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불행이 찾아오는 이유―2

누군가가 나에게 잘해주면 너무 좋다. 다정함은 마약 같다. 그 다정을 잃으면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점점 상대에 나를 맞추게 된다. 그러다보면 나를 잃어버리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내 꿈은 사랑받는 것이었다. 


나는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다. 그런데 나를 사랑해주는 제대로 된 사람이 없었다. 왜 그럴까? 내가 이미 너무 많이 망가져버렸나. 나는 생각한다. 내가 80kg이 되어도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주면 좋겠다고. 나는 오랫동안 섭식장애를 앓은 적이 있다. 스물한 살부터 스물여덟 살 때까지다. 나는 매일 700칼로리를 계산해서 먹었고 그 이상은 먹지 않았다. 내가 날씬하고 말라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보다 먼저 식단 일기를 썼고 먹은 것들의 칼로리를 찾는 데 도가 터 나중에는 거의 걸어다니는 칼로리 사전이 되다시피 했다. 나는 그 시절 파리바게뜨의 모카크림빵을 좋아했고 KFC의 징거버거를 좋아했지만 그 음식들은 내게 금지된 것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사와서 보다가 버린 적도 많다. 그러다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한입만, 하고 베어 물면 꼭 끝을 볼 때까지 먹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러고 나면 당장 위를 뒤집어서 음식물을 꺼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몇 시간이고 공원을 돌고 와서 잠을 자지 않고 버텼다. 규칙 1) 700kcal 이상 섭취하지 말 것. 규칙 2)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먹은 후에는 일곱 시간 후에 누울 것. 이것이 내 규칙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핸드폰 사진첩엔 김민희, 젬마 워드, 릴리 콜, 케이트 모스 등의 사진이 가득했다. 너무너무 배가 고플 때는 주로 혐짤들을 많이 찾아봤다. 벌레나 여드름 짜는 영상 같은 것들을 보면 식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38kg에 이르러 거식증 치료를 받았다. 당시에 충격적인 일을 많이 겪었지만 나 스스로 너무나 자존감이 없다고 느꼈던 일이 있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기다리며 대기실에 앉아 있었고 계절은 여름, 폭염으로 아스팔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던 때다. 대기실로 한 여자가 들어와 앉았다. 그렇게 더운 날이었음에도 여자는 긴소매 터틀넥에 긴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한눈에도 30kg이 될까? 싶을 정도로 마른 사람이었다. 다들 그를 본다면 측은해하고 걱정을 하겠지만 나는 그 몸을 본 순간 미칠 듯한 질투에 휩싸였다. 나보다 마른 사람이 있다니. 이럴 수는 없어.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저 여자만큼 마르려면 얼마나 더 빼야 하지? 이게 내 생각이었다.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내가 눈앞이 새카매질 정도의 질투에 더 말라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이. 


처음부터 내가 거식증이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감량을 위해 굶은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우울증이 너무 심해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뭔가를 먹을 자격도 없는 인간이라는, 나는 쓰레기이고 지구에 해만 끼친다는 생각에 울며 누워 지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난 다음 세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1. 돈이 절약된다(당시 나는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런 원조도 받지 못했다. 과외를 하고 주말에는 편의점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벌어 학교에 다녔고 늘 돈에 쪼들리는 상태였다). 2. 사람들이 예뻐졌다고 말하며 잘해준다. 특히 남자들이. 나는 관종이라서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보이는 게 좋았다. 예쁜 옷들도 사이즈 걱정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예쁘다 예쁘다 소리를 들으니 점점 더 예뻐져야만 할 것 같은, 그렇지 않으면 이 관심도 애정도 모두 사라질 거라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결국 우울증으로 시작된 섭식장애는 나에게 사랑을 가져다주었고 나는 그게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쉽게 현혹되었다. 내가 지금처럼 날씬하지 않다면 사람들이 나를 더이상 좋아해주지 않을 거라고. 3. 더 예민해진다. 예민해지는 건 나쁜 면도 많았지만 좋은 면도 많았다. 날이 설수록 먹지 않을수록 감각의 촉이 잘 벼린 칼처럼 솟는다는 생각.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빠져들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먹지 않는 것은 절대 밑지는 장사가 아닌 것 같았다. 돈도 아끼고 사랑도 받고 시도 쓰게 해주니까. 


