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사건에 관하여

잘 모르겠습니다. 미안해요. 눈이 내려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르막길에서는 도무지 방향을 틀 수가 없더군요. 죄송합니다. 눈이 빛나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잠시 한눈을 판 것도 사실입니다. 나무에 눈이 쌓여 가지가 부러지고 눈이 떨어지며 퍽 소리가 났거든요. 그때 얼굴이 떠올랐고 얼굴이 가진 이름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데 그게 이상하고 슬퍼서 역광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이름을 꺼내고 싶었습니다. 자세히 본 것은 아닙니다. 검은 것이 휙, 하고 지나간 것만 보았습니다. 아니 보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이름은, 이름은. 아직도 맴돌기만 할 뿐 정확하게 발음할 수 없습니다. 거짓은 없습니다. 모호함으로 가득한 정확함만이 제가 가질 수 있는 태도입니다. 눈 때문입니다. 죄송합니다. 네, 네, 그렇지요. 처음부터 그런 날씨에 차를 가지고 나가지 말았어야 합니다. 아주 집밖에 나가지 말았어야 합니다. 어디라니……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 말씀입니까. 그런 것도 제 의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K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곳에 다시 가보고 싶었습니다. 눈 오는 날에요. 그곳은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K요? 그런 것까지 물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네.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함께 근로 장학생으로 일했던 친구입니다. 아니요. 그런 사이는 아니었고요. 단지 가끔 책을 바꿔 보는 사이였습니다. 네. 미안해요. 그게 답니다. 이유라니, 저는 그 순간 제가 본 것과 느낀 것을 전부 말씀드렸습니다. 이유가 필요합니까. 납득이라뇨. 제가 제 차를 몰고 제가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을 왜 납득시켜드려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아니요.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다시 처음부터요? 네, 네. 알겠습니다. 눈이 내렸습니다. 눈이 많이 내렸고요. 오르막길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네. 바퀴가 헛돌았습니다. 네. 액셀을 밟았습니다. 네. 방향을 틀려고 했는데 듣지를 않았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네. 얼굴이요? 얼굴이라. 네 무언가 표정 같은 것이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무슨 표정이냐니요. 아닙니다.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닙니다. 오래 잊고 있던 중요한 무언가가 떠올랐다고 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일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이라.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네. 모르겠습니다. 빛이 쏟아졌습니다. 아니 솟아올랐습니다. 다발로 된 빛이 솟아오르면서 울컥거리며 시야를 흔들었습니다. 검은 것이요. 네. 검은 것이요. 그 이상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정확한 것이 있는지 물으셨습니까. 정확한 것이 무엇이지요. 무엇이 정확합니까. 정확함이라는 게 가능한지 일단 그것부터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그런 말씀이 아니시라고요.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 네. 목적지요. 목적지는 성당입니다. 아니 수녀원입니다. 네. K는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저도 모릅니다. 그런 꿈이 있었는지 어떤지는 저도 모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네. 아닙니다. 눈이 많이 내려서 보지 못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워낙 눈이, 네, 눈이 많이 내렸고 네. 네. 알겠습니다. 제 기억에 대한 신뢰라고 하셨습니까. 제 기억이요. 기억이란 것은 굴절되는 속성이 있지요. 압니다. 네. 이미 블랙박스를 가져가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노래. 네. 노래를 들었습니다. 운전중에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주행중 노래를 듣는 것이 불법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쟁점이라고요. 네. 네. 미안합니다. 지나치게 산만한 습관이라고 하셨지요. 그날의 기록뿐 아니라 저장된 이전의 모든 영상을 살펴보셨다고요. 네.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직장과 집을 오가는 것 외에 특별한 것은 없을 텐데요. 매일 같은 길을 오가다보면 익숙함 때문에 산만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날 통화 기록이요? 아니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네. 죄송합니다.


