나야. 


때가 때이니만큼 혹시 코로나? 하는 공포 때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하였다. 


엄마가 와서 아이를 봐주었고 나를 간호해주었다. 서른넷이 되어도 나는 엄마에게 의지하는 인간이구나 생각하며 꼼짝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엄마는 빨리 나아서 글써야지, 하고 자꾸 말했는데 너무 고마우면서도 짜증이 났다. 아, 내 글 걱정은 엄마보다 내가 더 하거든요?? 제발 그만 좀. 지금 아파 죽겠다구. 엉엉.


어제 그제 코로나19 확진자가 70명, 40명씩 나오고 그래도 학교는 가동되고 다들 경각심이 없어진 것일까. 사스 때는 ‘사스는 나와는 먼 얘기’라고 생각하고 우습게 여겼는데 그게 너무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 코앞에 와 있고 나도 걸릴 수 있고 내가 걸리면 아이, 엄마, 주현이, 우리 반 학생들, 출판사 수강생들 등등 모두가 검사 대상이 된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났다. 내가 전파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공포인지. 


*


로봇과 함께 여행을 하면 즐거울까. 테이블 건너편에서 밥을 먹는 나를 쳐다만 보는 로봇을. 웃지도 울지도 않는 로봇을. 잠들 수도 꿈을 꿀 수도 없는 너를. 


나는 섬에 대해 오래 생각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특별한 생각은 아니라서 밤이 오면 나는 침대에 누워 전자책을 보거나 넷플릭스를 보고 있고.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앞으로의 인생을 다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막막하고 숨이 막혀. 매일매일 오늘만 생각하며 산다. 


잠들지 못하는 로봇을 눕혀놓고 이불을 덮어준다. 새로운 명령어를 입력해줄게. 


영원히 잠들게 해줄게.


문밖으로 먼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