혹시나 이걸 읽고 나도 한번 해볼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섭식장애를 통과하며 겪은 나의 이야기를 적는다. 


어느 날 갑자기 생리가 끊어졌다. 처음엔 생리를 하지 않으니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다낭성증후군에 결려 산부인과 치료를 받게 되었다. 앞으로 임신이 힘들 거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출산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지만 뭔가 나의 가능성 하나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출산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은 내 몫이라고 생각했는데,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으니 속이 상했다. 왜 내 선택권을 빼앗겨야 하지? 의문이 들었다. 

몸의 곳곳에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는 멍들이 잔뜩 늘었고 온몸의 털이 길어졌다. 지방이 없으니 쿠션 역할을 해줄 것이 없어 스치기만 해도 멍이 드는 지경에 이르렀고, 체온을 유지시켜줄 것이 없어 털이 길어진 것이다. 당시에 나는 겨울이면 바지를 세 개씩 겹쳐 입고 다녔고 자주 감기와 장염에 걸렸다. 그리고 가장 손해는 이가 엄청 많이 상했다는 것이다. 칼슘이 빠져나가니 뼈가 약해지고 이도 약해진다. 음식을 거의 먹지 않으면 이를 잘 닦아도 이에 금이 가거나 쉽게 이가 상해버리고 말아서 치과 치료에 아주 많은 돈을 날렸다.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람들은 만나고 친해지기 위해 무언가를 함께 먹으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먹을 수 없다. 약속을 피할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어 우물쭈물하게 된다.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보면 카페에서 만나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수밖에 없고, 먹기 싫다, 속이 안 좋다 등의 변명 같은 거짓말을 자꾸 하게 된다. 결국 진짜 깊은 관계를 맺는 데에 어려움이 생기게 된다. 

몸이 자주 아프고 컨디션이 늘 좋지 않다. 이건 지금도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좀더 활력 있게 보내야 했을 이십대 시절이 많이 위축된 것 같아 안타깝다. 나는 한편으론 나의 병약함을 사랑했지만 그것이 내게 되돌려준 것은 없다.

 

결국 글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거식증은 먹는 것에 무관심해지는 일이 결코 아니다. 나는 그때만큼 음식에 관심이 많았던 적이 없는 것 같다. 갈망하는 것을, 결핍을 해소할 수 없으니 계속 정신이 그쪽으로 쏠리게 되는 것이다. 요리 프로그램, 요리 블로그, 맛집 블로그 등을 찾아보는 데 하루에 몇 시간씩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 예민함은 오래가지 않았으며 영양분이 있어야 뇌도 돌아가고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는데 집중력이 현저히 낮아지곤 했다. 이것이 다시 회복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시를 못 쓰는 마른 나보다는 시를 잘 쓰고 통통한 내가 더 좋기 때문이다. 실제로 거식증에 오래 노출된 사람은 장기가 굳어 딱딱해질 뿐만 아니라 뇌가 쪼그라든다고 한다.


실제로 모델들은 비행중 심장마비로 사망하기도 한다. 굶는 일은 정신뿐 아니라 육체의 엔진이나 다름없는 심장마저 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60kg이다. 우리 엄마는 나보고 맨날 살 빼라고 성화다. 옛날엔 예뻤는데 그게 뭐냐고. 그런 말들이 나를 흔들 때도 있다. 나는 지금도 내 몸을 긍정하는 일에 자주 실패한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51kg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지? 출산하러 갈 때 몸무게가 60kg이었는데 왜 아직도 60kg이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우울해질 때도 많다. 그래도 많이 달라진 건 예전에 좋아했던 모델들의 몸보다 건강한 여성의 몸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 언젠가 복근을 키우고 싶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지만, 언젠가 내가 100kg이 되어도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주면 좋겠다. 나의 모순이여.


그렇지만 내 꿈은 이제는 사랑받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내게 사랑을 준다. 그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체력과 체력에서 나오는 다정함을 갖고 싶다. 