네.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네. 네. 아니요. 지금 그 얘기를 왜 하시는지 제가 잘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네. 맞습니다. 상담을 오래 받았습니다. 그게 이 일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네. 미안해요. 네. 아무 해도 끼치지 않았다는 확신이요? 네. 확신은 없습니다. 증거 우선의 법칙과 증거 없는 자백은 유효하지 않다고는 알고 있습니다. 네? 네. 수사 드라마를 좋아합니다. 네. 눈이 내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네. 아닙니다. 네. 불이익이라뇨. 도주의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한하는 것 아닙니까. 네. 네, 드라마에서 봤습니다.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그렇게 드라마를 많이 볼 수 있냐고요. 그건 사생활 침해 아닙니까. 이게 그날 일과 관계합니까. 네. 죄송합니다. 네. 제 입장에 대한 이해라니. 참고인 아닌가요. 네. K요? 네. 네. 그냥 한 번쯤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 네. 장소를요. 아닙니다. 네. 결혼한 적은 없습니다. 직장생활이요? 일 년 남짓 되었습니다. 네. 아이를 키워야 하니까요. 죄송합니다.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빛들이 술렁이고 눈이 내렸습니다. 기록적인 폭설이라고 하더군요. 생각이라니, 생각은 나지 않습니다. 미안합니다. 왜 보고 싶었는지가 중요한가요. 왜라니, 왜라니요. 그냥 제 마음입니다.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마음까지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네. 눈이 내렸지요. 엄청나게 많은 눈이었지요. 그런 눈은 처음 봤습니다. 눈이 많이 내렸다고요. 네. 눈이요. 아이요?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냈습니다. 네. 혼자 살지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살고 아이도 세대 구성원입니다. 네. 남자요? 남자라니. 없습니다. 네. 


사건의 결말이요? 사건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아무것도 말씀해주시지 않으니 제가 뭘 알 수가 있습니까. 네. 검은 것이 휙, 검은 것이, 그냥 그것밖에는 모릅니다. 마지막 목격자라고요. 네.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냥 저는 운전중이었고, 눈이 내렸고, 시야가 빛으로 가득해서, 네. 잘 보이지 않았고. 네. 바퀴가 헛돌아서 방향을 틀 수가 없었습니다. 네. 처음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그게 전부입니다. 그 외에 제가 더 알아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까. 있다면 말씀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네. 아닙니다. 그래도 이유는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알지도 못하는 것을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네. 단지 수녀원에 가려고 했다고요. 네. 이름 말입니까. 이름이요.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던가요. 네. 뭔가 생각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기분을 제가 어떻게 다 말로 설명합니까. 네. 나뭇가지가 부러졌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네. 죄송합니다. 뭘 원하시는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네. 육하원칙에 따른 상황 설명이요. 네. 육하원칙이요. 누가 어디서 언제 무엇을 어떻게 왜, 라고요. 네. 제가 오르막길에서 오전 열한시에 차를 몰고 수녀원으로 가고 있었다고요. 어떻게라니요. 네. 차로요. 왜라니 왜, 거기에 다시 가보고 싶었습니다. 한 번쯤은 눈 오는 날 그 장소를 다시 목도하고 싶었습니다. 왜냐니요. 그냥 제 마음이 그렇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네. 맞습니다. 네. K는 죽었습니다. 아니요. 저도 정확한 사인은 모릅니다. 네. 네. 고인의 명예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신 적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미안합니다. 아니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네. 


네. 미안합니다. 그런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네. 단지 책을 서로 빌려주던 사이가 맞습니다. 네.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럼. 아니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그럼 제가 묻겠습니다. 그것이 이 사건에서 쟁점인가요. 말씀하신 쟁점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사료됩니다만 제가 왜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합니까. 네. 그는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네. 죽은 사람을 제가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는지는 제 마음입니다. K는 아닙니다.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눈이 왔다고요. 빌어먹을 눈이 잔뜩 쏟아져서 아무것도 볼 수도 없었고 제가 신경쓸 일조차 아니라고요. 네. 미안합니다. 네. 원래 이런 겁니까. 이런 식으로 참고인 조사를 하나요. 더이상 들쑤시면 저도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아니. 제가 뭘 해서 그런 게 아니고 지금 자꾸 저를 몰고 가시니까, 제가 그럼 하루종일 여기 붙들려서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이 와중에 진정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네. 네. 그렇게 하시죠. 해보시죠. 네. 