누군가가 내게 아이를 가질지 말지를 상의한다면 아마도 나는 갖지 말라고 할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게, 평생 한 사람을 책임져야 된다는 중압감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에게. 나는 아이를 낳기 전에는 매일 ‘아, 내일 자살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도 ‘괜찮아. 잘못되면 자살하면 되니까’ 하고 말했다. 자살은 늘 내가 마지막에 낼 수 있게 예비된 카드이자 보험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난 후에 더이상 그런 생각으로조차 위안 삼을 수 없다는 게 서럽고 슬퍼서 감당할 수 없이 마음이 아팠다. 삶에서 단 한 가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내 목숨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런 생각마저도 죄가 된다는 거. 그게 견딜 수 없이 슬펐다.

모유수유를 십삼 개월간 했는데 그 동안은 오래 받은 우울증 치료도 중단했다. 나는 매일 혼자 집에서 아이만 쳐다보며, 젖 기계가 된 나를 보며, 치받는 마음을 억눌러야만 했다. 얘는 내가 전부니까. 내가 사랑해줘야 하니까. 그 절대적인 사랑과 헌신이 나를 갉아먹으면서도 나를 살렸다.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아이는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고. 


사랑에 대한 갈망을 채워준 건 아이다. 절대로 나를 떠나지 않을 마지막 한 사람이 되어준 것은. 매일 내게 선물을 준다며 작은 종이 쪼가리나 낙엽, 색칠한 그림을 들고 내게 와주는 천방지축 천사. 심지어는 엄마 엄마 너무 예뻐, 하고 매일 말해주고 뽀뽀해주고 세상에서 가장 큰 하트를 쏘아주는 나의 아이. 아이가 없었으면 더 자유롭게 살았을 텐데, 아이가 없었다면 이렇게 돈 벌려고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아이가 없었다면 가고 싶을 때 가고 오고 싶을 때 올 수 있었을 텐데,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그런 생각 자주 해. 그래도 아이 덕분에 나는 좀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래도 가끔 그립지. 혼자 여행 다니던 때가. 그땐 가고 싶으면 그냥 다음주에 이집트 가고 그런 식으로 살았는데. 빨리 커서 같이 여행 다니자. 언젠가는 여행 이야기도 써봐야겠다. 


인간이 숭고해지는 때는 언제일까? 그런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나는 형이상학에 대해 생각한다. 채워진 결핍은 더이상 갈망의 대상이 되지 않듯. 인간이 끊임없이 숭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이 아닐까. 나는 인간에 대한 희망의 끈을 쥐었다 놓았다 다시 쥔다. 나 자신에 대한 끈도 함께.


지금은 밤이 깊었고 나는 먹고 싶다. 먹고 싶다는 몸의 소리를 듣는다. 나의 이상 식욕은 아직 내게 끝나지 않은 숙제이다. 언제까지나 그럴 것을 알고 그것을 평생 조절하며 살아야 한다. 


한번은 섭식장애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일이 있다. 거기에는 먹는 것을 거부하다 입원해 코에 줄을 끼고 영양을 공급받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오래도록 섭식장애에 시달렸고 먹은 것을 게워내려고 아이를 욕조에 남겨둔 채 구토를 했다. 그리고 아이는 물속에서 질식해 죽는다. 단지 한끼 식사를 토하는 동안 하나의 생명이 꺼진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에도 여자는 거식증을 고치지 못해 결국 입원하게 되었다.


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라고 어른들은 종종 말하는데, 먹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잘 먹고 잘사는 일이 왜 사람을 이렇게 망쳐놓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아무리 말라도 만족할 수 없어서 더 말라야 해, 더,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걸까.


섭식장애는 유년 시절 모성애의 부재를 원인으로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그렇다면 왜 대부분의 섭식장애를 앓는 사람들은 여성인가. 여성만이 유독 모성애의 부재를 심하게 겪는가. 아무리 남아선호사상이 있다고 해도 통계상으로 여성의 섭식장애율이 현저히 높은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왜 이 질병에 엄마란 존재가 원인으로 제시되는가. 


수많은 질문과 수많은 대답이 입속을 맴돈다. 


한 가지 내가 경험적으로 깨달은 것은 섭식장애를 겪은 여성이건 그러지 않은 여성이건 남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여성은 몸을 사유한다는 것이다.


매달 겪는 생리와 출산 경험, 수유 경험, 사회적 여성성 수행으로부터 시작된 고민은 자신의 몸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종에 대한 육신을 포괄할 정도로 깊은 사유로 나아간다.


이제 내 꿈은 내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