*****


이런 것을 썼다. 이런 것을 왜 썼지? 산문 쓰려고 앉아서 며칠 동안 이런 것을 썼다. 왜 그럴까. 왜 그런지 또 며칠 동안 생각해보았다. 제일 먼저 생각난 건 내가 처음 받아보았던 경찰조사이다. 나는 스무 살 때 처음 경찰조사를 받아보았는데, 언니와 함께 호프집에 갔고 우리는 모둠 꼬치와 생맥주를 시켰고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의 자매의 밤 외출이고 같이 맥주 한잔하는 동네의 산책길이 기뻤고 왁자지껄한 금요일 밤의 분위기에 취했다. 우리가 기다리던 안주가 막 나왔을 때 뒤쪽 테이블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어떤 남자가 여자 알바생에게 술을 한잔 따라보라고 강요했고 알바생은 거절했고 남자는 여자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여자가 소리를 지르고 항의를 하자 남자는 들고 있던 소주병을 테이블에 내려쳤고 깨진 병을 휘두르며 난동을 피웠다. 그리고 곧 경찰이 왔다. 우리는 단 한 개의 꼬치도 먹지 못하고 얼어붙어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여자는 큰 소리로 말했다. 목격자가 되어주실 분 없나요. 호프집은 너무 조용해졌고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다. 그때 내가 일어섰다. 그렇게 나와 언니는 여자와 남자 일행과 함께 경찰서에 연행되었다. 


경찰서에서 마주한 상황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 달랐다. 여자는 울고 남자는 큰소리를 치고 벌컥 화를 내며 경찰서 안을 우왕좌왕 오갔다. 제일 충격적인 것은 나와 언니 그리고 여자를 마치 죄인처럼 취급하는 경관들. 남자는 담배를 피우러 허락 없이 안팎을 오갔으나 나는 화장실에 갈 때도 허락을 받고 가야 했다. 이건 너무 이상하다. 뭔가 잘못됐다. 심지어 경찰들은 그 남자에게 커피도 타주었다. 우리에게는 물 한잔 따라주지 않았다.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진술서를 손수 작성해야 했고 언제 집에 갈 수 있느냐고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내가 위에 쓴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밤새 시달렸다. 집에 가도 된다는 얘기를 듣고 밖에 나오니 밖이 환했다. 아침 여덟시였다.


그렇게 밤새도록 취조를 받은 것이다. 성추행 목격자로. 


언니는 내게 말했다. 다시는 이런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다시는 뭘 봐도 모른 척해야겠다. 우리는 너무 피곤하고 우울하고 무력했다.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후 남자가 처벌을 받았는지 어떤지는 지금도 모른다. 아마도 벌금형 같은 것에 처하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 좆같다 정말. 


그러고 나서 한동안은 봐도 모른 척 알아도 모른 척하며 살았던 것 같다. 부끄럽지만 피곤하고 힘든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지금이었으면 국민신문고에 전부 써서 징계를 먹였을 것이다. 여러분 공공기관에서 부조리를 목격한다면 무조건 상세하게 적어 국민신문고에 올리세요. 그러면 그 사람은 어쨌든 조사를 받게 되고 작은 것이라도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국민신문고. 잊지 마시고 세 번 머릿속으로 외치세요. 지금.


그다음 경찰서에 간 건 아니고 신고를 한 건 귀갓길에 놀이터에서 청소년 무리가 한 명을 린치하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였다. 경찰은 내게 전화를 걸어 가봤는데 아무도 없더라, 하고 말했다. 허무했다. 또 그다음은 윗집의 가정폭력 때문에 신고를 했는데 경찰이 윗집에 출동하고 나서 바로 우리집으로 와서 벨을 누르고 아무 일도 없던데 왜 신고를 했느냐고 따졌다. 아니 한 층에 집이 두 개뿐인 육층짜리 빌라에서 윗집에 갔다가 바로 우리집에 와서 문을 두들기면 어떻게 해요? 무슨 보복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렇게 생각 없이 행동하는지. 한숨이 나왔다. 그건 내가 한 달 동안 몇 차례나 들은 거였고 그래서 신고한 건데, 남자의 얼굴이 상기되지 않은 걸로 봐서 폭력 사건이 없었던 것 같다고 경찰은 말했다. 네. 그렇겠죠. 얼굴이 상기되지 않았으니까. 논리 오지네.


여기까지 쓰고 또 주말 이틀이 가버렸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데 나는 작년 가을쯤 내가 겪은 일을 쓸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하나를 얘기하려면 열을 얘기해야 하고 그걸 다 얘기하는 건 내 권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나는 상해진단서를 떼러 정형외과에 갔고 보험도 안 되는 상해진단서를 굳이 십만원이나 주고 꼭 떼가야겠냐 이번이 처음이 아니냐 그럴 필요가 있냐는 훈계를 남자 의사에게 진료실에 앉아 듣는 수밖에 없었다. 고집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해주는 거라고 유난스럽다고 하던 그 얘기를 듣고 진단서를 받아 혼자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있으니 경찰서에 상주하는 상담가라는 여자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언뜻 목소리만으로도 내 어머니 나이쯤 되었겠구나 짐작이 갔다. 내가 형사 고발에 대해 묻자 이번이 처음인데 가정을 생각하셔야지 고발할 생각부터 하느냐고 자식도 있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여성의 전화에 전화를 걸었다. 


그분은 한 시간 넘게 내 얘기를 들어주고 과장된 공감 대신 그저 묵묵히 들으며 동의해주고 응원해주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이렇게 마음을 쓸 수가 있나? 제일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하는 것처럼. 부끄럽고 미력한 내 내면을 솔직하게 얘기해도 비난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여러 번 천천히 설명해주었고 다음날 다시 전화를 걸어 괜찮은지 물어오기도 했다. 


나는 결국에는 형사 고발을 하지 않았다. 내 아이의 아빠가 전과자가 되는 일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나는 소송도 걸지 않았다. 나는 그냥 모든 일을 조용히 처리하고 받아들였다. 2008년에 시작된 인연을 그렇게 끊어냈다. 내 삶에서 가장 오래 알았던 사람. 가장 사랑했던 사람. 가장 미웠던 사람을.


나는 자다가 소리를 지르며 깨서 오열을 하고 운전중에도 악을 쓰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마치 누군가가 네 삶에서 눈물의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쓸 수 있을 때 다 써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모든 공권력과 경찰 기관이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 정의롭고 올바른 마음과 성실히 법을 수호하는 자들도 있겠지요. 혹여 이 글을 읽으면서 상처를 받으신 분이 있다면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이혼 과정에서 느낀 분명한 것은 국가의 의지는 분명 정상 가정을 존속시키는 것에 치우쳐져 있다는 것이다. 혼인신고를 할 때 느꼈던 것은 이렇게 쉽게?였는데. 종이 한 장만 채워서 내면 법적 부부가 되어버리는 것의 단순함에 놀랐는데. 이혼을 하며 느낀 것은 정말 귀찮아서라도 안 하게 만들려고 엄청나게 많은 장치가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웬만큼 싫지 않은 이상에야 정말 피곤해서라도 관두고 싶을 정도로 자잘하고 잔잔하게 많은 허들이 있었고, 서류 접수 후에 교육 상담 방문시 한쪽이라도 오지 않으면 다시 약속을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무효가 되어버려 접수부터 다시 시작하게 만든 것. 마지막, 판사의 판결 후에도 서류를 30일 이내에 구청에 접수하지 않으면 또 무효가 된다는 점. 이렇게 이혼이 어렵고 지난하게 되어 있는 것은 제발 닥치고 그냥 살면 안 되겠니? 그런 국가의 의지의 반영에 다름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이 받는 상처나 고통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가족 심리 상담이나 아동 심리 상담 등의 후속 조치는 없다. 그렇게 고집부려서 이혼을 하면 너만 손해라는 인상을 지속적으로 준다. 


나는 혼자 아이를 키우면 한부모 가정인 줄 알았다. 이혼 후 한부모 가정 신청을 하러 주민 센터에 가서 들은 이야기.

양육비를 포함하여 한 달 수입이 120에서 최대 190 이상이면 신청이 불가능하며 일 년간의 은행 입출금내역을 제출하여야 한다. 차량이 있는 경우는 차량이 소형이거나 출고된 지 십오 년 이상 지난 차가 아닌 이상에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한부모 가정이 되지 못했다. 어떻게 요즘 120만원으로 차도 없이 애를 키워요. 정말 찢어지게 가난하지 않은 이상은 지원해주지 않겠다는 그 확고한 의지. 나는 그래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애 많이 낳으라고 낙태도 금지하고 출산 지도 만들면서 혼자 애 키우는 건 이렇게 어렵게 해놓으면 누가 애를 낳고 싶겠어요. 내가 이십대에 처음 직장 다녔을 때 월급이 150이었는데. 그것보다 적게 벌어야만 지원해준다는 거 아니야. 한부모 가정 지원을 잘해주면 여자들이 탈혼할까봐 그런가?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얼마 전에 트위터를 하다가 본 인상적인 글이 있었는데, 결혼을 하건 비혼을 하건 본인의 경제력을 놓지 않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도 동감한다. 만약 내가 한푼 벌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면 나는 이혼을 할 수 있었을까? 다 애를 위한 거라고 자위하며 다 이렇게 사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2020년이 막 시작되었던 때가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벌써 5월이 다가오고 있고, 매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지금은 앞만 보며 살고 있다. 앞으로 오십 년은 더 이렇게 살아야겠지. 생각하면 너무 까마득해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엄마가 그랬다. 인생은 길지도 짧지도 않다고.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고 이해했다. 오늘 윤이형의 「루카」를 다시 읽었고 마음이라는 게 어긋나서 깨져버리는 순간은 어째서 찾아오는 걸까, 사랑은 왜 그런 걸까, 제프 버클리는 팀 버클리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더이상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밤 세상이 멈춰버려서 아무도 이 글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눈이 내린다면.


*****


K


네 친구가 속옷을 벗기고 질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을 때 나는 놀라 잠에서 깼어. 네 친구는 나신으로 발기한 채 서 있었어. 그 일을 네게 말했을 때 너는 나를 더러운 여자 취급했지. 바람이라고 했지. 그리고 계속해서 너는 친구와의 자리를 만들었어. 나는 웃으며 함께했어. 그랬어.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어. 그날 내린 눈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왜 나는 방향을 틀 수 없었는지. 여기서 내리면 힘겹게 올라온 길이 모두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거라고. 계속해서 액셀을 밟을 수밖에 없다고. 


나는 내 기억을 왜곡하고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다시 더러운 여자라고 낙인찍히게 되는 일을. 굳이 해서 무엇하겠어. 왜 그렇게 네 옆에 있고만 싶었던 걸까. 그걸 사랑이라고 믿었어. 


그래요. 그때 제가 본 것은 더러움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도 눈치채고 싶지 않아서. 나는 빛으로 가득한 세상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본 것을 저도 믿을 수 없는데 누가 저를 믿겠습니까. 그토록 오래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고 눈물로 사정을 해도 들어주지 않는 것을 계속 주장하는 일이 과연 제게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까요. 이 세상이 내게 등을 돌려도 등을 돌리면 안 될 사람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망설임 없이 등을 돌리는 모습을 두 눈에 새기는 일을. 


사람을 죽였다고 너는 말했습니다. 네 명을 죽였다고. 이제 와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친구와 만나지 못하게 한다고 저를 비난하고 짓밟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없는 밤에는 몰래 기차를 타고 친구를 만나러 다녀오고 집에도 초대했더군요. 이 일을 제가 어떻게 입에 담을 수 있겠습니까. 


더러운 짓을 하였습니다. 제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의 몸을 비닐로 싸 트렁크에 넣고 절벽 아래에 던져버렸습니다. 눈이 모든 것을 가려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